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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거리 : -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구축한 조선의 歷史像 - = The Distance between Modern History and Colonial History -Imanishi Ryu and the 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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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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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320(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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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resent paper I examine two public institutions that supported the development of colonial history, the Korea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nd the Keijō Imperial University, focusing on the research of Korean history by Imanishi Ryu, who worked at both institutions. The paper considers the ambiguous relationship between modern history and colonial history. Korean history studies in postwar Japan and in post-liberation Korea constructed their identities through removing the history of their colonial past, defining themselves through its otherness. In other words, colonial history was discarded from the territory of modern history; but can we actually draw a line between these two terrains? This is the basic question addressed by this paper. For example, Hatada Takashi, who revived Korean history studies in postwar Japan, pointed out that the major flaw of pre-war Korean history studies was the lack of “love for its object of study”, and he stressed that the mission of researchers in Korean history from that moment onwards was to eliminate colonial “distortions” from the “pure territory of scholarship”. Yet “distortion” and “love” are not opposed elements but rather each is part of the structure of the other; consequently, without “distortions” there would not be “pure scholarship”. This paper analyzes Imanishi Ryu´s research on Korean history from this point of view. In short, it examines the layers of relationships that exist between modern history and colonial history through the works of Imanishi. Imanishi, who thought of himself as “a son of Korea” and wrote in many places, “I love Koreans”, made ancient Korean history the main theme of his research. In Imanishi´s ancient history, the Korean people (from Silla, Baekje and Gaya) and the Japanese people joined hands, competing over and over against the powerful northern peoples (from Goguryeo). He called this association a community of nations. This community of nations operated as a scheme that fixed and explained, back to its origins, the present historical state of colonial government. Imanishi tried to establish this scheme as the key element of a general history of Korea. Through the writing of general history in this way, Imanishi could arrange the events of the past in the form of a chronicle that extended to the present, laying the foundations of a Korean history that could unify the Korean and the Japanese people. What Imanishi repeatedly stressed here was the “love” from the Japanese towards the Korean people, and this was how he validated from the distant past the roots of his own feelings. Imanishi worked hard to oust Dangun´s legend, a northern peoples´ myth, from the foundations of his work. At the time, Dangun was erupting as the new national and historical subject of the Korean people and his rejection by Imanishi was, needless to say, plain colonialism. However, in this way Dangun became a “vanishing mediator”, acting as an intermediary between modern history and colonial history. This was somewhat paradoxical, since Dangun´s rejecti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establishment of modern history in colonial Korea. Incidentally, the inscription on the Gwanggaeto stele, while supporting some of Imanishi´s theories, also helped them to collapse. It was like a bone struck in the throat; that is to say, it was an external existence that troubled Imanishi but one which he had to swallow against his will. This is perhaps one metaphor against modern history. May we not have a glimpse of those colonialist actions, so frequently occurring in the discipline of history, that swallow the other into oneself?
더보기이 글은 식민지조선에서 ‘식민주의 역사학’을 지탱하던 두 군데의 공적 기관,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에서 각각 수사관과 교수로 근무했던 이마니시 류의 조선사연구를 검토하고, 근대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양가적인 관계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방 후 한국의 한국사 연구와 일본의 조선사 연구는 식민주의 역사학을 타자로 배제함으로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해왔다. 이는 다시 말해 식민주의 역사학을 근대역사학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작업인 것인데, 과연 이 양자를 구별하기란 가능할 것인가, 라는 점이 이 글에서 묻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가령 패전 후 일본의 조선사 연구를 새롭게 출범시킨 하타다 다카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점에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조선사 연구의 커다란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순수한 학문의 영역에서 식민주의적인 일그러짐을 제거하는 것이 새로운 조선사 연구의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그러짐과 사랑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따라서 일그러짐이 없으면 사랑에 근거한 순수한 학문도 존재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시각에 입각하여 이마니시의 조선사 연구를 분석한다. 즉, 이마니시를 통해 근대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이 구성하는 층위를 검토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한국의 아이라 여기고 한인에 대한 사랑을 글로 남긴 이마니시는 주로 한국고대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마니시가 본 한국고대사는 한민족(신라, 백제, 가야 등)과 일본민족이 손을 잡고 강대한 북방민족(고구려)와 경쟁을 반복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이를 Community of nations라 이름 지었다. 이 Community of nations란 식민지지배라는 작금의 역사적 현실을 그 기원으로 소급하여 확정하는 도식, 곧 통사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마니시는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연대기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현재에 연결시키고, 한민족과 일본민족을 통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자 했다. 여기서 이마니시가 거듭 강조한 것이 한민족에 대한 일본민족의 사랑이었으며, 이는 또한 자신의 감정의 근원을 머나먼 과거에서 추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마니시는 이와 같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북방민족의 신화인 단군전설을 자신이 구축한 토대에서 내몰았다. 당시 한민족의 새로운 민족적, 역사적 주체로서 등장하고 있던 단군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식민지주의적 폭력에 다름 아니거니와 이를 통해 단군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어 근대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을 중개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마니시의 단군부정은 도리어 근대역사학이 식민지조선에서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비의 기사는 이마니시가 구축한 토대를 지탱하면서 무너트리는, 말하자면 목에 걸린 가시라는 타자적 존재로서 이마니시를 괴롭혔고, 이마니시는 이를 억지로 삼키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은 근대역사학에 대한 일종의 비유가 아닐까? 여기에는 타자를 자신 안에 삼켜버리는 식민지주의적 행위가 바로 역사학의 근원적 성격임을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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