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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초기 전라도 방어의 실패 원인 = Causes of failure of Jeolla Province defense in the early days of Jeongyu War(丁酉再亂)
저자
유연성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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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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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93-22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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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peace talks began in 1593. However, the peace negotiations ended in failure, and in 1597, the war recurred. Unlike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Japanese military set the occupation of Jeolla Province as a strategic purpose. Joseon judged that Japan would invade Joseon again through various intelligence sources. Joseon requested the Ming Dynasty to send troops in preparation for the Japanese invasion. The Ming Dynasty decided to send troops to Joseon in preparation for the Japanese invas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Joseon also stationed troops around Gyeongsang Province, the main advance route of the Japanese military, to prepare for it. In addition, troops were stationed on the main roads of Namwon and Jeolla Province to prepare for defense according to the Japanese military's intrusion into the Jeolla Province. Accordingly, Yang Won(楊元), a vice commander dispatched from the Ming Dynasty, goes down to Namwon with 3,000 troops to prepare for the Japanese invasion.
In July 1597, the Jeongyu War broke out, and the Japanese army headed to Jeolla Province. As the Japanese military headed to Jeolla Province, Commander Lee Bok-nam(李福男), who was in charge of defending the region, headed to Namwon with a small number of troops. Joseon and Ming armies who protected Jeolla Province gathered in Namwon, and Japanese troops also advanced to Namwon. In the three-day battle, the Ming and Joseon armies guarding Namwon were defeated. Afterwards, the Japanese army tried to capture Jeonju one after another and climb to Hanseong through Chungcheong Province, but was defeated by the Ming army in Jiksan and withdrew.
Jeolla Province, which was not occupied eve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was occupied by the Japanese shortly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broke out. As such, there are five reasons why Joseon failed to defend Jeolla Province. The cause was analyzed through Kang-Hang(姜沆)'s Ganyangrok(看羊錄) and the war situation, which he had been to Japan as a prisoner. The first was frequent replacement of commanders. The second was the issue of mobilizing troops in the region and operating the fortress. The third was the absence of Sooryeong(守令, the role of a commander during the war) in each region of Jeolla Province. The fourth was the failure of defense strategies. The fifth was dependence on the Ming army and transfer of command. Due to this problem, the Jeolla Province during the Jeongyu War was occupied without responding properly to the Japanese invasion.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1593년부터 강화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강화 교섭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1597년에 전쟁이 재발하였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때와는 다르게 전라도 지역 점령을 전략 목적으로 세웠다. 조선은 여러 첩보들을 통해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은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여 명나라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다. 명나라는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에 파병을 결정하고 병력을 파견하였다. 조선도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의 주요 진격로인 경상도 일대에 병력을 주둔시켜 대비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의 전라도 지역의 침입 첩보에 따라 남원과 전라도 주요 길목에 병력을 주둔시켜 방어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명나라에서 파견 된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이 병력 3천을 이끌고 남원에 내려가 성벽 보수에 들어가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한다.
1597년 7월에 정유재란이 발발하였고, 일본군은 전라도로 향했다.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해 경상도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대다수가 산성을 버리고 피신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큰 저항 없이 전라도까지 빠르게 진격하였다. 일본군이 전라도 지역으로 향하면서 지역 방어를 담당했던 병사 이복남(李福男)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남원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담양의 금성에 머물던 조방장 김경로(金敬老)와 합류하였다.
전라도를 지키던 조선군과 명나라군은 남원에 모였으며, 일본군도 남원으로 진격하였다. 3일간의 전투에서 남원을 지키던 명나라군과 조선군은 패배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전주를 연이어 함락시키고 충청도를 통해 한성으로 올라가려다 직산에서 명군에게 패배 한 뒤 철군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전라도 지역은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얼마 못가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이와 같이 조선이 전라도 지역의 방어에 실패한 원인은 5가지가 있다. 일본에 포로로 갔다 온 강항(姜沆)의 간양록(看羊錄)과 전쟁 상황을 통해 그 원인을 분석했다. 첫 번째는 지휘관의 잦은 교체였다. 두 번째는 지역 내 병력 동원과 산성 운영의 문제였다. 세 번째는 전라도 각 부군현 수령의 부재였다. 네 번째는 방어 전략의 실패였다. 다섯 번째는 명나라군에 대한 의존과 지휘권의 이양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정유재란 시기 전라도 지역은 일본군에 침입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점령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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