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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기의 盛饌: 근세 동아시아의 청어어업 = The Regale of the Little Ice Age: Herring Fishery in Early Modern East Asia
저자
김문기 (부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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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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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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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520(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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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s the influences of a herring on the history of early modern East Asia. It focuses on the herring fishery of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following my previous study of the appearance process of a shoal of herring.
It was Korea that was the first to start a herring fishing in East Asia. The herring fishery industry in Korea dates back to the late Goryeo period, but in China and Japan it developed around the 17th century. In the Joseon period, a herring appeared throughout East, South and West seas. In China, its major producers were Shandong(山東), Zhili(直隸) and Liaodong(遼東) around Yellow and Bohai Seas. And in Japan the center of herring fishing was Hokkaido(北海道), but a herring appeared also around Bando Peninsula in the Edo period. Herring that have been out of sight today appeared widely in early modern East Asia.
Herring fishery industry had great effect on the economic growth of these countries. Joseon suffering from frequent disasters since the 17th century incorporated marine fishes including a herring into the national financial sources actively. With the consequence that He could carry Kyunyokpop(均役法) into effect in the mid-18th century. And the active distribution of herring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commodity economy in the latter period of Joseon. In China, a shoal of harring moved around Sandong and Liaodong in the 17th century, which contributed to escape the famine in the Little Ice Age. In addition, the then fishing rush offered a direct opportunity for the island development. In Hokkaido, herring fishing grew explosively with the active utilization of fish manure. The herring manure, having gradually substituted for sardine manure, became the primary source of fertilizers in the late Edo period, and helped to promote agriculture development. And also it played a crucial role to the development of commodity economy in Japan, being supplied throughout the country through the trade network of Kitamaebune(北前船) ranging from Hokkaido to Osaka(大阪).
The development of herring fishery in early modern East Asia was owing to climatic change of the Little Ice Age. As the seawater temperatures went down, a herring that belongs to species of cold current fishes came in shoals in the sea of East Asia. A herring being caught in large quantities became main food for people of three countries in East Asia suffered from a frequent famine. Thus a herring deserves to be deemed as the regale of the Little Ice Age.
본 연구는 청어라는 물고기가 근세 동아시아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청어어업이 먼저 시작되었던 곳은 한국이었다. 한국에서 청어어업은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반해 중국과 일본은 17세기를 전후하여 청어어업이 발전했다. 오늘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청어가 근세 동아시아에서는 광범위하게 났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청어어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빙기라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해수온도가 내려가면서 한류성어종인 청어가 동아시아의 바다로 대거 몰려들었던 것이다.
청어어업은 동아시아 3국의 국가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7세기이후 잦은 재해에 시달리던 조선은 청어를 비롯한 해양어류를 국가의 재원으로 적극적으로 편입했다. 18세기중반에 실시된 균역법에서 海稅는 중요한 稅源이었는데, 그 중에서 청어는 가장 중요한 물고기였다. 풍부하게 생산되는 청어는 조선의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도 크게 기였다. 중국의 산동과 요동에서도 청어가 대거 출현하면서, ‘靑魚粥’으로 소빙기의 기근을 모면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청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대거 섬으로 몰려들면서 海島開發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北海道에서 청어어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던 것은 ‘魚肥’로 적극 이용되면서였다. 에도말기에는 청어어비가 정어리어비를 대체하면서 일본 제일의 비료공급원이 되었다. 청어어비는 北海道에서 大阪으로 이어지는 北前船의 교역망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면서, 일본 상품경제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청어어업의 발전은 소빙기가 초래한 ‘뜻밖의 횡재’였다. 한래화 현상이 초래한 ‘위기’ 속에서, 청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 청어라는 ‘뜻밖의 횡재’는 잦은 재해와 기근에 시달리던 동아시아 3국 백성들의 배를 풍성하게 채워주었던 ‘소빙기의 盛饌’이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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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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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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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2 | 0.52 | 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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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 0.67 | 1.012 | 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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