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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나타난 의병서술의 관점과 의미 -민용호의 의병운동을 중심으로- = The Analysis on Describing the Struggle of the Righteous army of Korean History textbook for high school students- Based on Min Yong-ho's case-
저자
유현재 (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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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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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355-38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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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ghteous Army movement, which took place between 1895 and 1907, is described as a history of nationwide protest against the Japanese invasion within several textbooks for high school students. In the case of the first righteous army, direct incidents such as the Eulmi Incident (murder of Queen Min) and the Danbal Decree (order to cut Korean male’s traditional topknot) were causal, and after that, national outrage and resentment arising from relations with Japan such as the Treaty of 1907 and Japan-Korea Protectorate Treaty of 1905 were identified as the main causes of the uprising. However, in textbooks there has been an oversimplification of the diversity of the righteous army uprising that took place simultaneously in various places across the country. Textbooks tend to regard the righteous army movement using the modifiers "national," and "patriotic," and in detail, even the lower class participated.
In particular, the weight of the "righteous army" in the popular imagination was also a motivation to simplify the historical explanation of the righteous army. From this point of view, Min Yong-ho's uprising has many implications and gives an opportunity to examine the uprising of the righteous army and its cause in a more diverse way. However, since textbooks do not explain the detailed driving force behind the uprising under the catch phrases of "national" and "opposite Western," there is a major concern that it will foster an inaccurate awareness of the value of the righteous army In particular, it is necessary to closely examine how the structural chang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hich had been taking place since the existing changes, reforms, and opening of ports, led to the righteous army uprising. There were activities of the righteous army based on 'Obedience' and 'Righteousness', but the actual troops that occupied the main force of the righteous army consisted of various kinds of people who did not stand on these Confucian concepts. It was necessary to mobilize armed forces in a short period of time and take a more specific approach to move systematically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time. Min Yong-ho's private records of his experiences about the uprising are expected to provide a more diverse perspective on the righteous army even if some problems have been found in terms of reliability. however, we must scrutinize it to separate exaggeration from historical accuracy.
박은식은 의병에 대해 ‘국가가 위급할 때에 즉각 義로써 분기하며 조정의 징발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敵愾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임진왜란과 같이 국난을 당하여 전민족적으로 ‘義’를 기반으로 봉기한 의병은 친일파와 대비되며 아래로부터 일어난 국난극복의 노력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당시 의병은 전근대사회의 해체와 맞물리며 참여한 계층이 단일한 목표에 따라 의병에 합류한 것이 아님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오히려 의병을 ‘의’를 기반하여 전민족적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일어선 이들로 단순화시킨다면 의병운동이 갖는 다양성과 의병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당대의 시대상을 단순화시켜 함몰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박은식이 정의했던 ‘의병’이 갖는 무게때문에 다양한 의병연구에 대해 제약이 생겼고 이러한 경향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교과서에도 한정된 서술로 이어지고 있다. 민용호의 의병활동은 이러한 전형적인 틀과 비교적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며 의병운동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청과 명에 대한 관점, 성리학적인 의리론에 대한 태도, 동학농민군과 의병의 관계에서 의병의 다양한 층위를 그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교과서에 획일적으로 구획된 의병에 대한 설명은 도식적인 이해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이지만 실제 당대 변화하는 시대상 속에서 의병의 실제적인 의미를 확인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민용호의 의병활동은 전형적이지 않고 오히려 의병이라면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측면에서 다른 점들을 보이고 있다. 이는 오히려 당시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던 의병의 실제모습과 가까울 수 있다고 보인다. 민용호의 의병운동 사례를 통해 교과서에서 제시한 구획된 의병의 문제점에 접근하고 이를 이해하며 의병의 실체에 다가갈지 본 고를 통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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