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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官職)으로 본 난계 박연의 음악 업적 연구- 난계의 관직생활(官職生活)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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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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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 박연(朴堧:1378~1458)은 아악의 제정과 악기 제작으로 조선 초기 예악의 구현에 공헌한 인물이다. 삼대 악성(樂聖)으로 불리며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 만큼 선생의 음악 업적과 음악관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박연의 음악 업적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음악 기관을 중심으로 종사했던 관직생활에 관한 연구가 필요함에도 현재까지 이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전반적인 제수 관직의 품계와 임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악학별좌 및 악학제조의 겸관(兼管) 기간을 산정(算定)해 보았고 관직에 따른 음악 업적을 정리하여 비교․분석했다. 악학에 근무하기 이전의 관직은 난계유고(蘭溪遺稿) 중 “신도비명(神道碑銘)”의 내용을 대부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추증(追贈)하듯이 관직을 높여서 기록한 관계로 명확한 직위와 품계를 파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인용하되 근무 부서만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수정될 수 있도록 재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서는 음악 관직의 이동 경로에 따른 업적을 비교․분석했다. 기존의 연구는 겸관 명칭을 기재하지 않은 실록의 사례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학별좌의 종사 기간을 분석할 수 없었다. 이에 3품에서 6품까지 품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악학별좌 관직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사건과 행적을 대조했다. 그 결과 세종 7년부터 약 20년 동안 악학별좌를 겸직하며 임무를 수행했음을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악학별좌의 종사 기간을 크게 관습도감사 전직(轉職), 전후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먼저, 세종 7년부터 13년 말까지는 박연의 음악 업적 중 찬란한 공적을 이룩한 시기이다. 악학별좌 겸 봉상판관(종5품), 악학별좌 겸 봉상소윤(정4품)의 직책으로 율관과 편경의 제작, 제례 및 조회 아악의 제정을 주도했다. 당시 활약했던 악학별좌는 박연 외에 남급과 정양이 있었고 이들 역시 겸관으로 음악 사업에 참여했다. 둘째, 세종 13년 12월부터 약 1년은 회례아악(會禮雅樂)의 제정을 위해 잠시 관습도감사(慣習都監使)로 전직(轉職)되어 임무를 수행한 시기이다. 악장(樂章)의 창작과 악공의 채용, 회례악기(會禮樂器), 관복(冠服)을 비롯한 무구(舞具)의 제작과 같은 막대한 임무가 즐비했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파견을 명한 것이다. 이는 당시 사관이 기록한 별감(別監)의 관직 명칭을 통하여 파견 관리임을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악학으로 복귀한 세종 15년 이후는 관직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시기이다.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로 파직을 당했지만 복직한 이후에 악학별좌 겸 판봉상시사, 악학별좌 겸 공조참의, 악학별좌 겸 예조참의 등 주요 부서의 요직을 도맡으며, 제례를 중심으로 한 문물제도(文物制度)의 확립에 충실했다. 고제(古制)에 입각한 치밀한 고증(考證)의 과정을 통하여 제례악(祭禮樂)뿐 아니라 제기(祭器), 제단(祭壇), 제례 방식을 보완하여서 제례 의식을 재창조하는데 치적을 이루었다. 악학제조는 세종 26년에 종2품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 제수된 이후부터 단종 조까지 역임했다. 당시의 음악 행적은 상대적으로 미비하여 악학별좌의 행보와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인순부윤, 인수부윤을 역임하며 왕실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고 세종대왕이 지어 올린 불가(佛歌)의 거행에 관여하는 등 승하 직전까지 곁에서 보필하였다. 단종 조에는 음악을 찬연(鑽硏)한 공을 인정받아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加資)되었고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이로써 박연이 악학․철학․문학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존경받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박연의 관직 품계와 임무에 관한 분석을 토대로 악학별좌 및 악학제조의 겸관 기간을 밝혔다. 관직에 따른 음악 행적의 경로를 파악하였고 이를 통하여 인물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더보기Nangye Park-Yeon(1378~1458) is a figure who contributed to the realization of Yeak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by establishing court music and producing musical instruments. Called one of the three major musical saints of Korea, he is regarded as important in the history of music, so that there have been active researches on his musical achievements and view of music. However, despite the necessity to research Park-Yeon’s official life focusing on musical institution to clearly understand his achievements, there have been no reviews on this part. Thus, this study examined the grade and duties of public posts that were ordained to Park-Yeon. Based on it, this study examined the service period of concurrent post that was not clearly revealed till today, and also comparatively analyzed his musical achievements in accordance with his public posts. Regarding his official life before working for Akhak, the contents of “Sindobimyeong” of Nangyeyugo were quoted. Because most of the public posts were exaggeratedly recorded just like the posthumous conferment of honors, it was not contradictorily connected to the grade of sixth-grade Uiyeonggobusa initially shown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refore, this study concluded that it would need to modify the contents presenting the working departments only when quoting “Sindobimyeong”. Meanwhile, through the records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is study comparatively analyzed Park-Yeon’s musical achievements in accordance with the moving path of public posts based on the grade of public posts and musical events. As the existing researches only depended on the records of the annals about concurrently held with Bongsang Pangwan, the name of omitted Akhak-Byeoljwa could not be understood, and the service period was estimated as three years, which was the limitation. However, in the results of comparison by keeping in mind the characteristics of Akhak-Byeoljwa post in which he could comprehensively work from third-grade to sixth-grade, he held the positions of other departments concurrently for about 20 years from the 7th year to 26th year of King Sejong reign. Thus, most of the music projects he participated in were done when he was in the position of Akhak-Byeoljwa. The service period of Akhak-Byeoljwa that left numerous musical events was divided into three parts such as Gwanseupdogamsa, change of job, and afterwards based on the moving path of public posts. For about a year from December of the 13th year of King Sejong reign, his position was changed to Gwanseupdogamsa for a moment to establish court music for Hoerye. The King Sejong ordered his appointment as there were lots of important duties such as creation of movements, recruitment of court musicians, and production of instruments for Hoerye and dancing tools like official uniform. This could be estimated as a dispatched official based on the name of public post in Byeolgam recorded by recording officers of the time. For about a year from December of the 13th year of King Sejong reign, his position was changed to Gwanseupdogamsa for a moment to establish court music for Hoerye. The King Sejong ordered his appointment as there were lots of important duties such as creation of movements, recruitment of court musicians, and production of instruments for Hoerye and dancing tools like official uniform. This could be estimated as a dispatched official based on the name of public post in Byeolgam recorded by recording officers of the time. After the 15th year of King Sejong reign when he returned to Akhak, he took in charge of major positions like Panbongsangsisa, Gongjochamui, and Yejochamui, which could be regarded as the period in which he devoted himself to the establishment of civilization system focusing on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Through the elaborate process of historical research based on the ancient statute, he left a legacy of achievements in the recreation of ritual ceremony by complementing ancestral ritual music, utensils for ancestral rites, altar, and ancestral ritual method. Akhak-Jejo was successively held from when appointed as Insunbuyun of the second grade in the 26th year of King Sejong reign to King Danjong reign. The musical events of this time were relatively insignificant, which was contrasting to the events of Akhak-Byeoljwa. However, he faithfully assisted King Sejong until he passed away like taking in charge of works related to royal family in the position of Insunbuyun and Insubuyun, and getting involved in the performance of Buddhist song presented to King Sejong in the process of Buddhist ceremony in a newly-built Buddhist temple. During the King Danjong reign, after being appointed as Jaheondaebu of the second grade for the credit of deeply researching music, he reached Yemungwandaejehak. This shows that Park-Yeon is not only a musicologist, but also a scholar equipped with moral character, familiar with philosophy and literature. Based on the analysis of grade and duties of Park-Yeon’s public posts, this study examined that it was the period of concurrently holding Akhak-Byeoljwa and Akhak-Jejo.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was to establish the measures for researching the history of man, which could understand the path of musical events in accordance with Park-Yeon’s public po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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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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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3-01-01 | 등재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8-01-01 | 등재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 200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0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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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44 | 0.44 | 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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