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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전환기 서구 근대 식물학의 도입과 확산의 토대 구축 = Building the basis for Introduction and Spread of Western Botany in the Era of Modern Tran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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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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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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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5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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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xamines the introduction of Korean modern botanical science and how the foundation of its spread was established. In Korea, modern botanical science was introduced into Korea by way of China before and after 1876, when it was open to Korean trade. Lee Sang-Seol made a manuscript, Botanyology, concerning the Korean version.
Since 1905, Japan's protectionist state has weakened the Emperor's right, and then, the activities of patriotic enlightenment activists became active. At this time, several modern botanical textbooks were published along with natural science textbooks. Most of them were mixed Korean, but Annie Baird's books were all written in ‘pure’ Korean. Annie Baird's book was translated by Asa Gray, the greatest American botanist of his day. Asa Gray was Darwin's academic colleague and friend who advocated evolution. Therefore, Annie Baird's book was the best botanical textbook of his time.
The textbooks were controlled by the Governor-General due to the forced merging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in 1910. However, Annie Baird re-published Gray's Botany for young people and common schools as Botany was accredited. Instead of eliminating the biblical verses quoted from Gray's Botany for young people and common schools, the introduction to this book is similar to the article "Botany," written by Yoo Hae-Young, in the Journal of the Northwest Society before the merger of Korea and Japan. In Annie Baird's book, the awareness of the natural sciences of patriotic enlightenment activists since 1905 has been continuously conveyed to Soongsil University students. At that time, the Botany Lecture at Soongsil University was accompanied by hands-on practice.
In the late 1920s, Christians established rural enlightenment as part of the national movement, and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was established at Soongsil College. The natural sciences taught in the department of Natural Science were in charge of agriculture.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was equipped with excellent faculty and training rooms. This educational environment was th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botanists. Kim Joon-Min, Ph.D., graduated four times in agriculture and entered the Department of Biology, Tohoku Imperial University, Japan, became Korea's premier authority on plant ecology. He developed botanical research into plant morphology, which was only a plant classification of higher pla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fter liberation, he worked as a professor of biolog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where he trained numerous after school students and founded the Korean Botanical Society in 1957 an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modern botanical science in Korea.
이 글은 한국근대식물학의 도입과 그 확산의 토대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한국에서 근대식물학은 1876년 개항을 전후로 중국을 경유하여 한역서로 도입되었다. 이상설은 이 한역서를 참고로 하여 필사본 「식물학」을 남겼다.
1905년 이후 일본의 보호국체제가 됨으로써 황제권이 약화되자 애국계몽운동가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시기에 몇 종의 근대식물학 교과용 도서가 자연과학 교과용 도서와 함께 출간되었다. 대부분이 국한문 혼용체였으나 애니 베어드의 책은 순한글체였다. 애니 베어드가 편역 출간한 책은 당대 최고의 미국 식물학자였던 아사 그레이의 책이었다. 아사 그레이는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의 학문적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러므로 애니 베어드가 출간한 책은 당대 최고의 식물학 교과서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교과서는 총독부의 통제를 받았으나 애니 베어드는 식물도셜을 식물학으로 재출간하여 인가를 받았다. 이 책 서론은 식물도셜에서 인용한 성경구절이 삭제되어 있고 대신에 한일병합 이전 서북학회의 학회지 서북학회월보에 유해영이 쓴 「식물학」 글과 유사하다. 애니 베어드의 책을 통해 1905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던 애국계몽운동가들의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이 숭실대학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숭실대학에서 식물학 강의는 현장실습과 함께 이루어졌다.
1920년대 후반 기독교인들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계기로 숭실전문학교에서는 농과가 설치되었다. 이과에서 가르치던 자연과학은 농과에서 담당하였다. 농과는 우수한 교수진과 실습장을 완비하였다. 이러한 교육 환경은 식물학자 양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농과 4회를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제국대학 생물학과에 진학하여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준민은 식물생태학의 한국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고등식물의 식물분류에만 그쳤던 식물학 연구를 그는 식물형태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했고, 1957년 한국식물학회를 설립해서 한국 근대식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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