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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철과 ‘대학’ 제도의 안과 밖 = 식민지 ‘학지(學知)’의 연속과 비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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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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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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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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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430(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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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제3회 졸업생 신남철은 근대 한국의 ‘지식제도’의 전개를 개인 차원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이후 동(同) 대학의 조수, 동아일보 기자 등을 거치면서 식민지 조선의 학술과 저널리즘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국립서울대안’에 반대하여 월북,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의 이력은 〈식민지-해방기-분단기〉를 횡단하는 한국 지식제도의 연속/비연속의 축도이다. 신남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경성제국대학이라는 제도와 마르크스주의로 표상되는 서구철학이다. 경성제국대학 출신 조선인 엘리트들은 학술어로서의 일본어에 의해 주변화된 ‘조선어’ 학술을 통해서 지식의 독립을 추구하고, 동시에 ‘제국대학’이라는 제국의 아카데미즘의 제도를 근거로 조선인의 민간 학술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이율배반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신남철이 편집에 관여했던 경성제국대학 출신들의 학술 동인지 新興은 그러한 정체성이 반영된 사례이다. 경성제국대학 출신들과 일본 및 구미에서 유학한 철학 엘리트들의 모임인 ‘철학연구회’(1932) 동인으로 참여하고, 백남운 주도의 ‘중앙 아카데미’ 수립에 동참한 신남철의 행보는 대학 제도 안으로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인이 대학의 밖에서 구성하고자 했던 식민지적 아카데미즘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것이다. 1934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조선학 운동’에 대응하여 신남철이 주장한 ‘과학적 조선연구’는 경성제국대학과 마르크시즘에 근간한 신남철의 정체성과 상응하고 있다. 신남철이 주장한 ‘과학적 조선연구’의 방법과 내용에는 조선어 학술을 통해 조선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의 독립, 아카데미즘에 근거한 과학성, 마르크스주의가 종합되어 있다.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신남철의 정체성을 더욱 구체화한 계기였다. 해방 이후 신남철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 내부에서 ‘국립서울대안’ 반대 투쟁을 수행하였다. ‘국립서울대안’이 포고된 이후 신남철은 이 설립안의 비현실성, 강압적 추진, 교수회 및 학생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성 등을 이유로 ‘국대안’을 반대하면서 교육 부문을 탈식민적 민족교육으로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국대안’ 반대 운동과 더불어 식민지 시기 중앙 아카데미 구상을 계승한 ‘조선학술원’ 설립운동을 주도하지만 건국을 둘러싼 제정파의 갈등과 분열에 의해 무산되면서 월북하게 된다. 월북 이후 신남철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북한 아카데미즘의 중추로 활동하였지만, 현재 저술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950년대에 남긴 신남철의 글을 통해서 미국 헤게모니하에 재편되고 있는 남한의 사상계와 대중문화 등을 ‘미제국주의’에 의한 말초적 문화의 확산으로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Nam-cheol Shin, one of 3rd alumni from the Department of Law and Literature,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a former branch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has been known as a personal symbol that demonstrates development of modern Korean ‘knowledge system.’ After graduating from Department of Philosophy as well in same university, he engaged in academic activities and journalism in colonial days of modern Korea under the rule of Imperial Japan with the help of his social careers including collegiate assistant (Keijo Imperial Univ) and journalist (Dong-A Ilbo Daily). Just after the National Liberation of Korea in 1945, he stood against ‘a Proposal for the Nationalized Administration of Seoul University’ when he held a professorial post in Seoul University as successor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Then, he went to North Korea and held a professorial post in Kim Il-sung University. His social careers are viewed as an epitome for continuity / discontinuity of modern Korean knowledge system ranging from colonial period via liberation period toward national division period. Both Keijo Imperial University (educational system) and Marxism (Western philosophy) are major keywords to define the original identity of Shin. Modern Korean elites who graduated from Keijo Imperial University pursued independence of national knowledge through ‘such academic efforts in Korean language’ as marginalized by academic Japanese language, but created their antimonic identity with a tendency to differentiate their academic achievements from Korean private collegiate ones, on the basis of imperial academic system symbolized by ‘Keijo Imperial University.’ A reflection of their antimonic identity is exemplified by “Shinheung (新興),” an academic coterie magazine for graduate intellects from Keijo Imperial University, where Shin engaged in editing works. Moreover, he engaged as a member of ‘Korean Philosophy Society’ (1932), a coterie society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alumni and modern Korean philosophical elites who completed overseas academic courses in Japan and Western countries. Shin's engagement in the establishment of Central Academy initiated by Nam-un Baek reveals a sort of colonial academism pursued by colonial elites outside the wall of campus because of their access denied to any collegial system under the rule of imperial Japan. In a response to ‘Korean studies movements’ emerging around 1934, Shin advocated ‘scientific Korean studies’ which correspond to his own identity based on Keijo Imperial University and Marxism. The methodology and content of ‘scientific Korean studies’ advocated by Shin sums up independence of ‘knowledge’ to produce knowledge about Korea through academic literatures in Korean language; scientific approaches based on academism; and Marxism.
The National Liberation of Korea in 1945 became a good chance for Shin to further develop his own identity as Marxist. After the Liberation, Shin held a professorial post in Seoul University and initiated an intramural campaign against ‘a Proposal for the Nationalized Administration of Seoul University.’ After the proclamation of said Proposal, Shin opposed it because of its infeasibility, coercive promotion and authorities' undemocratic decision without respect of autonomy vested in faculty and students. And he claimed for restructuring his contemporary Korean education sector toward post-colonial national education system. In parallel with ‘anti-nationalization’ campaign, he led another campaign for the establishment of ‘Korean Academy Society’ in succession to a former plan for Central Academy during the era of colonized Korea. But Shin decided to go to North Korea due to failure of those campaigns under the influence of conflicts and disunion in Constitutional faction before the founding of modern Korean government. Then, Shin kept holding a professorial post in Kim Il-sung University and played as a pivotal role in the modern academism of North Korea, but there are r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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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20-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재인증) | KCI후보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2-11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국어문학연구 -> 동악어문학외국어명 : The Research o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Journal of Dong-ak Language and Literature | KCI등재 |
2015-02-1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한국어문학연구학회 -> 동악어문학회영문명 : The Association Of The Research O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Dong-ak Society of Language and Literatur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4-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Dong-ak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The Research o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7 | 0.67 | 0.6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1 | 0.8 | 1.224 | 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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