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해방 직후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38선 철폐운동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좌익의 입장 = The Movement for the Abolition of the 38th Parallel by Korean Right Wing Nationalist Leaders and Left Wing’s Position on Division of Korean Peninsular after the End of the Pacific War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한국정치외교사논총(Journal of Korean Political and Diplomatic History)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9-112(44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This paper examined Korean people’s shock at the 38th parallel that immediately followed the Liberation and the right wing nationalists’ corresponding response. The 38th parallel was a operation line created by the US and Soviet forces to disarm the Japanese army, but the Soviet Union turned it into a borderline, which stopped the exchange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Many North Koreans sought freedom fled South, and many Koreans felt the 38th parallel presaged the division of a nation.
An Jaehong’s National Party was the first to seriously raise objections against 38th parallel and proposed its abolishment.
The National Party saw the Soviet Union’s occupation of North Korea as a hindrance to an integrated nation-state that transcends class hierarchy, so the National Party argued for the establishment of a Unified Military Government. The individual that raised more concrete objections against the 38th parallel and its abolishment, making it into an international issue was Syngman Rhee. Rhee, who worried that the Korean Peninsula would be sacrificed in the international politics, argued the need to uncover why the 38th parallel was created and to demand accountability; so, he made the Society for Rapid Realization of Independence (SRRI), that, on behalf of the people, would raise the issue of the 38th parallel with the Far East Advisory Committee and Moscow’s foreign ministers conference. Kim Koo was also recognized that the elimination of the 38th parallel was an important issue following Liberation, however he did not propose specific measures to address this other than the proposal to establish Chungching’s Provisional Government to deal with the problem.
What did Park Hon-yong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think about this problem? The Communist Party claimed that the Soviet forces entered North Korea to expunge the pro- Japanese faction and liberated the proletariat. The Communist party argued that the real unification would come through People’s Government North of the 38th Parallel being also established in the South.
In conclusion, if the rightist position was “Abolition of the 38th parallel first and Government Establishment after”, the leftist’s position was “Government Establishment first and Abolition of the 38th parallel after.”
본 논문은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한민족의 충격과 여기에 대한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대응을 살펴보았다. 38선은 미군과 소련군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서 만든 작전선이었으나 소련은 이것을 경계선으로 만들어서 남북의 교류를 중단시켜 버렸다. 많은 북한인들이 자유를 찾아서 월남하였고, 많은 한국민들은 38선을 보면서 민족의 분단을 예감하였다.
안재홍의 국민당은 처음으로 38선 철폐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국민당은 소련의 북한 점령은 초계급적 통합민족국가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통일군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8선 철폐문제를 보다 구체적이며, 국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이승만이다. 한반도가 국제정치의 희생이 되는 것을 염려했던 이승만은 왜 38선이 만들어졌는가를 밝혀내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독립촉성중앙회의를 만들어 전 민족의 이름으로 이 문제를 극동자문위원회와 모스크바 3상회의에제기하고자 하였다. 김구 역시 38선 철폐가 해방 후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는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외에는 특별한 대책을 내 놓고 있지 못 했다.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공산당은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여 친일세력을 청산하고, 무산자의 해방을 가져왔다고주장하며 진정한 통일은 38 이북의 인민정부가 남한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해방 직후, 우익은 38선 철폐를 통한 남북 교류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면, 좌익은 각종 혁명의 수행을 통한 인민공화국 건설에 집중하였다고 본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5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2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19-12-01 | 평가 |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 |
2018-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11 | 1.11 | 1.2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1 | 1 | 1.924 | 0.3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