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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向化倭人과 李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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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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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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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1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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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한일관계에서 특이한 존재인 向化倭人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유형 및 정치?사회?경제적 대우, 그리고 향화왜인과 이예와의 관련성을 살펴본 것이다.
먼저 조선초기 향화왜인의 발생배경은 조선의 왜구대책과 토지나 식량의 부족으로 인한 생활고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초기의 향화왜인은 투항한 왜구가 많았다. 이는 조선의 왜구대책에 따라 왜구가 평화적인 통교자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향화왜인은 대마도주의 사신, 표류인을 송환한 자, 倭僧, 三浦 恒居倭人 등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전기 향화왜인은 항왜, 구류왜인과 포로, 스스로 향화하거나 도망쳐 온 자, 송환된 피로인을 따라 온 자, 왜승, 대마도주의 사송왜인, 삼포항거왜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선초기 향화왜인 중에는 왜구로 투항하여 조선의 관직을 제수받은 자들이 많았다. 그 중 일부는 대마도로 돌아가서 후에 통교자로서 도항하였다. 이는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왜인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배경이 되었다.
향화왜인에 대한 조선의 사회?경제적 조치는 관직의 제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즉 조선에서는 관직을 제수받지 못한 향화왜인을 각 지방에 분치하여 식량과 토지, 의복, 집 등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조선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동안 田租, 賦役, 軍役을 면제해주었다. 반면에 관직을 제수받은 향화왜인에게는 관직에 상응하는 祿俸과 衣服, 집, 노비 등을 지급하였다. 또한 이들 중의 일부에게는 姓名과 貫鄕을 하사하였다.
한편, 『성종실록』 6년 6월 신사조에 李從實에 대해 그를 향화왜인 이예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예가 향화왜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유일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이예가 활동하던 시기의 기록과 그의 졸기 등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오히려 조선초기 한일관계에서 이예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Japanese naturalized to the early Choson dynasty. What was the background for the naturalization? Which types of the naturalized Japanese were there? How were they treated in the political and social and economic aspect? Was Lee Ye really one of the naturalized Japanese? Those questions will be discussed.
The naturalization of the Japanese in early Choson occurred from some counter plans of the government for Japanese pirates or their hard living such as the shortage of land and foods. Especially there were many surrendered pirates among the naturalized Japanese in the early times. This reflects the transition from the pirates to the peaceful negotiators according to the counter plans of Choson. Afterwards Japanese naturalization was expanded to the envoys from Tsushima, officials to dispatch drifters, monks and the Japanese residing in the three ports.
The types of the naturalized Japanese in the early Choson dynasty were classified into several groups of the surrendered, the detained, captives, the naturalized of one’s own accord, fugitives, escorts to dispatch drifters, monks, envoys from Tsushima, and the Japanese residing in the three ports. Some of them were pirates and, after surrendering, even gained the posts in the Choson government. And some people returned to Tsushima, and crossed the sea again as the negotiators. This became a beginning for appointing the men residing in Japan to the government.
The hospitality to the naturalized Japanese was different in the social and economic respect according to whether they got the posts from the government or not. Those who didn’t get the posts were scattered into various districts, and received food, land, clothes, and houses. And they were exempted, for the settlement, from land taxes, compulsory labor, and military service during a certain period. On the other hand, those who got the posts received stipends, clothes, houses and slaves in proportion to their posts. Some of them even got their own names and clans.
And Songjong Annals records Lee Jongsil as a son of Lee Ye, one of the naturalized Japanese. But this is false because any other documents could not be found about it, and even his obituary in the annals did not narrate such an important matter. In my view, the record reveals that Lee Ye played a great part for the relations between Choson and Japan in the early stag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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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5-3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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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5 | 1.5 |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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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 1.09 | 1.872 | 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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