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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대왜(對倭)교섭과 항로(航路) - 5∼6세기를 중심으로 = Baekje`s Relationship with Wa, and Sea Lane - With a focus form the 5th century to the 6th centu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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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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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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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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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53-1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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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백제와 한반도남부 제국과의 관계변화 및 그 역사적 배경을 백제의 대왜교섭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백제의 대왜항로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백제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 탁순국의 중개로 왜국과 교통로를 처음으로 확보하였고, 남부가야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왜국과 이어지는 안정적인 교역체계를 마련하였다. 5세기대에는 강진·해남을 비롯한 서해 남부지역으로 진출을 꾀하면서 영산강유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당시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서남해 지역의 정치체들은 왜국과 독자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전개하고 있었다. 백제의 진출 이후 대외교섭의 여러 거점지(기항지)가 점차 백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백제-왜국 간의 교섭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6세기대에 들어와 한반도 남부의 정치적 변동과 함께 백제와 신라의 관계 악화, 신라의 가야지역 점령이라는 일련의 사건으로 백제와 왜국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소원해졌다. 백제와 왜국 간의 항로는 크게 3가지 루트가 있었다. 먼저 3세기대 이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소국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해 오던 한-왜 항로이다. 이 항로는 백제가 탁순을 매개로 왜국과 교섭을 시작할 때도 이용되었다. 그 후 5세기 중반 단계에 영산강유역과 섬진강유역의 정치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남쪽으로 제주도를 바라보며 동진하여 쓰시마를 거쳐 일본열도로 들어가는 두 번째 항로가 개척되었다. 이 항로에서는 고흥반도 혹은 여수반도를 기항지로 삼고 남해도를 외해하여 쓰시마를 거쳐 왜국으로 가는 루트도 가능하였다. 마지막으로 6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신라와 관계가 악화되면서 더 이상 기존의 항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된 백제는 서해 남부에서 제주도를 경유하거나, 그렇지 않고 오른쪽으로 외항하면서 큐슈 서북부 연안과 직접 연결되는 항로를 새롭게 개척하였다. 이렇듯 백제와 왜국의 교섭은 시대상황이나 루트상의 정치체들과의 관계변화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양국 간의 교섭루트는 항상 변화하며 존재해 왔고, 점차 다양화되어 갔다. 백제의 여러 대왜항로의 개척은 한반도 남부의 관계변화에 따른 백제의 대외정책 변화와 함께 선박제조 기술 및 항해술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더보기This aticle studied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the Southern countries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historical background from the perspective of Baekje and Wa(倭) exchanges. Based on these results, I have examined in detail how the sea lanes form Baekje to Wa were changed according to period. In the late 4th century, Baekje was the first to secure sea lane with Wa through the intermediation of the Taksoonguk, it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with the southern countries of Gaya and established a stable trade system with the Wa. In the 5th century, it began to establish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Yeongsan River coast, while trying to advance into the southern part of the west sea including Gangjin and Haenam. At that time, the political bodies of the southwest coast including the Yeongsan River coast were actively exchanged with Wa independently. After the entry of Baekje, various bargaining points(port of call) of foreign bargaining gradually moved into the territory of Baekje, and the negotiations between Baekje and Wa were more active. However, in the 6th century,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Wa has become temporary due to a series of incidents such as the political change in the southern part of the peninsula, the deterioration of relations between Baekje and Silla, and the occupation of Gaya in Silla. There were three sea lanes between Baekje and Wa. Since the 3rd century, it has been used as Han(韓)-Wa(倭) route by small countrie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Islands. This sea lane was also used when Baekje began an exchange with Wa through the intermediation of the Taksoonguk. Then, in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the second sea lane was paved to the looking toward Jeju Island to the south, go east and go through Tsushima into the Japanese archipelago in connection with the political bodies of Yeongsan River and the Seomjin River coast. In this sea lane, it was possible to go to the southern coast through the Tsushima Island by taking the Goheung Peninsula or the Yeosu Peninsula as a port of call. Finally, in middle of the 6th century, Baekje became unable to use existing sea lane as relations with Silla deteriorated. After that, it newly opened a sea lane that connects directly with the coast of the northwestern part of Kyushu, from the southern part of the west sea via Jeju-do or exiting to the right. Thus, the exchange of Baekje and Wa was influenced by change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ituation of the times and the political figures on the route. However, the route of exchange between the two countries has always been changing, and has become increasingly diversified. It is believed that the pioneering of various sea lanes of Baekje was possible due to the development of shipbuilding technology and navigation along with Baekje`s foreign policy change due to the change of relations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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