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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韓末 「廣開土王陵碑文」에 대한 接近 -『皇城新聞』 記事의 作成者와 釋文의 出處에 對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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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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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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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07(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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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廣開土王陵碑文」에(이후 ‘碑文’으로 略稱한다) 대한 최초의 언급은 일반적으로 1908년에 완성된 『增補文獻備考』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同 碑文에 대해서는 이보다 3년 앞선 『皇城新聞』의 1905년 10월 4일자 記事에 언급되고 있었다. 해당 기사의 존재는 몇몇 기존 연구들에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물론이고, 기사의 作成者와 釋文의 底本과 같은 기초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규명한 바가 없다. 본 논문에서는 『황성신문』 비문관련 기사의 작성자와 수록된 석문의 저본에 주목하였으며, 1910년 이전까지 있었던 국내의 비문에 대한 접근들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考察하였다. 『황성신문』에 게재된 비문관련 기사의 작성자는 당시 『황성신문』의 사장이자 主筆로 재직하고 있었던 韋庵 張志淵이었다. 그는 1905년 大韓帝國 朝廷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시찰단과 동행하여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일본의 帝室博物館(현재의 東京國立博物館)에서 비문의 拓本을 실제로 보았으며 在日 韓國人 留學生 朴容喜가 박물관에서 작성한 탁본의 筆寫本을 기증받아 국내로 搬入하였다. 해당 비문탁본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카와 카게노부[酒勾景信] 中尉가 일본으로 반입한 雙鉤加墨本으로 확인된다. 사카와 카게노부의 쌍구가묵본은 고마츠 아키히토 신노[小松宮彰仁親王] 少將의 原石拓本과 더불어 1905년 당시에 일본에 공개되어 있던 것으로 확인되는 두 개의 탁본 중 하나였다. 사카와 카게노부의 쌍구가묵본은 최소한 1888년 이후에는 宮內省에 소장되어 궁내성 所管이었던 당시의 제실박물관에 전시되었고, 프랑스인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이 동일한 곳을 방문한 다음 1898년에 발표했던 論考에서도 언급되는 점으로 볼 때 19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동일한 장소에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1910년까지 국내의 비문에 대한 접근은 1905년 『황성신문』이후 1908년 『증보문헌비고』와 1909년 『西北學會月報』 第 9號에서 확인된다. 『증보문헌비고』는 장지연이 纂輯委員으로 참여하였다. 『증보문헌비고』와 『황성신문』에 게재된 석문이 거의 동일한 점, 비문에 대한 설명에 있어 前者가 後者의 것을 단순히 縮約한 점으로 보아 『황성신문』의 비문관련 기사가 『증보문헌비고』의 비문관련 기록을 작성하는데 있어 많은 참고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지연이 統監府와 親日派 官僚의 견제를 받아 찬집위원에서 2개월 만에 해임되었기에 비문과 관련된 자료제공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북학회월보』 제 9호에는 白巖 朴殷植의 주도로 비문관련 자료가 게재되어 있다. 박은식은 淸나라 학자 榮禧의 저술을 참고하였다. 『황성신문』의 비문에 대한 접근은 1908년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1910년 이전 국내에 유입된 비문의 석문은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더보기The first mention of the Epitaph of King Gwanggaeto (hereinafter referred to as the “Epitaph”) in Korea is generally known to appear in Jeungbomunheonbigo[增補文獻備考] completed in 1908. However, a Hwangseongshinmun article dated on October 4, 1908 has already mentioned the Epitaph three years before that. Although the article’s presence has been noted by earlier studies, the content of the article, let alone the basic details such as the writer or the original decipherment on which the article based its interpretation, has not been clarified. This paper examines the writer of the article and the original decipherment, with an emphasis on the correlation between the local scholar’s approaches to the Epitaph before 1910. The author of the article on the Epitaph was Jang Ji Yeon[張志淵] then owner and editor-in-chief of the Hwangseongshinmun. In 1905, he accompanied an inspection team of the Royal Court of the Great Han Empire[大韓帝國] to Japan, and saw in person a rubbing of the Epitaph in Japan’s the Museum of Imperial House[帝室博物館](now known as the Tokyo National Museum). He was given a manuscript of the rubbing produced by Park Yong Hee[朴容喜], a Korean student studying in Japan, and brought it into the country. The rubbing is confirmed to be the Shuanggu Print[雙鉤加墨本] which Lieutenant Sakou Kagenobu[酒勾景信] brought into Japan. It is currently exhibited in the Tokyo National Museum. Sakou Kagenobu ’s Shuanggu Print was one of the two rubbings which were confirmed to be in display in Japan in 1905, along with the initial rubbing belonging to Major General Komatsu Akihito Shinno[小松宮彰仁親王]. By no later than 1888, Sakou Kagenobu’s Shuanggu Print was in possession of the Imperial Household Agency[宮內省], and was in display in the Museum of Imperial House under the agency’s control. Sakou Kagenobu’s Shuanggu Print appears to have stayed in the museum since the end of the 19th century, considering Maurice Courant, a French diplomat, mentioned it in his paper published in 1898 after his visit to the exhibit. The local academic approach to the Epitaph after the Hwangseongshinmun article in 1905 appears in the Jeungbomunheonbigo in 1908 and the 9th edition of the Seobukhakhoewolbo[西北學會月報] in 1909. Jang Ji Yeon participated as a member of the editorial board of Jeungbomunheonbigo. Considering that the decipherment appearing in the Jeungbomunheonbigo and Hwangseongshinmun articles are almost identical, and that the former summarized the latter in its explanation of the Epitaph, the Hwangseongshinmun article is likely to have served as a good reference material for the Jeungbomunheonbigo article. However, since Jang Ji Yeon was dismissed from his position in the editorial board only after two months due to political pressure from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of Korea[統監府] and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the Hwangseongshinmun article could not have served the Jeungbomunheonbigo article more than merely as a source material on the Epitaph. The 9th edition of the Seobukhakhoewolbo published its findings on the Epitaph under the leadership of Park Eun Sik[朴殷植]. Park Eun Sik referred to the writings of Róng Xǐ[榮禧], a scholar of Qing dynasty. The Hwangseongshinmun article’s approach to the Epitaph was not succeeded after 1908, and the decipherment of the Epitaph brought into the country before 1910 is confirmed to exist in two types.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1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6-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05-05-29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東아시아古代學 -> 동아시아고대학 | KCI후보 |
| 2005-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03-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33 | 0.33 |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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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 0.29 | 0.686 | 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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