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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조선농촌진흥교육 -특수사례를 중심으로- = Education for Chosenese Rural Development by Japanese Residents in Chosen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Special Case-
저자
정혜경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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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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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95-340(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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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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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거주 일본인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성공을 위해 조선 땅을 밟았다. 이들에게 조선은 경제적인 성공이나 관료로서 안정된 생활을 제공하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땅에서 안락한 삶을 구가하면서, 근대문명인으로서 타자인식도 견지했다. 근대문명인의 입장을 취한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미개와 야만’의 땅이기도 했다. 이들은 ‘근대문명론’에 입각해 외지를 경멸했고, 조선인들의 고유한 관습과 생활풍습은 부정의 대상이었다.
조선총독부 당국과 일본인들이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조선농촌의 진흥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특히 경성 등 도시 거주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에게 경성은 ‘노동과 농사가 조선인의 몫’임을 의심한 적 없는 곳이었다. 조선이란 오직 일본의 국책수행을 위해, 전쟁물자동원을 위해 필요한 정책의 수행대상지였다. 그러므로 조선농촌진흥이란, 정책 목표를 수행해야 하는 정책담당자나 특정한 교육을 받고 남다른 소신을 가진 소수 구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들의 조선농촌진흥해결방안은 식민지 경제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 스스로 갱생으로써 당국의 정책 방향 및 의도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 점은 잡지 『조선과 만주』 기사에서도 동일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활동했는가. 충실한 국책의 수행 과정이었다. 이들이 준수했던 국책은 일본 우익사상의 하나인 농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천황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사상이었다. 토지가 없어 경제적으로 곤궁했던 일본 농민들에게 조선과 만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줌으로써 일본 제국을 안정시키고, 농업과 군사의 두 가지 목적을 관철하는 방안을 실천하는 사상이었다. 이들에게 조선은 식민통치 및 국책의 대상일 뿐이었다.
본문에서 언급한 이들의 사례는 매우 특이하고 드문 사례이다. 이들은 당국의 정책 방향 및 내용을 학교가 아닌 농촌부업과 농장을 통해 실천했는데 그 홍보효과는 당국의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 스스로 농가갱생과 중견인물양성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성공적 사례로 자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국의 정책 홍보 효과 극대화에 기여했다.
그렇다면 실제 교육적 효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사례는 시정의 성과로 의미가 있을 뿐이다. 강동군에서 일어난 양계는 1932년에 널리 알려져 전국에서 양계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성공의 여파가 전조선적으로 미쳤다면, 조선농촌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에서 소비할 수 있는 달걀의 양은 제한적이었고, 양계는 쉽지 않은 농촌 부업의 하나로서 모범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야나기사와 농장의 농민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30명의 농민훈련생 가운데 당국의 의도가 성공한 인물은 소수이고, 녹기연맹의 농장 훈련생은 더욱 소수인데다가 절반은 일본인들이었다. 이들 몇몇 조선인 훈련생들이 갱생에 성공을 했다 해도, 다른 조선 청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또한 1940년대 전쟁의 한복판, 광폭한 인력 공출供出 속에서 농촌갱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Most of the Japanese Residents in Chosen(朝鮮居住日本人) came to the Chosen(朝鮮) for wealth and honor. For them, the Chosen was the Land of Opportunities which could provide a successful career as an official or an entrepreneur. They hold on to the Thought of The Others(他者認識) as a modern civilized people in a comfortable life. Considering themselves as modern civilized people, Japanese treated the Chosen as the Land of the Uncivilization and the Barbarism. They denied the Chosenese’s unique customs and despised the Chosen as the External Land(外地) under the theory of the Modern Civilizaton.
Since the Government General of Chosen(朝鮮總督府) and Japanese residents in Chosen shared such a viewpoint, the Chosenese Rural Development(朝鮮農村振興) stayed out of their eyes. Especially, it was not a concern of urbanites such as Kyungsung(京城). They never doubted that physical labor and farm work were the Chosenese’s share of work. For them, Chosen was only the region for the National Policy(國策) and mobilization of war materials. Therefore, the Chosenese Rural Development was a concern of only a few people, such as government officials who carried out the policy objective and seekers who got the specific education and had the extraordinary belief.
But their way of Chosenese Rural Development was not solving the contradiction of colonial economic structure but just self-rehabilitation of Chosenese farmers. It coincided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Chosen authority. A magazine The Chosen and Manchuria(『朝鮮及滿洲』) expressed the same point of view.
Then, what made them to act like that? It was only a process to carry out the National Policy faithfully. The National Policy which they followed was the Idea to strengthen the Emperor System(天皇制) and one of the ideologies of Japanese Right Wing(日本右翼思想) based on the Physiocracy(農本主義). It was an Idea that tried to accomplish the two goals, Agriculture and Military. It aimed to stabilize the Empire of Japan by providing a livelihood at Chosen and Manchuria to Japanese farmers who were in economic difficulties in their motherland, Japan. For them, Chosen was only a subject of their National Policy and colonial ruling.
Cases of this study were very unique and unusual. They practiced the Authority’s policies not in school but in farms and through the Farming Sideline(農村副業). Promotion effects were beyond the Authority’s expectation. By their own evaluation, the Rural Rehabilitation(農村更生) and the Leading Figures Training(中堅人物養成) were successful cases. So, it contributed the maximization of the Authority’s promotion effects. Then, how could we estimate real effects of the Education?This case had the meaning only the outcome of government(施政). The Poultry at Kangdong County(江東郡) in 1932 gave rise to the Poultry Boom all over the country. If the aftermath of this success influenced the entire Chosen, the problems of the Chosen Rural could be solved. But it never happened. The consumption of egg in Chosen was limited and the Poultry was only a role model of the Farming Sideline(農村副業). The example of the Farmer Education(農民敎育) which carried out in the Yanagisawa Farm(柳澤農場) was the same. Only a few people among the 30’s Farmer Trainees successfully followed the Autyority’s wayin every year. Moreover, trainees of Ryokki Renmei’s(綠旗聯盟) Farm were fewer and a half of them were Japanese. Although the some of Chosenese Trainees succeeded in the Rehabilitation, their influence to other young Chosenese was very limited. Also, it was not meaningful anymore to carry out the Rural Rehabilitation(農村更生) under the crazy and violent Mobilization of Men(人力動員) in 1940’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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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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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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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 0.66 | 1.616 | 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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