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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김두헌의 '민족관'과 전체주의 국가론 = Kim Doohun’s View on Nation and the Theory on the Totalitarian Nation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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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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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5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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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등장한 신진철학자 김두헌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본질적 특질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공황 이후 근대세계의 질은 민족적 대립이며, 민족적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행위와 사고의 주체는 민족이며, 개인은 민족의 역사적 운명 속에서 구성되는 존재라는 것이 김두헌의 생각이었다. 사회가 외적규약에 의한 공동생활인데 비해 민족은 역사적 공동운명을 거쳐 형성된 일차적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김두헌은 민족의 형성, 유지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민족문화라고 파악하였다.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 객관화된 것이 민족문화이기 때문이었다. 민족문화의 공유를 통해 민족은 공고한 결합을 유지하고, 개인의 삶은 내용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문화론의 연장에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본연의 본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계급간의 갈등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사회구성원 간의 갈등은 고급문화로 응축된 민족문화를 향유하는 정신적 정도의 차이이기 때문에, 민족문화에 대한 정신적 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민족정신에 의한 전체주의적 통합을 민족현실을 극복하는 핵심 대안으로 주장한 것이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철학과 초대 교수진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한 김두헌은 일제하의 사상논리를 체계적 민족관, 국가관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그 방향은 전체주의적 민족론에 기반하여 ‘민족적 민주주의’를 이론화하는 것이었다. 파생적 의식일 수밖에 없는 계급의식을 극복하고 본래적 민족의식에 입각하여 국가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약소민족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미발달로 민족 내 계급모순이 약한 반면, 민족 간의 계급모순은 더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중심 국가구축론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이익적 관계,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여 사회적 통합을 약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김두헌은 독일의 전체주의적 민족국가를 더 높이 평가하였다. 독일은 전체주의적 민족국가원리에 의해 민족적 단합을 공고히 하여 1차세계대전 이후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독일식 전체주의의 한계도 민족문화에 입각한 도의정신으로 국민을 통합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제하의 전체주의적 민족론이 분단체제의 상황과 결합하여 전체주의 국가원리에 이르는 과정인 것이었다.
Doohun Kim, a rising philosopher in the 1930s, claimed that to overcome the reality of Joseon as a colony, one must clarify the existential characteristics of “nation.” He thought that the nature of the post-Great Recession modern world is the national conflict, and it is impossible to overcome the reality unless one understands the character of its nation. Kim’s idea was that it is the nation who is the main agent on one’s action and thought, and a person is constructed inside the historical destiny of its nation. He thought
that unlike a society, which is a mutual living based on outside rules, a nation is a primary community created from a mutual historical destiny. From those points, Kim understood that it is national culture that has the critical role on creating and maintaining the nation. National culture is created from objectification of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its nation. By sharing its national culture, the nation can maintain its established bond between them, and the private life gets its substances. And extending his national culture theory further, to overcome the reality, he argued that one must return to the original spirit of the nation. He took a similar position on the class conflict. As the conflict between the members of the society merely stems from the spiritual difference on enjoying national culture, composed from the condensed high cultures, he thought that it is important to be spiritually conscious on the national culture. In short, he proposed the Totalitarian unity based on national spirit as a key alternative on overcoming national reality. After Liberation of Korea, cementing his standing as one of the founding faculty member of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s Philosophical department, Kim expanded his colonial era ideology into a systematic view on nation and state. Its direction was toward academicization of “National Democracy” based on the totalitarian national theory. It was about overcoming the class consciousness, a secondary sense, and building the nation based on the original national spirit. It is because weaker nation have less class conflict between its members as the capitalism is still undeveloped, but much more class conflict among the nations. And this nation-based nation state-building theory led to criticism of the American-style democracy. He contended that as the American-style democracy emphasized the beneficial relationship and personal freedom, it weakens the social unity. On the other hand, He rather praised the German totalitarian nation-state. He argued that Germany enabled the astounding growth post-World WarⅠ by cementing the national bond based on the totalitarian nation-state principle. And he also proposed that one can overcome the shortcoming of the German totalitarianism with uniting its nation with national spirit-based moral spirit. And it was the process about how a colonial era totalitarian national theory fused with situations of the division system, and became a totalitarian national prin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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