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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의 축조와 변화 = The Construction and the Changes of Byeokgolje
저자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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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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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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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정보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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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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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9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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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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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ussion about Byeokgolje has recently been actively conducted. Thanks to that discussion should check the validity of the existing discussion, as well as saw revealed some new facts. First, I find new historical data in the 『Donggukyisanggukjip(東國李相國集)』 not been cited so far on byeokgolje . In this new historical data I found the article that Byeokgolji was built in 『Sillaki(新羅記)』 . 『Sillaki』 was the book that was compiled in Koryeo. 『Sillaki』 was the specialized publications about the history of Silla. The first record that Byeokgolji was built in Silla was written in 『Sillaki』. Those who compiled the 『Samguksagi』 was merely just quoted the record in 『Sillaki』.
The first time when Byeokgolje was built seems to becoming increasingly established in 330, depending on the excavation progresses. Rather, the problem is the feeling that the subject has been changed to who was built the first time. I thought the Baekje central government entities in the construction so far, the new theory that Mahan forces were built. The debate is expected to be connected to when the central power of Baekje combined with Mahan, is develping to the future.
I saw the look of Byeokgolje when the first time byeokgolje was built roughly drawn. The first Byeokgolje has been constructed with a length of byeokgolje existing at the time, and it is estimated to increase considerably low than now. King Wonseong wouldl built into the existing height at the time of enlargement, then the five floodgates were estimated to have been created. The drainage of the first Byeokgolje was estimated using the drainage hole.
The first function of Byeokgolje was the embankment, was additionally identified the function of the reservoir. However, since the repair of the Taejong it has been seen primarily as a function of reservoir. After Taejong built a embankment in taegeukpo, the function of Byeokgolje had been changed as a reservoir. Tegeukpo prevent the reversal of the sea-water directly. West Coast is great difference between the tides. Therefore, many dikes built on the west coast has dual functions of the reservoir and the embankment.
벽골제에 대한 논의는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논의에 힘입어 기존 논의의 타당성을 확인해보고, 아울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 보았다. 먼저 벽골제에 관한 지금까지 인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史料인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자료를 찾아 인용하였다. 이 사료에서 『신라기』에 벽골지를 축조하였다는 기사를 찾았다. 『신라기』는 고려때 편찬된 신라에 관한 기록으로 독립된 서적으로 존재하였음을 밝혔다. 이 『신라기』에서부터 벽골지가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삼국사기』 찬자들이 벽골지 축조를 신라본기에 실은 것도 찬자들의 판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신라기』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었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벽골제의 초축 시기는 발굴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330년으로 점차 확정되어가는 듯하다. 오히려 문제는 초축 주체가 누구였을까로 변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백제 중앙정부를 축조 주체로 생각했었는데, 마한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 논쟁은 백제의 중앙권력이 마한을 언제 병합했을까라는 지난한 문제와 연결되어 앞으로 흥미진진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벽골제의 초축 모습을 대략 그려보았다. 벽골제는 초축 당시에도 현존하는 벽골제의 길이로 축조되었을 것이나, 높이는 지금보다는 상당히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성왕 증축 당시에 현존하는 높이로 쌓았을 것이며, 그때 5개의 수문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초축 당시의 배수는 배수구를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벽골제의 기능은 초축 당시에는 방조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가적으로 저수지의 기능을 겸했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조선 태종의 중수 이후에는 주로 저수지의 기능으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 조선 태종의 중수비에 보이는 대극포를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벽골제 서북쪽에 보이는 태극포로 추정하면서, 태극포에 방조제를 쌓은 이후 벽골제의 기능이 전환되었을 것으로 제시하였다. 기존의 견해에서는 대극포를 수여거로 파악하여 벽골제 기능의 전환 시점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서해안에 쌓아진 많은 제방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성을 감안하여 방조제와 저수지의 기능을 겸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18 | 1.18 | 1.06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96 | 0.97 | 2.484 | 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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