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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偉 詩를 通해 본 15世紀 後半 文學 地形의 一面 = An Aspect of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Topography Viewed through Jo W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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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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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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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0(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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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曺偉 시에 나타나는 新進士類的 志向의 推動力을 확인하고 그간 연구가 미진했던 館閣文學的 性格을 부각시킴으로써, 조위 문학의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고, 이를 통해 15세기 후반 문학사의 이해에 필요한 몇 가지 문제를 전망하고자 했다.<BR> 조위는 일찍부터 스승 金宗直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고 출사 초반 젊은 관리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신진사류로서의 분명한 지향을 정립한다. 그것은 관리의 본분을 자각함으로써 治道에 보탬이 되고자 하며, 백성의 어려움을 함께 하는 동시에 時政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리로서의 다짐을 노래하고 민생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의 기저에서 이 같은 지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BR> 한편 조위의 생애를 보면 소년기에 당대 훈구관료인 曺錫文의 漢陽 집에 머물며 과거를 준비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석문은 부친 曺繼門의 사촌형으로 世祖의 집권을 도와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른 시기의 한양 생활에서 그는 훈구가문과 접촉하고 京華文化를 체험하면서 관각 문학적 교양을 갖추게 된다. 김종직은 이러한 면을 염두에 두고 그의 작품에 대해 “流麗하여 服粉의 態가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당대 老成한 관각 문인들 사이에서 관각의 인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사대외교에 필요한 창작문제에 대해 고민했으며, 국가적 문화사업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BR> 이러한 측면 이외에 조위 시문학의 이해와 관련하여, 15세기 후반의 정치 상황과 문학 기풍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신진사류와 훈구세력의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는 한편, 조정에서는 好文君主 成宗에 의해 문학 숭상 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조위에게 있어서 이른 시기부터 다져온 신진사류로서의 문학 정신을 발양하는 한편, 관각의 효용에 필요한 문학 창작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BR> 한편 성종조의 독특한 문학 환경과 이에 따른 문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무렵 임금을 정점에 둔 사장 확산의 분위기는 經術對 詞章의 문학 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가져온 면이 있다. 당시 徐居正은 문사들이 浮誇를 숭상하며 性理之學에 뜻을 둔 이가 없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장 편중의 문학 풍조가 가져올 폐단에 대한 염려이지 훈구문인인 그가 경술로의 근본적인 문학 노선 수정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마찬 가지로 조위도 당시 관각 인재로 인식되었고 사장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정신지향의 면에서 여전히 신진사류로서의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조위 문학 성격의 규명은 어느 일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신진사류적 지향, 관각문학적 성향 등을 포괄하고, 당대 문학 풍조를 고려한 바탕 위에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동시대 문사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각자의 정치적 위치, 행력 등에 따라 나타나는 문학 지향 및 작품 실제의 混在的 性格, 接點的 位置 등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요구된다.
더보기This paper aims to reconsider an aspect of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through characteristic features of Jo Wi"(曺偉)s poetic literature.<BR> As for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it is mostly the case that whether it is about the period or individual writers, work has its subject attributed to Hungu(勳舊), Sarim(士林), Gyeongsul(經術), or Sajang(詞章).<BR> As Jo Wi also was a student of Kim Jong-jik"(金宗直)s, he has been empathized as one of the early figures from Sinjinsaryu(新進士類) "New officials" in the days of King Songjong(成宗), and his hiterary spirit also has been dealt with from this perspective. However, on the other hand, he was a member of the family that gave birth to Jo Seok-mun(曺錫文), a Hungu bureaucrat who helped King Sejo(世祖) sit on the throne. While staying at Jo Seok-mun"s house in Seoul during his childhood, Jo Wi studied for the state examination, and experienced Gyeonghwa Munhwa(京華文化) "Capital Culture."<BR> Young Jo Wi"s self-image was formed with his establishment of orientation toward the intention to care people"s life and devote himself to Chido(志道) "the political Tao," which had been formed while he received his teacher Kim Jong-jik"s educatin and worked with young officials since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This seem to have fed the driving force of Jo"s consciousness as a Sinjinsaryu.<BR> Another side of Jo Wi"s poetry had to do with his role of leading cultural projects at that time. Though such a property was criticized by Kim Jong-jik who claimed that it had "Jibun-eui Tae"(脂粉의 態) "traces of cosmetic powder," Jo Wi, based on his experiences in Gyonghwa Munhwa and interpersonal relations since his earlier days, showed his outstanding ability in diplomatic affairs, which required the ability of writing. Also, he was recognized as a man of ability in Gwangak(館閣). Seongjeong as King who likes literature had him engage in the work ultimately finishing Dusieonhae(杜詩諺解).<BR> Jo Wi so far has been prominently presented mainly in tandem with his spiritual aspects as a member of Sinjin Saryu. On the other hand, we should, however, look into his work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act that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late 15th century"s cultural projects. I expect that we can more richly explain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by digging up the implications of Jo Wi"s works as well as his personal prop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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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4 | 0.64 | 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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