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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G. Engel)의 선교사역과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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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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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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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25(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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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호주장로교회 해외선교부를 대표하여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수로 활동한 엥겔(George/Gelson Engel, 王吉志, 1864-1939)의 선교활동과 신학사상을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엥겔은 한국의 사역기간 중 대부분인 31년간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함으로 초기 한국 장로교회 신학 교육의 기반을 닦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뛰어난 어학(특히 성서 원어) 실력에 학문적 소양을 갖춘 일제시대 장로교회의 대표적 선교사 신학자였다.
엥겔은 19세기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중요 거점 중 하나였던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에서 출생하여 대학생 시절 경건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조직된 해외선교단체인 바젤선교회에 가입하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1892년 인도 푸나지방에 파송을 받아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건강 때문에 인도 사역을 6년 만에 중단하고 인도에서 결혼한 아내의 고향인 호주로 가서 일반학교 교육에 종사하다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개척한 호주 빅토리아장로회 해외여선교부 요청을 받아 1900년 내한하여 부산에서 선교사역을 재개하였다. 처음엔 부산을 동래를 거점으로 동래와 울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6년 부터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성서원어와 교회사를 강의하였는데 그 사이 경남노회장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성경 개역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엥겔은 1937년 은퇴한 후에 호주로 돌아가 멜버른에서 요양하다가 2년 후 별세하였다.
신학자로서 엥겔은 자신의 전공인 교회사 분야에서 『更正後史記』(1915)와 『古敎會辨證論』(1915) 두 권의 저서와 교회사 및 성서학, 이론신학, 목회학, 선교학 관련 3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역사신학자로서 엥겔은 자신의 저술 두 권에서 보이듯 초대교회 변증신학과 종교개혁 이후 근대 선교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엥겔은 경건주의 전통의 바젤선교회에 가입한 후 선교사 훈련을 받았던 에든버러에서 접한 스코틀랜드장로교회의 개혁주의 신학과 선교운동을 중요시하였고 거기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두었다. 그러면서도 인도와 호주에서 사역하는 동안 감리교회와 호주 장로회 신앙 전통을 접하였고 ‘에큐메니칼’ 입장에서 내한 후에 교파와 교단이 다른 선교부 선교사들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다양한 연합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선교사로서 엥겔은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열린’ 사고와 입장에서 한국의 토착 문화와 전통을 대하였다. 내한 직후 발표한 영문 논문들은 한국의 전통 민담과 설화를 소개한 것으로 피선교지 한국인의 전통문화와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반영된 것들이다. 그는 토착 문화와 종교를 구별하여 대할 것을 요구하면서 토착 문화와 전통, 관습과 풍속에 대해서는 선교사들이 ‘적응주의’(adaptionism)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하였고 비생산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풍습의 개선도 토착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고쳐나가도록 계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토착종교의 미신적 요소도 ‘영적으로 깨친’(enlightened spiritually) 교인들이 스스로 정리해 나가도록 기다리고 도와주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인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면에서 엥겔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서구(특히 미국)의 일부 선교사들에게서 발견되는 민족적 우월감, 인종적 차별주의를 극복한 선교사의 예를 보여주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구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구별하면서 “한국이 사악한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토착 교인들이 ‘동양적인’ 방법으로 한국에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해 나가기를 간구하였다.
Dr. George Engel(王吉志, 1864-1939) was born and nurtured in Wurtemberg of Southern Germany under religious atmosphere of pietism. He studied Arts and Theology in Basel, Switzerland and went to Edinburgh, Scotland for training program as a missionary of Basel Missionary Society. In 1892 his missionary career opened in India where he served at the Taylor School in Poona and married to Clara Bath, daughter of Methodist pastor in Australia. But in 1898, to his sorrow, he had to suspended mission work in India for his ill health and migrated to Australia where for some years he served as principal of a local school. In 1900 when a new door of Korea mission opened to Engel, he arrived with his family in Pusan as a superintendent of Korea mission of the Women's Missionary Society but later transferred to the Foreign Missions Committee of the Victorian Presbyterian Church in Australia.
He took pastoral work in Pusan with itinerary evangelistic trips in southeast part of Kyungsang-do at first and from 1906 began to serve as a professor of th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Pyengyang until his retirement from mission in 1937. Engel lost his wife in 1906 and one year later he married again to Miss A. Brown, one of the pioneer women missionaries to Korea. During his teaching of Church history and biblical languages at the seminary Engel began to publish a theological journal The Theological Review(神學指南) and partook in the ecumenical revision work of Korean Bible. Also he took the position of the chairman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1913 and an editor-in-chief of History of Korean Presbyterian Church(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 In 1920 the Wooster College, Ohio of America, gave him the degree of D.D. in honour of his various services in mission field. After retirement Dr. Engel returned to Australia and spent his last two years in Melbourne.
Dr. Engel served as a professor at the theological seminary 31 years in his 37 years of missionary service in Korea. Korean students and missionaries altogether told him a scholar by nature. As Charles I. McLaren commented, “Learning was his bent and teaching an instinct.” He wrote two books in Korean as the text book for theological students, Church History: Post Reformation Period(更正後史記) and Apologetic History of Ancient Church(古敎會辨證論) with about fifty articles in English and Korean. As a presbyterian theologian, he took the position of a conservative evangelical tradition which stressed upon the salvation of Christ and paracleitos work of the Holy Spirit but also took ecumenical attitude to other protestant denominations. As a Church historian, he wrote many articles and books on the early Church's dialectical theologies and mission history of protestant and catholic Churches in post-reformation era. He showed deep concern to the reformation history of Scotland in 17th century but also took a ‘neutral' attitude toward Catholicism.
And finally, as a missionary, he had a confidence firmly in evangelicalism but also an inclusive attitude to native culture. In his article “Native Customs and How to Deal with Them”(1904), he suggested that foreign missionaries should have ‘large hearted and liberal' attitudes in regard to the native customs and national traditions. He warned against the national prejudices and peculiarities of westerners in mission field. He insisted that if there were something to be changed in native customs they would be changed by the Korean Christians as they received more ’spiritual enlightenment' and God's Word and His Holy Spirit would bring about the changes in the customs of this nation that would make it a truly Christian nation, as truly as nations in the west. And he closed his writing in a following prayer: “May God grant that western civilization, with it's baneful influences, will leave the Korean church untouched!” Truly, Dr. Engel was one of a few foreign missionaries who could overcome the error of orien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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