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병창(伽倻琴倂唱) 전승 연구 : 이소향(李素香)의 역할을 중심으로 = A study in succession of Gayageum Byeongchang : focused on Lee So-hyang's role
저자
발행사항
서울 : 한국예술종합학교, 2017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 , 전통예술원 음악과 가야금병창전공 , 2017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KDC
679.314 판사항(6)
DDC
781.62957 판사항(23)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x, 207 p. : 삽화, 악보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박승률
권말부록: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곡 목록 중 이소향(李素香) 출연 목록 ; 한국유성기음반 목록 중 이소향(李素香) 음반 목록
참고문헌: p. 86-89
소장기관
This paper reviews personal life and musical activities of Lee So-hyang, one of famous Gayageum players in the period between 1920 and 1940, and conducts a comparative analysis on the musical features of Lee So-hyang and Park Gwi-hui in order to explore the origin of Kang Tae-hong, the master of Gayageum player, whose music was nearly unreachable due to rare records. The paper aims to prove close correlations between Gayageum Byeongchang performances of Park Gwi-hui, which are succeeded and played until today, and Lee So-hyang’s music. It is also to shed light on importance of Lee So-hyang’s role in succession of Gayageum Byeongchang.
Lee So-hyang, born in Pohang, North Gyeongsang Province, learned from Kang Tae-hong at a Daegugisaengjohap(Korean Geisha cooperative in Daegu). Lee learned from Chung Yong-un at Ballyonggwonbeon(Korea
n Geisha cooperative) in Hamheung. Since 1927, Lee has started active activity in Seoul. Lee appeared on the radio in Gyeongseong Broadcasting station. Lee also worked as a member of the Chosun Eumnyul Hyeope, Chosun Seongak Yeonguhoe (Association for Voice of Chosun). From the period between 1920 and 1940, Lee was the active female musician who released albums and appeared on radio network. Lee released a total of 76 Gayageum Byeongchang albums, the second largest record among both male and female musicians.
In this paper, the author conducted a comparative analysis on differences of narrative, Buchimsae (lyrics embellishment), Jangdan (rhythm) and tempo of Chungseongnyeong jinagalje, Kongmyeongga (Choeohwanju), Charyongi hwal ssoneun daemok, and also compared the keys and melodies of the songs sang by Lee So-hyang and Park Gwi-hui.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narratives of all of the songs were almost the same. However, Park’s versions had some parts that didn’t exist in Lee’s songs, propably due to time constraints of recording at the time.
Second, the lyrics embellishments of the three songs turned out to be nearly identical, too. Daemadidaejangdan was the most used rhythmic pattern. Eotbuchim, Wanjageolyi and Yingeogeolyi were used by the two singers at similar frequencies.
Third, the keys of the songs are ‘G∙A∙c∙d∙e∙g∙a∙b∙c´∙d´∙e´∙g´∙a´,’ The b key appeared one to two times, and the G, A, c, g´, a´keys appeared a few times as well, which didn’t affect the tonal structures of the songs. Therefore, the scale of the songs is concluded as g – Boncheong ‘ Pyeongjogil’ that ends up with solmization of ‘ re, mi, sol, la, do.’
Fourth, the melodies of the songs showed high similarity. Even in some parts that sounded slightly different, the melodies were almost the same but merely different in the rhythms. In the parts that were added by Park Gwi-hui, only one or two notes were different in a Jangdan. The songs sang by Lee So-hyang and Park Gwi-hui can be deemed to be from the same origin.
By comparing Jukjangmanghye sang by Lee So-hyang, Park Gwi-hui and Oh Tae-seok, this paper tried to reveal that Park’s song differed from Oh’s, while her song was identical to Lee’s. The results showed the scale of the songs by the three musicians was g – Boncheong‘ Pyeongjogil’ with solmization of ‘ re, mi, sol, ra, do.’ But Lee and Park showed nearly the same patterns of the narratives, lyrics embellishments and melodies. Oh had five Jangdans that were solely played by Gayageum without singing, which didn’t appear in Lee and Park’s. Therefore, the results can lead to a conclusion that Jukjangmanghye sang by Lee and Park are the same, while their songs differ from Oh’s.
The author hopes further studies are conducted on Lee’s music and her records are restored, contributing to development of Gayageum Byeongchang in the future.
본 논문에서는 1920년~1940년에 활동한 가야금병창 여자 연주자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이소향(李素香)의 생애와 전반적인 음악 활동을 살펴보고, 강태홍(姜太弘)이 남긴 가야금병창 음반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려웠던 강태홍 가야금병창의 원류(源流)를 이소향과 박귀희(朴貴姬)의 음악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현재 연주되고 있는 박귀희 가야금병창은 이소향이라는 연주자의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가야금병창 전승과정에서 이소향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이소향은 경상북도 포항 출신으로 20세 이전에 대구기생조합에서 강태홍에게 사사하였다. 함흥에 있는 반룡권번에서는 정용운에게 사사하였다. 1927년부터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경성방송국 국악방송과 더불어 조선음률협회(朝鮮音律協會),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 회원으로 활발한 공연을 하였다. 이소향은 1920년~1940년까지 활동한 여자 연주자 중에서 방송과 음반 모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가야금병창 음반은 76면을 발매하였는데, 남·여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이 발매하였다.
이소향과 박귀희의 음악 중'靑雪嶺-청성영 지나갈제','短歌 釣魚換酒-공명가(조어환주)','三國志 華容道-자룡이 활 쏘는 대목'을 사설, 붙임새, 장단, 속도의 차이를 비교하고 출현음, 음조직과 선율을 비교분석 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청석령','공명가(조어환주)','화용도'모두 사설의 경우 대부분 일치하였으며, 박귀희에게는 있으나 이소향에게 없는 부분은 유성기음반의 녹음 시간 제한으로 인해 이소향이 줄여서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붙임새의 경우도 사설과 마찬가지로 '청석령','공명가(조어환주)','화용도'모두 대부분 일치하였다. 대마디대장단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엇붙임과 완자걸이, 잉어걸이도 두 사람에게서 비슷하게 사용되었다.
셋째,'청석령','공명가(조어환주)','화용도'의 출현음은'G∙A∙c∙d∙e∙g∙a∙b∙c´∙d´∙e´∙g´∙a´'이다. b는 1~2회 정도만 출현하고, G, A, c, g´, a´ 등도 적은 횟수만 출현하기 때문에 음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음계는'레∙미∙솔∙라∙도'로 솔미제이션 되는 g본청'평조길'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청석령','공명가(조어환주)','화용도'의 선율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불일치하는 부분도 리듬적인 면에서만 약간 다를 뿐 선율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도섭 부분이나 박귀희가 추가한 장단을 제외하고 불일치하는 부분도 한 장단에서 한 두 개의 음표만 다를 뿐이므로 이소향의 소리와 박귀희의 소리는 같은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소향, 박귀희, 오태석(吳太石)의'죽장망혜'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박귀희의'죽장망혜'는 오태석의 소리와 다르고 이소향의 소리와 같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이소향, 박귀희, 오태석 모두 음계는'레∙미∙솔∙라∙도'로 솔미제이션 되는 g본청'평조길'이었으나, 사설, 붙임새, 선율 면에서는 이소향과 박귀희만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태석은 노래 없이 가야금만 연주되는 장단도 5장단이 있는데, 이는 이소향과 박귀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소향과 박귀희의'죽장망혜'는 같은 소리이며, 오태석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이소향의 음악을 더 많이 연구하고 복원함으로써 레파토리가 확대되어 가야금병창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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