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E.Bernstein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론 = A Study of Liberal Socialism
저자
최영태 (전남대학교 인문대 사학과)
발행기관
全南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THE INSTITUTE OF HUMANISTIC STUDIES CHON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1990
작성언어
Korean
KDC
001.3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01-216(16쪽)
제공처
소장기관
수정주의에서 자유가 이렇게 특수하게 취급되어진 것은 수정주의의 지적배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수정주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 및 신 칸트학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이것은 곧 수정주의에 담긴 자유주의적 정신의 지적원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자유주의 원리를 기초로 하는 Kant의 국가이념, Kant를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려고 했던 신칸트학파와 Bernstein의 관계, 그리고 John Stuart Mill을 지적 배경으로 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Bernstein과의 긴밀한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주의에 대한 우호적 태도의 지적 원류가 어디에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부르조아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어진 내용과 사회주의적 견해들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Bernstein의 주장은 그 내용과는 별개로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그것의 성격 논쟁을 야기 시켰다. 수정주의의 성격의 핵심을 자유주의적인데서 찾으려는 쪽은 이로부터 수정주의를 비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보는 유력한 근거를 찾으려 했고 이와 반대로 수정주의에 나타난 자유주의적 관점을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의 보완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사회주의 이론의 보다 발달된 형태로 분류하려 하였다.
먼저 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견해는 Kautsky는, 수정주의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결국 Bernstein은 부르조아 자유주의자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수정주의가 이미 사회주의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본 것이다.
Kaursky에 따르면 당시 유럽은 부르조아 급전주의 르네상스를 겪고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Jean Jaurès에 의해 이끌린 프랑스의 우익사회주의가, 그리고 영국의 경우는 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진보적 정당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수정주의는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 급진주의의 부활의 이론적 예였다. Kautsky는 부르조아 급진주의가 이렇게 부활한 이유를 성숙하는 자본주의속에서 찾으려 하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해 가면서 그 신분이 쇠퇴한 부르조아 및 쁘띠부르조아 급진파는 자유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대 정당들에서 더 이상 소속감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사회주의의 명칭을 구사하되 그 구체적 내용에서는 더 이상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차라리 부르조아 급진주의 정당으로 지칭하는 것이 옳은 그러한 성격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Kautsky의 주장인 것이다. 수정주의를 사회주의 이론으로 간주하기를 주저하는 경향은 비단 이 시기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지금도 러시아 공산당 동구 공산주의 진영의 학자들은, 그리고 서구의 좌파 지식인들은 수정주의를 부르조아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 급진파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 G. Fülberth와 Jurgen Harrer의 공저 『독일 사회민주주의, 1890-1993 (Die deutsche Sozialdemokratie 1890-1933)』이다. 그들은 이 저서에서 수정주의를 '사회주의적 자유주의'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 그들이 수정주의를 사회주의 이론으로 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반대로 Thomas Meyer는 수정주의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연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수정주의에서 자유주의적 요소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는 가운데서도 수정주의는 자유주의의 연장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을 보다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조건에 맞추어 새로이 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Meyer가 보기에 Bernstein은 개인적 자유의 중요성을 그 어떤 사회주의자보다 더 강도있게 주장하면서도, 그러나 모든 개개인의 자유는 사적 소유권과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의 자유주의적 설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 및 생산문제의 공동결정에 의해 달성되어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이것은 부르조아 자유주의자들의 관점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Meyer는 또 Bernstein의 사회주의 설계도가 사회주의의 전통적인 개념과도 다르다고 보았다. Meyer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들의 일반적 경향은, 자유주의를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 관찰하고, 이 결과 그 자신의 사회주의 설계도를 자유주의와 정반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길들여져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Marx에게서부터 나타났으며 Lassalle에서 더욱 분명히, 그리고 Lenin에게서 가장 첨예한 형태로 나타났다.
수정주의의 성격과 관련하여 가장 흔하게 주장되었던 것이 수정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사민당을 개혁주의 노선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였던 남북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이나 노동조합 지도자들 중 일부 개혁주의자들과 Bernstein을 동류의 존재들로 보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에는 물론 상당한 근거가 있다. 수정주의와 개혁주의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부르조아 계급과의 타협에 의해 사회주의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잇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부분적인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양자의 성격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통해 끌어낸 결론은 아니었다. 개혁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시도하지 않은 가운데 그냥 편의적으로 개혁 정책을 추구했었다는 사실을 논외로 치더라도, 양자 사이에는 분명히 또 다른 차이점이 발견되어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주의와의 관련성 여부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개혁주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양대 요소만을 결합시키려 했지 거기에 자유주의 문제까지를 포함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개혁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비연관성은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개혁주의적 경향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Lassalle의 사상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Lassalle는 민주적 방식을 강조했으면서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간의 대립관계를 누구보다 강하게 강조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주의가 역사발달의 장애가 되며 유산 부르조아 계급의 이익 및 역사적 부조리의 옹색한 마스크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비판한 것이다. 비록 1880년대의 개혁주의자들 모두가 Lassalle처럼 이렇게 자유주의에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한 자유주의에 대해 우호적 시각을 가졌다는 어떤 특별한 징후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해 수정주의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및 자유주의를 밀접하게 연관시킨 가운데 구성되었던 것이다.
양자사이의 이와 같은 차이점은 1900년대 이래 사민당을 지나치게 보수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던 우파 사회주의자들과 Bernstein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Roger Fletcher에 따르면 수정주의에 담긴 자유주의적 요소들은 Berstein을 1900년 이래 사민당의 우경화적 경향을 주도한 개혁주의자들이나 사이비 수정주의자들과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성격의 강령하에 그 때 그 때 편의적으로 개혁주의 정책을 실천해온 개혁주의자들은 영국적 전통과 신 칸트 학파로부터 영향을 받은 Berstein의 자유주의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것이 곧 같은 개혁주의선상에 있었던 Bernstein과 나머지 개혁 주의적 수정주의자들을 불화케 만들었던 것이다.
수정주의를 사회주의적 자유주의로 보아야 하느냐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끝없는 논쟁의 테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기준으로 할 것 같으면 Bernstein의 자유관은 결코 사회주의의 기본적 원칙을 포기하면서 도출해 낸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견해를 대폭 수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의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 이론의 부정적 요소를 시정하는 과정으로서 였지, 결코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에 동화되어 버린 과정으로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사회주의를 자유주의의 계승자로 규정하면서도 그 범위를 세계사적 차원에 한정시킨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신중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비록 정치적 차원에서의 부르조아 자유주의의 한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그것들은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노력의 결과로서 그 성과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노력의 결과로서 그 성과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곧 역사주의적 인식태도로서 과거사실에 대한 정당하면서도 사려 깊은 평가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프랑스 혁명시의 1793년 헌법내용을 찬양하고 조직과 연대감을 바탕으로 한 조직화된 자유주의를 제창한 사실 등은 그의 자유관이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 결코 부르조아 자유주의와 동일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수정주의에 담긴 자유주의적 요소들은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서 매우 값진 요소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수정주의에서의 자유주의적 요소는 수정주의를 비단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당시 사민당내의 개혁주의 노선과 구분시키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오늘날 그것을 서구의 민주사회주의 이론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고리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개인정보 처리 목적, 항목 및 법적 근거 수정 · 본인대상정보전송요구권 행사 방법 안내 · 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추가 |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제16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수집·이용 근거 | 수집·이용 목적 | 수집·이용 항목 | 보유·이용기간 |
|---|---|---|---|---|
| [학술연구정보 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4호(계약 이행) |
회원 서비스 운영 |
ID, 비밀번호, 이름,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보호자 성명(어린이회원), 보호자 이메일(어린이회원) |
회원탈퇴시 까지 |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6조 |
주문 및 결제 처리 |
ID, 비밀번호, 이름, 주소 |
5년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결과)
제16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