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생황 소리: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단원도(檀園圖)>와 김홍도(金弘道)의 내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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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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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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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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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17(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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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재위 1776-1800)시대를 대표하는 국중(國中)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 (金弘道, 1745-1806년 이후)는 문인 수준의 지적 소양까지 겸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양반이 아니면 사회적 대우를 거의 받지 못했던 신분제 사회의 질곡은 김홍도 또한 넘기 힘든 벽이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형성 된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는 한계 속에서 김홍도가 느꼈을 비애와 자기 연민을 중심으로 이러한 그의 신분 의식이 어떻게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신분제적 모순에서 김홍도가 느낀 소외감과 불만을 유추해보는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이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림 오른쪽에 적혀있는 김홍도의 제발로 그 내용은 “생황의 [길고 짧은] 들쑥날쑥한 모습은 봉황의 날갯짓 같고 월당(月堂)에 울려 퍼지는 생황 소리는 용(龍)의 울음보다 처절하네(筠管參差排鳳翅, 月堂凄切勝龍吟)”이다. 김홍도가 느낀 신분제적 차별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용의 울음(龍吟)”이다. 중인 출신의 시인이었던 이득원(李得元, 1639-1682)은 한 시에서 “용처럼 으르렁거리고(龍吼) 빈산의 귀신처럼 울부짖는 칼”로 신분제적 차별 속에서 고통받았던 자신을 비유하였다. 그런데 이 제발에서 김홍도는 용의 울음보다도 더 처절한 생황 소리를 자신의 울분과 고뇌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활용하였다. <단원도(檀園圖)>(1784년, 개인 소장)는 김홍도가 1781년에 자신의 집에서 강희언(姜熙彦, 1738-?), 정란(鄭瀾, 1725-?)과 같이 가진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제발에서 김홍도는 이 모임을 ‘진솔회(眞率會)’로 지칭하였다. 그런데 이 진솔회는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던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아회였던 ‘진솔회(眞率 會)’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김홍도가 자신의 모임을 사마광의 진솔회에 비유한 것은 그가 스스로에 대해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홍도는 당시(唐詩), 송시(宋詩)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다수의 시의도(詩意圖)도 제작하였다. 김홍도는 문 인적 소양을 갖춘 화가로 높은 자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김홍도는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중인으로서 그가 느낀 슬픔과 좌절감은 그의 그림 속에 녹아있다. 정조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도화서 화가였던 그의 화려한 명성 뒤에 숨어있었던 그의 신분 의식을 고려하지 않는 한 우리의 김홍도에 대한 이해는 절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더보기Kim Hongdo (1745-after 1806) was the most eminent painter of his day.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under the reigns of Yeongjo (1724-1776) and Jeongjo (1776-1800), the Joseon dynasty enjoyed a period of peace and prosperity. The social and economic changes of the eighteenth century were accompanied by a new openness to cultural variety, artistic creativity, and innovative thinking. The art of Kim Hongdo was at the heart of the changes. Unlike many of his colleagues, Kim Hongdo was not born into a family of court painters but born into a family of low-ranking military officials and rose to prominence as the most eminent court painter during King Jeongjo’s reign. Despite his reputation and success as a painter, his social status was low. He was a member of the jungin class, the second status group of professionals and functionaries such as doctors, interpreters, accountants, and painters. Due to his status, Kim was not able to climb the social ladder. While the ruling yangban (officials and degree-holders) class enjoyed power and privilege, jungin men were denied access to high officialdom no matter how outstanding they were. Kim had an extensive knowledge of Chinese classics and poetry. Kim’s pride in his talent and knowledge is well demonstrated in Sandalwood Garden, dated 1784, now in a private collection, that depicts an elegant gathering held at his home in 1781. In his inscription, Kim associated this gathering with that hosted by the eminent Northern Song scholar-official Sima Guang (1019-1086) to express his self-esteem as an intellectual painter. Although he was a man of letters whose intellectual capacity is comparable to that of a yangban literatus, Kim was not able to change his social standing. Clearly aware of the social discrimination that the class hierarchy brought to his life, Kim Hongdo used his paintings as a means of expressing his sorrow, despair, and melancholy. Kim’s growing awareness of class, self, and identity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making of his art. Kim’s inscription derived from a poem by the late Tang poet Luo Ye (825-?) on A Taoist Immortal Playing the Pan Flute under a Pine, now Korea University Museum, reveals his sadness, anguish, and depression. This paper examines how Kim worked and lived in extremely hierarchical Joseon society as a jungin painter and how he explored his psychological self-hood and identity in his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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