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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의 사회경제적 자료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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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는 조선왕조의 완숙기이면서 동시에 봉건체제 모순이 내재화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18세기 사회의 모습을 다방면으로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의 하나가 『이재난고』이다. 여기에서는 『이재난고』에서 표현된 당시 사회경제의 여러 측면을 지주제와 농민층 분화, 화폐유통과 화폐관, 물가와 고리대, 임노동 등 크게 4개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재 황윤석은 16결 정도의 토지와 20명 이상의 솔거노비를 거느리고 당시의 일반적인 지주경영 추세에 따라 직영지경영과 병작경영을 동시에 행하면서 나름 효율적 경영을 추구하는 지주였다. 하지만 한재·수재 등에 따른 주기적 흉작과 혼례, 상례, 제사 등 각종 지출, 정부의 부세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특히 전근대 농업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로 인한 흉작으로 가정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재도 어쩔 수 없이 빈번히 고리대에 의지했다. 특히 소농의 경우는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해 토지에서 유리되어 떠도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농촌 현실을 잘 보여주는 실례로 『이재난고』에는 1770년대 흥덕의 노비 출신 김단 등 군도담 10편 정도를 소개하고 있다.
둘째, 일기를 통해 볼 때 이재의 일상생활은 하루도 화폐와 떨어져서 살 수 없는 상태였다. 이처럼 화폐경제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이재는 나름의 화폐관을 제시하였다. 이재는 20대에는 화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폐전론을 지지하였지만 40대 이후에는 긍정적인 화폐관으로 변화를 하였다. 그는 화폐가 가치척도와 거래수단으로서 유용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고액전 주조를 통해 동전유통의 폐단과 전황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견해를 나타냈다.
셋째, 『이재난고』에는 쌀값, 땅값, 집값, 베값, 책값, 말값, 밥값, 약값, 어물값, 기호품 등 각종 가격 자료들이 상당수 보인다. 여기서는 미가, 지가, 주택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759~1769년의 약 10년 동안 서울의 흉년일 때 미가는 대략 4배 이상 급등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당시 서울의 초가집 가격은 1칸 당 10냥이고 기와집은 1칸 당 20냥 정도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재는 서울의 생활비나 초임 관리에 필요한 경비, 그리고 집안의 길흉사 등을 위해 자주 부채를 빌렸다. 그가 부채를 얻고자 한 채권자는 주로 泮主人과 江商이었고 때로는 京主人이나 知人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았고 어렵게 빌린다고 해도 이자율이 월 8% 정도의 年利 100%에 달하는 고리대였다. 넷째, 17세기 이후 농업경영에서 노비에 대한 대체노동으로 고공이 적극 사용되고 도시의 여러 분야에도 임노동이 많이 활용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추세처럼 이재 집안에서도 노비들의 태업, 도망 등으로 노비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가작지 경영 등에 고공을 적극 활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그의 일기에는 서울로의 과거행이나 타지로의 여행, 그리고 관직에 근무하는 동안의 각종 雇價와 雇人에 대한 다수의 기록이 보인다. 이를 통해 고용노동이 농촌의 농업경영뿐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 걸쳐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he 18th century is the matur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and at the same time, it is an important time when the contradiction of the feudal system is internalized. One of the important data that gives a glimpse into society in various ways in the 18th century is "LeeJae-Nango". Here, we looked at various aspects of the social economy expressed in "LeeJae-Nango" focusing on four main themes: the holding system and differentiation of the farmers" class, monetary distribution and monetary view, prices and usury, and wage labor. The main contents discussed in the text are as follows.
First, Lee Jae, Hwang Yun-seok was a landlord who pursued efficient management while simultaneously performing direct and byeongjag(幷作) management according to the general holding management trend at the time with about 16 land and more than 20 Solgeo slaves. However, due to periodic bad harvests due to Drought and flood, various expenditures such as weddings, funeral ceremonies, and rituals, and the government"s taxation, it was not economically sufficient. In particular, amid difficulties in the family economy due to poor harvests caused by natural disasters that occur periodically in pre-modern agricultural society, Lee Jae was forced to rely frequently on the usury.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small farmers, they were in a serious management crisis and often wandered away from the land. As an example of this rural reality, "LeeJae-Nango" introduces about 10 the story of bandits, including Kim Dan, a former slave of Heungdeok in the 1770s.
Second, when viewed through the diary, Lee Jae"s daily life was in a state where he could not live away from money for a day. In this way, in the reality dominated by the monetary economy, Lee Jae presented his own view of money. Lee Jae supported the theory of Claims to abolish money based on negative perceptions of money in his 20s, but changed to a positive view of money after his 40s. He acknowledged that money is useful as a value scale and means of trading and expressed his view to solve the problem of coin distribution and money shortage through high-value casting.
Third, there are many price data such as rice price, land price, house price, cloth price, book price, horse price, food price, medicine price, fish price, and other items in "LeeJae-Nango". Here, we looked at rice prices, land prices, and house price. For about 10 years from 1759 to 1769, it can be seen that the price of rice has more than quadrupled during the bad year of Seoul. In the late 18th century, it was confirmed that the price of thatched houses in Seoul was 10 nyang per compartment and about 20 nyang per compartment. In addition, Lee Jae frequently borrowed debt for living expenses in Seoul, expenses necessary for Newcomer management, and the family"s bad luck. The creditors he wanted to obtain debt were mainly ban-juin(泮主人) and river-merchants(江主人), and sometimes Gyeongjuers(京主人) or acquaintances. However, it was not easy to borrow money, and even if it was difficult to borrow, it was a high-interest rate of about 8% per month. Fourth, since the 17th century, high labor has been actively used as an alternative labor for slaves in agricultural management, and wage labor has been widely used in various fields of cities. As with the trend of the times at the time, the Lee Jae family was having great difficulty managing slaves due to the unemployment and escape of slaves, so it is presumed that they actively used their efforts to manage household land. In addition, his diary shows a number of records of past trips to Seoul, trips to other places, and various Wages and wage labor while working in government offices. Through this, it can be seen that wage labor is being used not only in rural agricultural management but also in various fields centered on Seoul.
Since "LeeJae-Nango" contains various aspects of society in the 18th century, it is hoped that the contents of the late Joseon Dynasty articles will be e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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