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이는 가야 = Gaya as seen in Samguksagi and Samgukyusa
저자
이형기 (해양수산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00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7-59(33쪽)
제공처
가야사를 이해하는 1차 사료로는 「합천 매안리비」가 있으며, 우리나라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중국의 『삼국지』와 『남제서』, 일본의 『일본서기』 와 같은 사서, 『新增東國輿地勝覽』, 『大東地志』와 같은 지리서, 「廣開土大王碑文」과 「昌寧 眞興王 拓境碑」 등과 같은 금석문이 있다. 가야인들이 남긴 문헌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사실과 이들 기록들에 남아있는 소략한 내용은 가야사 연구에 장애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유적들이 발굴조사되고 그 성과들이 학계에 보고되면서 가야사 연구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이때부터 가야사 연구는 고고학 자료들을 적극 활용하게 되면서 문헌자료의 부족을 상당히 채울 수 있었기 떄문이다. 문헌사학의 방법론에서도 금기시 되다시피한 『일본서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남아 있는 가야관련 기록들이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에 입각해서 왜곡 또는 윤색의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사료의 주어를 ‘백제’로 바꾼다면 역사복원에 이용가능할 것이라는 인식 떄문이었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들은 고고학 성과들과 자연스럽게 접합되면서 가야를 자체 발전사적인 측면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로서 가야의 모습들이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기왕의 자료들을 전론으로 다루거나, 시각을 달리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는 앞으로 가야사 연구의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이 글은 한국고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 기본자료가 되는 두 사서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가야관련 기사를 되새겨 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두 사서에 공통으로 언급된 것은 탈해왕과 포상팔국전쟁 내용이었다. 탈해왕 관련 기사를 통해서 가야와 신라의 관계에 대해 특별하게 밝힐 수 있는 역사상을 제시하지는 못하였으나 포상팔국 전쟁 기록을 통해서는 전쟁 결과 구야국은 위상을 유지하였고, 안야국이 급속하게 성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포상팔국 전쟁에 대해서 주로 그 배경이나 발생시기, 그 결과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으나, 해양사의 관점에서도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포상팔국전쟁의 규모는 포로가 6천명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신라본기 내용을 통해 아주 큰 전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포상팔국이 교역권을 가지고 다툼을 했다면 육지보다는 해전이 상식적이며, 최소한 선박을 이용한 병력의 이동까지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기원 14년에 왜인이 병선 백여척을 끌고왔다는 기록(남해왕 11년)이 있으며, 전함이라는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신라에는 자비왕 10년(467) 봄에 유사에 명하여 ‘전함’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전함의 존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3세기대에 낙랑․대방군과의 해상을 통한 교류가 가능했다면 해전 또는 해상을 통한 이동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포상팔국 전쟁의 연속선상에 있는 갈화성 전투는 육지가 전장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바닷가에 위치한 골포․칠포․고사포의 3국 병사들이 배를 이용하여 은밀하게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전쟁 양상도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As primary sources for the history of Gaya, there is the "Maeanri-bi(매안리비)" in Hapcheon, and historical texts such as the "Samgukyusa(삼국유사)" and "Samguksagi(삼국사기)" in Korea, the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and "Nanji-seo(남제서)" in China, and the "Nihon Shoki(일본서기)" in Japan. Additionally, there are geographical works such as the "Sinjeung Dongguk Yeoji Seungnam(신증동국여지승람)" and "Daedongjiji(대동지지)," and epigraphs such as the "Gwanggaeto Stele(광개토왕릉비)" and the "Changnyeong Jinheung King's Boundary Stele(창녕진흥왕척경비)." It is an undeniable fact that the lack of existing literary records left by the Gaya people and the sparse content in these records are hindering the study of Gaya history.
In the 1970s, many cultural relics were excavated and their results became known, leading to significant progress in the study of Gaya history. With the active use of archaeological materials since then, it has been possible to compensate for the lack of literary records. The methodology of historiography has also begun to actively use the "Nihon Shoki," which was previously taboo. These changes in perspective have also led to research on Gaya's own development. As a result, the outlines of Gaya's appearance began to emerge. In addition, there have been various attempts to interpret existing material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We look forward to further development in the study of Gaya history in the future.
This article reflects on the content related to Gaya that is commonly recorded in the basic materials for understanding ancient Korean history, the "Samguksagi" and "Samgukyusa." What was recorded together in these two works was the reign of King Talhae and the war of Posangpalguk. In the records related to King Talhae, no special information was found regar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aya and Silla. In the records of the war of Posangpalguk, it was noted that after the war, Guya-guk(구야국) maintained its status while Anya-guk(안야국) rapidly grew. Additionally, the author believes that the war of Posangpalguk should also be studied from the perspective of maritime history.
The war of Posangpalguk is presumed to have been of a considerable scale through the fact that there were 6,000 prisoners. In addition, if the eight countries had a fight over trade rights, naval battles would be more common sense than land, and at least the movement of troops using ships should be considered. According to Silla Bongi(신라본기) in Samguksagi, there is a record that the Japanese brought over 100 warships in 14 CE (11th year of King Namhae), and the term battleship also appears. In Silla, there is a record that an officer was ordered to repair the 'battleship' in the spring of the 10th year of King Jabi (467), indicating that the battleship existed before that time. If exchanges with the Nakrang-gun(낙랑군) and Daebang-gun(대방군) were possible through the sea in the 3rd century, naval battles or movement through the sea would have been sufficiently possible.
Since the Battle of Galhwaseong, which is a continuation of the war of Posangpalguk, would have been a battlefield on lan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soldiers of the three countries located on the seashore, Golpo, Chilpo, and Gosapo, moved secretly by boat, so this aspect of the war must be revealed.
The scale of the war of Posangpalguk can be seen as a large war, as evidenced by the record of 6,000 prisoners of war. If the Posangpalguk fought the war due to maritime trade rights, they would have fought more at sea than on land, and at least the movement of troops using ships is possible to consider. In the Silla period of the Samguksagi, there is a record that a battleship was repaired, indicating that there was a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battle ships. If maritime exchanges were possible between Nakrang-gun and Daebang-gun in the 3rd century, it is likely that battles at sea or movements through the sea were also possible. As the Battle of Galhwaseong, an extension of the War of Posangpalguk, took place on lan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soldiers from Golpoguk(골포국), Chilpoguk(칠포국), and Gosapoguk(고사포국) located on the coast may have secretly moved by using ships, so the form of naval warfare should also be clarified in the future.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