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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履祥의 『楊園先生全集』을 통해 바라본 청대 초반 反王復朱 사상 부각의 양상에 관한 고찰 = Reflections on the Rise of Anti-Yangmingism and Re-Zhengzhouism(尊朱辟王) in the Early Qing Dynasty Through the Lens of Zhang Luxiang’s Yangyuan Xiansheng Quanji(楊園先生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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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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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45(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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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상은 17세기 초반에 태어나 말엽까지 살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관리가 되고자 팔고(八股)의 과거 공부를 하다 양지설과 만나 이학에 투신하게 된다. 왕양명과 왕용계의 학문을 숭상하던 장리상은 중년에 『근사록(近思錄)』을 읽고 큰 깨우침을 얻게 된다. 왕학에서 정주학으로 사상 노선을 전환했고, 평생 왕학을 비판하여 정주학을 재건하는데 나머지 인생을 걸었다. 장리상은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가정교사로 치생(治生)을 이루었다. 지역을 전전했던 고난의 삶은 도리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많은 인맥을 형성하게 했다. 장리상은 과거를 포기하여 초야에 묻힌 야인이었지만 중국 절강에서 많은 선비의 존경을 받아 양원학파(楊園學派)를 형성했다. 특히, 강건성세(康乾盛世) 시기에 여유량사건[呂留良案]으로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유량과 청대 제일 정주학자로 명성을 남긴 육롱기는 장리상 사상의 막대한 영향 아래 사상을 성숙시킨 인물들이다. 장리상의 학문은 왕학, 즉 양명학을 치밀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정주학 재건의 필연성을 설파한 데서 형성되었다. 장리상은 이정형제를 계승하여 경의협지(敬義夾持)를 받들었고, 반왕복주(反王復朱)를 기치로 세웠다. 장리상의 철학사상은 이 두 마디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단순해 보이기 짝이 없는 이 관점은, 청초 학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여유량에 미치며, 더 나아가 육롱기의 가슴을 뒤흔든다. 청대 학술사에서 학파를 분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기준이 있다. 한송지쟁(漢宋之爭)에서 한학의 편에 있는가 송학에 마음을 두는가로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청대의 대부분 학자가 한학에 기울어졌을 때, 장리상은 송학, 그것도 정주학만을 정종으로 인정했던 첫 번째 인물이다. 필자는 장리상ㆍ여유량ㆍ육롱기의 사상 노선의 배경과 학문적 특성을 파악하여 청대에 정주학이 복귀한 연유를 추적한다면, 복합적인 청대 학술의 대강(大綱)에서 한줄기 그물코가 손에 닿으리라 기대한다.
더보기Zhang Luxiang(張履祥) was born in the early 17th century and lived to the end of his life. Born into a poor family, he aspired to become an official and studied for civil examination(科擧) before meeting Liangzhi theory(良知說) and devoting himself to the Neo-Confucianism. In middle age, Zhang Luxiang, who admired the scholarship of Wang Yangming and Wang Longxi, read the book called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近思錄) and had a great awakening. He switched his line of thought from Yangming School of Mind(陽明心學) to Zhengzhouism, and spent the rest of his life criticizing Yangmingism and rebuilding Zhengzhouism. Zhang Luxiang traveled from region to region and became a tutor. The hardships of traveling from region to region were actually a positive thing, allowing him to make many connections. Although Zhang Luxiang was a hermit who renounced the mundane world and was buried in the wilderness, he was respected by many scholars in Zhejiang, China, and formed the Yangyuan School of thought(楊園學派). In particular, Lü Liuliang(呂留良) who caused a stir throughout China with the Lü Liuliang Affair during the Kangxi reign, and Liu Longqi(陸隴其), who became the most prominent settler scholar of the Qing Dynasty, matured their thought under the great influence of Zhang Luxiang’s thought.
Zhang Luxiang’s scholarship was shaped by his sophisticated criticism of Yangmingism, while simultaneously arguing for the inevitability of reestablishing Zhengzhouism. Zhang Luxiang succeeded the Cheng brothers in upholding the principle of honor and respect, and established the banner of Anti-Yangmingism and Re-Zhengzhouism(尊朱辟王). Zhang Luxiang’s philosophical thought begins and ends with these two words. However, this seemingly simple view of the world has profound implications for Qing scholarship. First of all, it affects the margin, and furthermore, it stirs the heart of Liu longqi. It is very difficult to categorize the schools in Qing scholarship, but there is one criterion. In the Han-Song dispute, it is to determine whether a scholar is on the side of Han studies or Song studies. At a time when most scholars in the Qing dynasty leaned toward Han studies, Zhang Luxiang was the first to recognize only Song studies, and specifically Zhengzhou studies, as an orthodox school.
As we have seen, if we trace the reasons for the return of Zhengzhou in the Qing dynasty by identifying the background and academic characteristics of the thought lines of Zhang Luxiang, Lü Liuliang, and Liu longqi, we can draw the outline of the complex Qing schola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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