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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cademic Factors in the Development of Korea and Japanese Folklore Schola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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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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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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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는 韓 ㆍ 日民俗學이 發展해 온 過程을 살펴보면서 외부적 요인에 의한 영향과 상호성을 考察한 것이다. 日本을 比較의 對象으로 한 것 은 地政學的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韓國民俗學이 生成하는 過程에서 日本을 전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韓國民俗學이 學問으로서 目的意識을 가지 고 출발한 것은 1920年代 부터라고 할 수 있다. 韓國民俗學의 發生起源을 말할 때 두가지 假說 이 존재한다. 하나는 朝鮮朝 中葉서부터 움튼 實學에서 民俗硏究가 있어 왔다는 주장과 또 하나는 崔南善ㆍ李能和를 韓國民俗學의 開拓者로 보는 주장이다. 그러나 筆者는 民俗學이 科學으로 동장하기 위해서는 實證的인 現地 資料의 科學的 採集ㆍ整理ㆍ分析 등의 과정이 必然的이 기 때문에 이 두 주장이 民俗學의 發生을 돕는 動機와 脈絡은 되었을 지언정 實證科學으로서의 民俗學의 發生으로서 受容하기에는 주저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1920年代부터 個人的인 硏究活動을 지속하다가 드디어 組織的이고 休系的인 硏究의 必要性이 강조되어 1932年에 韓國民倚學會가 發足하게 된다. 이 무렵의 學會環境(분위기)에 대해서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時期는 政治的으로 暗黑 그대로였다. 日本植民地下에서 學問의自由는 억제당하고 植民地政策에 도움을 주는 방향에서 총독부 당국은 公務員과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民俗資料를 蒐集했었다. 한편 日本에서 는 國學者들에 의해서 소위〈日朝同祖論〉이 대두되고 모든 人文社會 부분에 이러한 思想이 主流를 형성했었다. 韓日은 같은 祖上이므로 韓國이 日本에 귀속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韓 國의 知識人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으며 여기에 자극되어 韓國民俗學硏究가 學會를 토대로 發展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世界二次大戰이 끝나고 韓國은 獨立을 했지만 動亂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런 渦中에서 李承?, 朴正熙, 全斗煥政權이 이어지는동안 韓國民俗學에도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李承硬政權 당시는 文盲者 退治運動과 더불어 迷信打破運動이 展開 되었다. 이 때문에 民間信仰分野는 陽性化되지 못했으며 일반의 民俗에 대한 인식도 不足했다. 이런 環境에서 民俗學의 發展도 기대할 수 없었으며 다만 國文學者 중에 일부 관심 있는 學者들에 의해 口碑文學硏究가 活發하게 展開되었었다.
朴正熙政權 때는 구체적으로 前後期로 나눌 수 있는데 前期는 새마 을운동으로 인해, 意識化 이전의 生活環境의 近代化라는 명목으로 많은 民俗資料가 파괴되었고 이 때문에 老人들과 靑年들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한편 後期는 소위 民族正統性과 主?性 운동이 있었고 이 무렵에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文化藝術振興院과 같은 機關이 活性化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巫俗硏究의 本格冊究가 가능했고 모든 分野에서 巫俗이 援用되기도 했다.
全斗煥政權 때는 民俗藝術 분야에 관주도하가 더 심화되었다. 소위 <國風81>이 그 實例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文化政策에도 불구하고 일부 大學生들은 反政府運動을 展開하면서 탈춤, 농악, 무당굿, 민요 등이 원용되면서 大學街에 民俗이 보급했다. 民俗理解의 폭이 넓어진 것은 鼓舞的이라 할 수 있지만 學問的인 側面에서는 杞憂도 없지 않다. 마치 理論과 實際의 不協和音이 ?存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日本에서 柳田民俗學이 생긴 것은 1910年代라고 할 수 있다. 柳田은 원래 農政學이 전공이었고 농촌개혁운동의 일환으로 鄕土冊究會를 構成했었다. 1950年代初까지도 일반에서 日本民俗學이라 하지만 실상은 柳田民俗學이 라 할 수 있을만큼 柳田 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敗戰으로 일시 혼란은 있었지만 곧 政治的 安定을 찾아 經濟的 復興 을 도모하게 되었다. 韓國에 비하면 政治的, 經濟的 安定이 빨리 찾아 왔고 그 때문에 美國이나 西歐로부터 새로운 理論이 洪水처럼 밀려와 日本民俗學에도 이런 渦中에서 柳田民俗學에 새로운 수정 이 가해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런 論爭이 계속되는 동안 都市民俗學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하나 중요한 事實은 經濟成長으로 인하여 마쯔리 (祭儀) 가 西歐의 festival과 같은 형태와 성격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事實이다. 素朴 하면서도 外部에 露出하기를 忌避하던 祭儀가 陽性的언 共同의 祭儀로 탈바꿈하면서 都市化가 되었다. 日本의 마쯔리는 점차 都市化가 되면서 복잡다난한 현대의 産業構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능을 하면 서 다시 솟아나는 集約된 새로운 힘이 生?의 ?果를 북돋아주는 機能 으로 發展했다.
한편 韓國의 民俗藝術은 政府가 힘을 들인 것에 비하면 그 效果는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民俗이 발굴되어 경연대회에서, 공연장 에서 발표되기도 하지만 官主導下의 民俗振興은 오히려 行事寫主가 되 었을 뿐, 農漁村經濟發展이 뒤따르지 아니한 상태에서 진정한 民俗의 發展은 기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認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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