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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반기 조선의 對명 전략 = Chosŏn’s Strategy toward Ming in the Early Period of the Japanese Invasion(15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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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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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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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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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32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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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벽제관 전투 이후 명군은 교전을 피하고 왜군과 강화교섭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왜군은 남해안 퇴각했고 명군은 단계적으로 철수를 진행했지만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교착 상태와는 대조적으로 자국 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속전속결과 왜군의 완전 구축만이 해답이었다. 조선 조정은 자국 해로 · 수로가 명의 군대 이동과 군수 운송 뿐 아니라 왜의 명 공격에도 활용 가치가 높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군사 지리적 이점을 부각시켜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니라 명의 안보와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임을 강조하며 보다 적극적인 군사 협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의 출병 이후 군량과 마초의 안정적 확보는 조명 군사 협력에 있어 핵심 토대이며 이 과정에서 해운의 중요성이 논의됐다. 조선은 해운을 통한 명군의 자체 군수 조달을 요청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자국의 재정, 세수 등 국정 주요 부문들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덜고자 했을 뿐 아니라 교착 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제 2 전선의 구축 및 명군의 재출병도 해상 작전을 통해서 가능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왜의 해상 공격설에 대한 조명 간 공동 대처의 강조는 내부의 反강화교섭론, 특히 공세적 反강화교섭론-주전론-을 진작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본고가 주목한 바는 정보의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구성력, 명의 강화교섭론을 타파하기 위한 안보 위기의식의 공유와 확산등 조선이 무형 戰力을 가동하고자 노력한 사실이다. 비군사적 전쟁 수단의 동원 역량이야말로 극도의 안보 위기 상황에서도 조선이 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군사 협력을 이어가기 위한 주고받음의 외교력을 구사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호작용성에 대한 주목은 임란왜란 전반기 조선 정부의 對명 전략을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재조명할 뿐 아니라 보다 거시적으로 이 시기 동북아 국제 관계 속 국가 생존의 현실주의를 보다 입체적으로 심찰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더보기The battle between the Ming and Japanese troops at Pyŏkchegwan in February 1593 created a new momentum for a peace talk during which the Japanese troop retreated to the southern coast of Korea whereas the Ming troop withdrew back across the Yamnok River. In contrast to the continuous deadlock, Chosŏn strove to find practical measures to be taken with a view to finishing the war in their land and recovering human and material damages wrought at the unprecedented level by the war. At this juncture, the court came to the realization that seaways and waterways of their country possessed an immensely high value in which not only could the Ming troops more expeditiously transport its troop and military supplies to their front lines in Chosŏn but also the Japanese army could more effectively attack the southeast coastal areas of Ming including the environs of Beijing. In fact, how to secure military supplies and fodder, as well as how to launch amphibious operations, had been occupying the core part in a future cooperation between Chosŏn and Ming for a breakthrough in the end of the war. The Chosŏn court maximized the geographical and military advantage in order to feature the war as inseparable from the security of Ming proper, ask the Ming army for military procurement, supposed to be prepared by Ming itself, via maritime transportation, and minimize any further loss in state revenue on top of economic devastation through the Japanese invasion. The war scenario also motived the Ming hardliners to stand for a re-entry into the war in Chosŏn and a reinforcement of maritime defense against Japan. This article here examines the way the Chosŏn court endeavored to operate various immaterial means of military strength in which to handle war information to its own interest and rationalize the advocacy of war. The nonmilitary competence in military strength as above, I contend, paved the way for diplomatic leverage which made the Chosŏn court not always follow the Ming’s request, even in the adverse tide of the war until the first half of 1593, but set the tone for military cooperation on its terms. Hence, revaluating the interaction between Chosŏn and Ming will help shed new light on the Choson’s strategy toward Ming, indicate one attribute of defensive realism in the international relations of Northeast Asia at that time, and finally rethink the conventional theme of traditional Chinese world order in East Asia before the nine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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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무악실학회 -> 역사실학회영문명 : Mooak Silhakhoe : The Historical Society Of Mooak Silhak -> Yeoksa Silhakhoe: The Historical Society of Yeoksa Silhak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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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5 | 0.65 | 0.7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4 | 0.69 | 1.438 | 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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