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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安東 ‘新시가’ 건설 = The Making of Andong New Town by Japan after Russo-Japanes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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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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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3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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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ssay investigates Andong and Japan’s development of the Andong new town following the Russo-Japanese War (1904-5). Currently known as the main street of modern-day Dandong, Andong new town was formed through a combination of Japanese concessions and the creation of the South Manchurian Railway Area. Starting its construction at the start of the war in 1904, Japan’s organizers and several committees (namely the Design Committee and the Resident Committee) played central roles in the town’s construction. The construction also coincided with risings demands that local Chinese residents sell their lands for its development.
Even with having completed construction in 1906, the Andong administrative district reorganized the area with land purchases. These changes eventually transformed the 1876 town of Saha-jin into an ‘old town’ of Chinese residences while the Andong new town emerged as the commerce and social center of Andong.
However, even with its rise in social significance in the area, the Andong new town did not become an administratively unified area. Instead, the region evolved into a dual management system. The Japanese Association governed one part under the auspices of the Japanese Consul. The Railroad Supervision Department of the Army controlled the other following the postwar dissolution of the military in 1906. Eventually, after the closure of the Japanese Association (and through concessions offered to the Army), the South Manchurian Railway became the sole administrative authority in 1923. From that time, the Andong new town thus developed as part of the South Manchurian Railway. It was through these processes that in 1932 Andong became the fourth most populous city in Manchuria and the representative image of the city—an image that often captures its visual realities in 1923.
본 연구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안동 신시가의 건설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북중 국경의 주요 도시인 단동 형성의 역사적 배경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현재 단동시 중심지 대부분을 형성하던 안동 신시가는 러일전쟁 기간에 일본에 의하여 조성된 전관거류지와 만철부속지이다. 1904년 5월 일본은 안동현에 군정 실시와 함께 신시가 조성에 착수하였다. 신시가 조성의 주체는 단계별로 신시가준비위원회―신시가설계위원회―거류민행정위원회로 구분되었다. 군정 시기에 조직된 신시가준비위원회와 신시가설계위원회는 안동현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1906년 10월 군정 폐지이후에는 안동영사관의 주도 아래 거류민행정위원회가 신시가의 공사를 진행하였다.
일본이 1905년 7월까지 신시가 건설 등을 명목으로 중국인들로부터 약490만평의 토지를 구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매입이라는 명목아래 토지를 강탈당하였다. 토지 매입의 진행과 함께 1906년부터 신 · 구시가의 행정구역도 개편되었다. 1876년 안동현 설치 이후부터 신시가 조성 이전까지 안동현의 중심지는 ‘안동 · 안동현’이라 불리던 사하진이었다.
신시가 조성 이후 안동현은 중심은 신시가가 되었다. 반면 이전의 사하진은‘구시가’로 불리면서 주로 중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되었다.
그러나 신시가는 행정적으로 일원화된 지역은 아니었다. 1906년 10월안동현의 군정 폐지 이후 신시가는 전관거류지와 만철부속지로 구분되었다. 전관거류지는 안동영사의 감독 아래 안동거류민회가 행정을 담당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만철부속지라 불리던 지역은 육군 철도제리부가관할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923년 10월에 이르러 안동거류민단이 해산되고 육군 관할지까지 만철로 이양되면서 사라졌다.
이후 전관거류지, 만철부속지, 철도제리부 관할지역으로 구분되던 안동 신시가는 만철부속지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1936년에 이르면 안동은 만주에서 네 번째 인구를 가진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자료 등장하는 만철부속지 안동의 이미지는 이 때에 형성된 것이라 할 것이다.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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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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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1.12 | 1.12 | 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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