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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구곡(用夏九曲)과 의당(毅堂) 문인(門人) - 이원우(李元雨)·양재명(梁在明)·유지혁(柳芝赫)을 중심으로 - = Yonghagugok and Uidang Literary Persons - Focusing on Lee Won-woo, Yang Jae-myeong, and Yu Ji-hy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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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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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40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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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元雨·梁在明·柳芝赫을 중심으로 용하구곡과 의당 문인을 살펴보았다.
용하구곡 관련 시문 현황을 정리한 결과, 용하구곡에 각자한 이후로도 의당은 새 명칭을 부여하고 시문을 창작한다. 또한 의당 시문 가운데 동일한 내용이 문인의 문집에 남아 있어, 당시의 정황을 성세하게 전한다. 강학 관련 分韻作詩한 작품을 살펴보면, 문인들은 의당의 존화양이·위정척사의 의리를 계승하며, 詩題는 경서 구절과 도학자의 시구에서 인용한다. 이는 의당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피력한 『의당선생수필첩』과 궤를 같이 한다.
용하구곡시는 1941년 가을부터 용하구곡에 대한 논의가 사우간에 진행되다가, 1947년 봄 신현국이 편지를 보내 용하구곡시 창작을 독려하여 완성된다. 유지혁의 용하구곡시는 「用夏九曲刻字事實」을 바탕으로 구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고 의당이 刻字하고 문인들과 유람하고 즐기던 옛일을 추억하고 그 감회를 표현한다. 이는 이원우의 용하구곡시가 산수자연의 아름다움을 성리학적 세계로 표현한 것과는 다르다.
1909년 의당·회당이 용하구곡을 떠나자, 문인들은 용하정사를 중심으로 수계를 조직하여 강학에 매진하고 계원의 친목을 도모한다. 1909년 11월 5일에 조직한 用夏講契는 영당에서 삭망으로 분향하고 봄·가을에 강회를 거행한다. 1910년 조직한 交恤契는 계원간의 친목 도모를 우선시한다. 이후 1930년 무렵 조직한 隆報契는 의당의 장선 고택을 중심으로 의당학의 보존과 계승을 목적으로 한다. 다양한 수계의 조직은 봉하영당과 병산영당에 영향을 끼친다. 용하영당은 양재명과 이수영을 주축으로 1909년부터 1950년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1951년 유지혁의 노력으로 병산영당을 건립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석채를 거행한다. 용하영당과 병산영당은 의당학의 중요한 거점이자 산실로서, 양재명·이수영·양재명의 헌신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의당의 문인 가운데 이원우와 유지혁은 무이구곡시에 차운하여 용하구곡시를 창작한 바 있다. 나아가 의당의 용하구곡을 계승하여 구곡을 설정하고 시문을 창작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유지혁과 이원우는 구곡을 설정하고 시문을 남기고 있는데,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유지혁은 용하구곡을 모방하여 무이구곡가를 차운하여 大社九巖樵歌를 창작하는데, 바위 이름에 착안하여 참신한 시상을 전개한다. 반면, 이원우의 구곡 관련 시문은 무이구곡·용하구곡을 계승하여 도에 나아가는 단계로 인식하고 자연에 생동하는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공간으로 설정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Yonghagugok and Uidang literary persons focusing on Lee Won-woo, Yang Jae-myeong, and Yu Ji-hyeok.
According to the results of arranging the current status of poetry associated with Yonghagugok, even after carving letters in Yonghagugok, Uidang assigned a new name and created poetic writing. Looking into the Bununjaksi works related to Ganghak, literary persons succeeded to Uidang’s ideas of Jonhwayangi and Wijeongchuksa, and the titles of poems were quoted from the phrases of the Confucian classics and the poems of Taoists. This conforms with 『Sir Uidang’s Collection of Essays』 setting out Uidang’s neo-Confucian view of the world.
Concerning Yonghagugok-si, discussion on Yonghagugok began from fall in 1941 among the writers, and in spring of 1947, Sin Hyeon-guk sent letters to encourage the creation of Yonghagugok-si and complete it. Yu Ji-hyeok’s Yonghagugok-si depicts the beautiful scenery of Gugok grounded on 「Yonghagugok Gakjasasil」, recalls the old days when Uidang carved letters and enjoyed sight-seeing with other literary persons, and expresses the sentiments. This is differentiated from Lee Won-woo’s Yonghagugok-si expressing the beauty of nature based on the neo-Confucian world view.
When Uidang and Hoedang left Yonghagugok in 1909, the literary persons organized Sugye centering around Yonghajeongsa to devote to Ganghak and promote friendship among the members. Gugokganggye organized on November 5th of 1909 performed Sakmangbunhyang at Yeongdang and conducted Ganghoe in spring and fall. Gyohyulgye formed in 1910 put the greatest emphasis on promoting friendship between the members. Later, Yungbogye was organized around 1930 and intended to preserve and succeed to Uidang-hak centering around Uidang’s old house in Jangseon. This organization of various Sugye did influence Bongha Yeongdang and Byeongsan Yeongdang, too. Yongha Yeongdang kept alive from 1909 till 1950 with Yang Jae-myeong and Lee Su-yeong as its pivot, and in 1951, through Yu Ji-hyeok’s endeavoring, it built Byeongsan Yeongdang and enshrined the portrait and carried out Seokchae. Yongha Yeongdang and Byeongsan Yeongdang as the crucial footholds and cradles of Uidang-hak could be continued and preserved with the devotion of Yang Jae-myeong, Lee Su-yeong, and Yang Jae-myeong.
Among the literary persons of Uidang, Lee Won-woo and Yu Ji-hyeok did Chaun from Muigugok-si and created Yonghagugok-si. In addition,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y succeeded to Uidang’s Yonghagugok and set Gugok and created poetic writing. Although Yu Ji-hyeok and Lee Won-woo set Gugok and left their own poetic writing, it reveals different characteristics. Yu Ji-hyeok imitated Yonghagugok and created Daesaguamchoga doing Chaun from Muigugok-ga, and he developed unique poetic concepts paying attention to the name of rock. Meanwhile, Lee Won-woo’s poetic writing about Gugok succeeded to Muigugok and Yonghagugok and took them as a step towards Tao and set them as space where they could realize the rules of all creations being alive i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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