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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방어실태와 성주(星州) 전투 = The Status of Defense at the Initial Period of Imjin-War(壬辰倭亂) and the Seongju (星州) Comb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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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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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위화도 회군이라는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성립한 나라이기 때문에 역대 국왕들은 군사 문제에 대단히 예민하였다. 특히 태종은 병권을 권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국왕의 병권 독점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병제를 혁파하고 공병제를 확립하였으며, 장군과 군인 간의 사적 관계를 철폐하였다. 그리고 이후 조선 정부에서는 군대를 평시체제와 전시체제로 구분하여, 평시체제의 지휘관은 전시에는 자신이 평소 선발하고 훈련한 군대를 통솔할 수 없고, 중앙에서 별도로 임명한 지휘관으로 하여금 그 군대를 통솔하도록 하였다. 이에 전시체제 지휘관은 전시에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군대를 데리고 전장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전시체제 지휘관에는 국왕이 가장 신임하는 대신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체제를 유성룡이 ‘제승방략’이라고 잘못 칭하면서 오해가 발생하였다. 즉 그는 진관체제가 변하여 제승방략이 되어 임진왜란 초기에 패배하였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오해였다. 진관체제는 평시체제로서 제승방략이라고 말한 전시체제와는 차원이 다른 체제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초기 방어 체제와 관련하여 북상하는 일본군을 피해 정신없이 피난 가는 조정으로부터 어떠한 특별한 조치가 내려오지 않는 상태에서 전라도와 경상우도의 대응 태세는 사뭇 달랐다. 전라도는 평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로써 전시 상황에 대처하였다. 원래는 평시체제의 지휘관이 전시에 자기 휘하의 군대를 통솔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전시체제의 지휘관을 내려 보내지 않자 평시체제의 지휘관인 전라감사가 전라도 진관군사들을 직접 통솔하였던 것이다. 이에 전라감사 이광은 전라도 군사를 이끌고 용인까지 북상하여 왕명을 기다리다가 전투에서 패배를 겪기도 하지만, 다시 전라도 지역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관할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군의 진입을 격퇴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경상도에서는 임진왜란 초기 전투에서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모두 붕괴됨에 따라 각처의 사족들이 의병장이 되어 산졸(散卒)들을 수습하여 왜적 퇴치에 나섰다. 그런데 이러한 의병 조직은 전시체제와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즉 정부에서 파견된 전시체제의 지휘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의병장들이 전시체제의 지휘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왜적을 퇴치하였던 것이다. 경상우도의 예를 들면, 김면, 곽재우, 정인홍 등 세 명의 의병 대장이 담당 구역을 나누어 해당 군현의 군사를 통합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전시체제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의병 조직의 내부 모습도 의병장 아래 참모장, 선봉장, 복병장, 돌격장, 좌부장, 우부장 등 여러 직책을 두었는데, 현직 관리가 이 직책에 참여하고 있었다. 즉 전라도는 평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란에 대처하였고, 경상우도는 변형된 전시 체제를 갖추어 왜적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성주 전투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이형석의 『임진전란사』에 따라 3차례 전투가 있었다고 알려져 왔다. 성주 전투를 다룬 책이나 논문에서도 대체로 3차례 성주 전투가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난중잡록』을 살펴보면 성주 전투는 3차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성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려 18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 와중에 수많은 의병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성주성에서 일본군을 몰아내었다. 그런데 성주 ...
As Chosun was a country founded with the military coup caused by Wihwado(威化島) Retreat as a chance, the kings of the country throughout the history were quite sensitive about the employment of the military. Particularly, Taejong(太宗) regarded military power as the source of authority and abolished the private miliary system but established the public one in order to make the king’s monopoly of the military power firmly, and he also abolished the private relations between the general and soldiers. Later, Chosun government divided the military organization into peace and war footings and did not allow the commander of the peace footing to lead the military that he had selected and trained himself during the war and allowed the commander appointed additionally by the center to command the military.
Concerning the defense system at the initial period of Imjin-war, Jeolla-do(全羅道) and Gyeongsangwu-do(慶尙右道) dealt with it quite differently. Jeolla coped with the wartime situations while maintaining the peace footing. Originally, the commander of the peace footing was not allowed to lead the military under his command during the war. In the urgent situation, however, as the government did not send the commander of the war footing, Jeolla’s governor, the commander of the peace footing, did command and control the troops and soldiers. In Gyeongsangwu-do, however, as both peace and war footings collapsed at the early period of Imjinwaeran, sajok(士族) from all different places became the forces leader and collected the scattered soldiers to go out to drive away the Japanese invaders. Yet, that forces organization was similar to that of the war footing.
About the Seongju(星州) Combat, it has been known that it took place three times, but according to 『Nanjungjaprok(亂中雜錄)』, those three times were not all. To recover Seongju Seong(星州城), either large or small combats had developed up to 18 times. In the meantime, a lot of righteous armies were sacrificed. The righteous armies’ activity was even more noticeable in Gyeongsangwu-do than in Jeolla-do. As one of the reasons for that, we can point out the fact that peace and war footings both collapsed in Gyeongsang and also solidarity among sajok(士族) and their control over the people were stronger there than in Jeolla.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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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7-10-23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Military History Institute, MND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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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military history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9 | 0.69 | 0.6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6 | 1.024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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