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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九州)의 역사문화와 동아시아 —중세기까지의 역사문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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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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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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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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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일본은 한반도 및 중국 그리고 또한 남방의 여러 섬들과의 교류에 의해 이들 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고대국가의 발전의 기틀을 삼았다. 이러한 것이 집약된 체제가 이른바 律令制社会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 바로 큐슈이다. 그러나 이렇듯 활발한 외래문화 수용의 창구였던 이곳도 9세기 말 이른바 견당사(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것)폐지로 인해 대륙과의 공식적인 교통이 끊어지면서 시들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오랜 동안 세월을 지내며 나름대로의 길을 터 문화 교류가 이어졌으니, 이는 보이지 않는 민간레벨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의미이다.
중세 일본인의 고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무관심과 공포심으로 인한 무지와 독선적 이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중세기에 이르러 남해(南海), 류우큐(오끼나와)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16세기에 큐슈를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는 나가사키라고 하는 새로운 창을 통해 큐슈를 또한 번 새롭게 탈바꿈을 시켰다. 그것은 바로 네덜란드 및 중국과의 무역이 행해 진 것인데, 이러한 것을 통해 새로운 외래문화가 유입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함께, 동아시아에 있어 구주사회의 특이한 존재로서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한 華橋사회가 형성되고 이들이 끼친 영향이 구주 여기저기에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되풀이하지만 중세 큐슈지방의 문화교류는 주로 물자교환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조선 측 입장에서는 왜구의 출몰로 피해가 심하긴 했지만 일본과의 관계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통신사, 회찰사 명목 등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주지하다시피 그들은 대부분이 유능한 지식층으로서 대마를 통해 하카다(후쿠오카)로 상륙, 키타큐슈, 세토나이를 통해 에도까지 왕래하며 수준 높은 문화의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또한 큐슈의 여러 다이묘(大名)들에 의해 수용된 그리스도교는 큐슈인에게 또 다른 외래문화의 충격으로서 영향을 주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두려워한 막부는 결국 탄압을 하기 시작, 1639년 행해진 포르트갈 선박의 내항금지는 약 100년간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결과가 되었으며 결국 그리스도교의 종말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나중에 일본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Ancient Japan paved the way for the development as an ancient country by accepting foreign culture positively through the cultural exchange with Korea, China and many southern islands. This is what we called the constitutional society. It is Kyushyu that was the region which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is society. However, the region which took in foreign cultures vigorously began to decline, because the official traffic with a continent was interrupted due to the
abolition of dispatching envoys to Tang China late in the ninth century.
Nevertheless, the cultural exchange continued for a long time and it means nongovernmental cultural exchange was open.
Japanese recognition of Chosun was close to ignorance and selfrighteous understanding resulted from indifference and fear. However, the circumstances began to undergo a change by the expansion of territoriy to various areas such as the southern sea and Okinawa in the
Middle Ages. In particular, the change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surrounding Kyushu in the sixteenth transformed Kyushu through Nagasaki. It is the new foreign culture that trade with China and the Netherlands brought through Nagasaki.
With the inflow of the new culture, China town, a special exaneaence in Kyushyu, was formed, centering around Nagasaki and it influenced places in Kyushyu. Repeatedly speaking, the cultural exchange in Middle Age of Kyushyu was the barter system. At that time, Chosun
felt the need for improving the relationship with Japan regardless of its frequent invasion. That is why Chosun Tongshinsa (조선통신사)and Hoichalsa(회찰사) were sent to Japan. Most of them who belonged to the intellectual class left high standard cultural traces while going through Hakada (Fukuoka), Tusima, Kita Kyushyu, Seto Inland Sea and Edo(Tokyo).
In addition, the Christianity accepted by Daimyos(delegates) of Kyushyu had a impact on people in Kyushyu. The shogunate government began a suppression because of fear of the situation. The prohibition of a visit of a Portuguese fleet to Japan from 1639 had continued for about 100 years. As a result, Christianity came to the end. However the fatal series of event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Japanese modernization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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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9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東아시아古代學 -> 동아시아고대학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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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3 | 0.33 |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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