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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관군의 동향과 호남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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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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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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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8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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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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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관군의 활동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연결시켜 파악함으로써 호남방어에 있어서 그 역할을 바르게 조명하고, 나아가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바로 잡고자 한 것이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 전라도에서는 감사 이광의 주도로 관군이 동원되어 경상도와 충청도로 출동한 바 있었고, 이어서 대규모의 근왕병이 출동하였으나 용인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전라도 근왕병이 패배한 원인은 감사 이광의 무능이라기보다는 당시 동원된 사졸들의 전투 능력부족과 사기 저하, 그리고 근왕병 동원에 대한 반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용인전투 후 전라병사 최원에 의하여 수만의 병력이 동원되어 북상한 후 왜군의 호남 침공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감사 이광은 전전적 이정란과 함께 전주 부성의 수비 태세를 갖추고 웅치와 이치 등의 요해지에 관군을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금산을 점령한 왜군이 웅치를 통해 전주부성을 공격해 오자, 전라도 관군은 의병과 함께 웅치의 혈투와 안덕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투에서 이를 격퇴함으로써 전주 부성과 전라도를 지켜내게 되었다. 이것이 웅치전투이다. 이 때 의병장 고경명의 움직임은 금산의 왜군을 견제하여 호남방어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웅치전투 이후에는 전라도 각 지역 수령이 지휘하는 관군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금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압박하며 적극적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전라도 관군의 금산성 공격은 실패하고 말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금산의 왜군이 이치를 향해 공격해 오고, 이를 동복현감 황진과 광주목사 권율이 격퇴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이치전투이다. 전라도 관군의 동향을 통해서 살펴볼 때, 이치전투가 벌어진 시기는 8월 17일경으로 보인다. 그런데, 권율은 이치전투가 있기 전인 7월 22일에
전라도 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그 임명 교서가 이치전투가 마무리된 뒤에야 전해졌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마치 권율이 그 전공으로 전라감사가 된 것으로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에서는 관군이 유지되면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고, 호남의 방어는 전라 감사 이광의 지휘 하에 이루진 방어 태세와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에서의 전라도 관군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며, 어느 영웅 무장 한사람의 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activities of the government troops stationed in Jeolla Province in the early period of Imjinwaeran examining their roles closely and to correct some historical mistakes of this period.
As soon as the War broke out the government troops leaded by Lee Kwang, a governor were mobilized and sent to Kyunsang and Chungchong Province. Soon after a great scale of the Royal Guards stationed in Jeolla Province were dispatched. But they all were defeated in the Youngin Battle by Japanese troops. The reason that the Royal Guards were defeated was not so much inability of Lee Kwang as lack of fighting power and sprit of soldiers including their reaction against the mobilization of Royal Guards.
On one hand Choi Won, Jeolla Byungsa marched with great force northward after the Youngin Battle. In the critical situation that Japanese invasion to Honam district was drawing near, on the other hand Lee Kwang with Lee Jeongran, ex-Jeonjeok strengthened the defence of Jeonju Castle and placed troops in Ungchi and Ichi area.
When Japanese troops came to attack the Jeonju Castle after seizing Keumsan, the government troops with volunteer defended the Castle and Jellado, defeating them in a series of battle of Ungchi and Andeokwon. This is so to speak the Ungchi Battle. At this time Ko Kyung-Myung also performed a part of role in the defence of Honam containing the advance of enemy troops.
After the Ungchi Battle the government troops leaded by provincial magistrates, Suryung, were mobilized on a large scale. They attacked Japanese troops which were stationing at Keumsan Castle. But the attack resulted in failure. In this condition, Japanese troops stationed in Keumsan advanced on Ichi. At this time Hwangjin, Dongbokhyunkam and Kwonyul, Kwangjumoksa defeated them. We call this the Ichi Battle.
I think that the Ichi Battle probably broken out about on 17 august, viewing on activities of government troops. And Kwonyul was appointed as a governor of Jellado on 22 July but he received a letter of appointment after the ending of the Ichi Battle. And so the opinion is misunderstanding that Kwonyul became a governor of Jellado owing to his military merit.
The government troops played an important part at Jellado in the early period of Imjinwaeran. The defence of Honam was possible because Lee Kwang made defensive preparations and the government troops played an active part in the battle of Ungchi and Ichi. In short during the Imjinwaeran the defence of Honam is indebted to activities of the government troops and many national heroe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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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5-3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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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17 | 1.09 | 1.872 | 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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