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 실태와 정체성
저자
발행기관
-
발행연도
2011년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본연구는 일본의 종군간호부와 비교하여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 배경과 과정, 전장에서의 역할과 생활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가늠해본 것이다. 일본간호부들은 충군애국 또는 가계보조라는 의무를 큰 부담 없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부심을 갖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십자사 구호간호부이지만, 육군, 해군 간호부의 지원도 그런 사회적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전쟁 분위기 속에 그들은 말 그대로 '백의의 천사'를 선망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 임한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엄혹하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대체로 16, 17세의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된 어머니, 또는 누이로써의 역할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폭격과 공습에 대처하는 것에서부터 부상병 간호, 사망자의 처리까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군'의 간호부라는 명분 아래 내색도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하나에서 열까지 그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았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가시지 않고 있다. 그래도 피해자 일부는 후세에 바른 역사 인식과 반전평화의식을 심어주는 사회운동 등에 힘쓰고 있다.
한편 식민지 조선이나 대만의 간호부들은 일본 간호부와 또 달랐다. 이들을 적십자간호부, 육군간호부,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다는 것이 그리 선명한 것은 작업은 아니다. 단지 일적간호부와 육군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간호부 동원이나 모집의 주체에 따른 것이라 하겠지만, 그 역할이나 실제 전장의 생활에서는 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전장이란 조건이 혹독하였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는 모두가 다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일본인 간호부 또는 적십자구호간호부 등과 조선인간호부의 차별은 특히 임시나 단기로 종군한 기타간호부의 경우 자격,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처우문제, 그리고 업무상의 차별 등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주사, 투약 등 환자 간호라는 본업과 빨래 등 보조 업무 상의 차별을 경험하였으며, 민족적 성적 계급적 차별을 알게 모르게 경험하기도 하였다.
또한 육군간호부 안에서도 기타 임시간호부로 구분한 것은 여성 자신이 알고 응했는가, 교육을 받고 간호부를 한 것인가 등의 차이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기타 임시간호부가 교육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간호부의 역할을 다해야 했던 것도 또 다른 제도적 강제동원의 피해라 할 수 있다. 당시 그들 사이에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전 후 보상 등에서 아직도 그들은 큰 차별을 받고 있고, 귀국 후 모국에서의 상황도 힘들기만 하였다. 개인적인 처지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일본군의 협조자로, 또는 전쟁의 동조자로 친일파처럼 지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런 것도 그들의 생활에 적잖은 차별과 실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케 하는 피해인 것이다.
전장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간호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친일 또는 전쟁 협조 여부를 떠나 그 때 그 곳에서 사람이 해야 할 도리였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당시에 부상병을 치료하여 다시 전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전후에 반전, 염전, 평화 의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연구가
The Real Mobilization and the Identity of Korean Military Nurses during the Asia-Pacific War
War nurse is a general term for "nurses sent to the battlefield to attend on wounded soldiers". During the second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the shortage of nurses were made up by new recruits from Japanese Red Cross and army volunteers, whose number and identities are not clear. One Japanese dictionary defined that nurses were called "angels in white" and nursing was one of honorable occupations for women.
In principle, military nurses could be divided into two groups; the Red Cross relief nurses who had received trainings from institutions like the Red Cross, and nurses who were recruited into the army. But in this thesis, three groups are divided temporarily.
1) Red Cross Relief Nurse : Nurses in this category had pride as female professionals devoted to the authority of the Japanese Emperor and nation. Their spontaneity was encouraged on an institutional level.
2) Army Nurse : These nurses thought that their sacrifice as women in a patriarchical society was compensated by the opportunity to improve themselves. They considered themselves proud members of the military and faithful (second grade) citizens of the Japanese Empire.
3) Temporary Nurse, Practical Nurse and Nurse Intern, etc. : These nurses were mobilized while in training. Many of them were inexperienced, but they could not resist the social imperative. Many temporary nurses (臨看) or hired women (傭人) were mobilized as reserve labor force. They were subject to discrimination at work and with regard to the social position, and had no guarantee for the status.
Military nurses in colonial Chosŏn were female professionals of a modern, but largely patriarchical society. They supported their families and had the chance to improve their social status. This, in addition to the pressure from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motivated them to respond to the call for recruits without much hesitation.
They also were mobilized under the name of "angels in white" and played a key role for the communication between Japanese doctors and wounded Chosŏn soldiers. There were widespread discrimination in favor of Japanese nurses or relief nurses in training (education), wage, working hour and job description. In addition to the regular works of caring the sick, such as injection and drug preparation, they had to do the washing and other chores and experienced discrimination on the grounds of nationality, gender and class. The situation was even worse for those who had previously been ordinary army employees, such as 'comfort women', before they were incorporated as the temporary nurses. All of them are the poor victimes during the second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usage
내책장담기
0
내보내기
0
SNS공유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