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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晦山) 양재팔(梁在八)의 지역에서의 삶과 지향 = Hoesan(晦山) Yang Jae-pal(梁在八)’s Life and Aim in the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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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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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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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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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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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팔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거쳐 살아간 김해의 문인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내외적으로 혼란이 극단으로 치닫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거의 같은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그의 생애는 큰 변화를 중심으로 나누어보면 성장 모색기. 환로(宦路) 혼돈기. 은퇴 한적기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생애 변화와 당대의 사회 변화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의 성장 모색기는 1892년 과거의 급제로 환로 혼돈기로 넘어가는데, 이 시기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기 2년 전으로 과거제도의 폐지가 있었다면 양재팔 자신도 평생 해왔던 과거 공부의 보람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보람도 잠시, 1892년부터 시작된 환로는 뜻하지 않은 1910년의 국권 상실로 그의 은퇴 한적을 자연스럽게 가져왔다.
양재팔에게 있어 가장 영향을 강하게 끼쳤던 인물은 어린 시절 스승 서파 양정환, 성장하고 난 이후의 스승 성재 허전이다. 아울러 성재와의 관계 속에 오랜 세월 심적 교유를 했던 노필연과 노상직이다. 이들은 부모님을 위한 공부로 보람이 되었던,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혼돈의 환로기 18년을 제외한 나머지 50여 년 생애 동안 양재팔의 삶의 태도와 미래에 대한 지향을 유지하도록 한 인물들이었다. 사실상 이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낸 학문과 교육의 태도가 그를 그답게 유지시켰던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은퇴 한적기 박필채, 문성준, 이광욱, 양재일, 김병훈 등 동래 선비들과의 교유 또한 그에게 교육이라는 미래의 지향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양재팔은 사실상 거창한 사업을 벌이거나, 치열한 삶의 태도를 보이거나 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혼란한 시대 김해라는 지역에서 제대로 된 김해와 김해 사람을 위해 스스로 실천하고 가르치는 교육자요 학자로서 살아간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스스로의 태도는 스승의 뜻을 어기지 않고 떳떳하게 지켜야 할 군자로서의 실천이었으며, 그에게 있어 눈앞에 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향은 바로 후학들의 교육이었다.
Yang Jae-pal is a man of letters who lived in Gimhae(金海) around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His period was extremely chaotic both at home and abroad. His life developed almost the same as the changes of the period.
His lifetime can be divided into three phases of groping for growth, chaotic public service and leisurely retirement. And these shifts in him are nearly identical to the social changes in his era. His groping for growth period switched into that of chaotic public service in 1892 as he had pass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called gwageo(科擧) two years before the gwageo system was abolished. If the system had discontinued before that event, he wouldn’t have been paid off for his study for the examination. The reward of the public post, however, didn’t last that long because the nation lost its sovereignty in 1910 and naturally he was forced to retire.
Those who influenced Yang Jae-pal most are his boyhood master Seopa(西坡) Yang Jeong-hwan(梁禎煥) and his adulthood teacher Seongjae(性齋) Heo Jeon(許傳). In addition, also influential are Noh Pil-yeon(盧佖淵) and Noh Sang-jik(盧相稷) who associated with him for a long time. These figures made Yang Jae-pal maintain his attitudes towards life and future for some fifty years except for 18 years when he studied to please his parents and served as a public officer in confusion due to the changes of the period. His bearing in relation to learning and education resulted from the relationship with them is the very foundation that made him what he was. During the leisurely retirement period, his social intercourse with such Dongnae scholars as Park Pil-chae(朴苾彩), Moon Seong-jun(文聲駿), Lee Gwang-uk(李光昱), Yang Jae-il(梁在日) and Kim Byeong-hun(金秉勳) led him to dream his own future-oriented educational dream.
Yang Jae-pal is not a figure who embarked on a grandiose business or showed a fierce attitude to life but an educator and scholar who practiced himself and taught the people in Gimhae in the chaotic period only for the sake of the place and people. For him, a scholarly attitude is to practice as a man of virtue following his master’s will and an aim to overcome the reality at hand is to teach the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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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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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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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7 | 0.57 | 0.5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3 | 0.5 | 0.949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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