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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수령의 동향과 의병 지원 활동 = The Movements of the Suryeong in Gyeongsang Province and Righteous Militia Support Activities at the Beginning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Imjin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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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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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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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68(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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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aims to achieve a new understanding of the Suryeong (local governors) by investigating the movements of the Suryeong in Gyeongsang Province and reviewing righteous militia support activities at the beginning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Hanseong, Joseon’s capital, fell in to the Japanese army around 20 days after the outbreak of war. This clearly shows the fact that Joseon army’s initial reaction to the attack was poor. During that time, many Gwanchalsa (provincial governors), Jeoldosa(military governors) and Suryeong(local governors) fled or evacuated. As a result, the evaluation of the Suryeong at that time was summarized as cowardice and incompetence.
The focus of this study, however, was raised with the question:did most Suryeong’s really flee at the beginning of the war? The reason why the existence of the Suryeong’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s due to the fact that it was impossible to recruit soldiers or to pursue military activities without the participation of the Suryeongs, who were in charge of public administration in the front line.
Upon the investigation on the traces of 67 Suryeongs in Gyeongsang Province, 33 persons (49.3%) were incumbent, 3 persons (4.5%) were killed in battle, 2 persons (3%) were executed by beheading (after the execution, their heads were put on a display to alert other’s attention), 1 person was dismissed (1.5%) and 1 person was taken captive (1.5%). On the other hand, 25 persons (37.3%) fled. The important fact is that half of the Suryeong’s who fled or evacuated returned to duty or continued on with government affairs and military activities while fleeing.
The Suryeongs who fled first emerged from the inchoate mess, and started to reorganize the military between May and July in 1592. The most impressive part is that the Suryeongs played essential roles in forming righteous militias and aggressively handled the war pressing on with joint operations with righteous militias while procuring provisions and weapons for the militias. The role of the Suryeong is no less important than righteous militias. Therefore, in order to grasp the logic of the situation at the beginning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t is critical to pay attention to the roles of the Suryeong.
이 논고는 임진왜란 발발 초기 경상도 수령의 동향을 조사하고, 의병 지원 활동을 검토해 임진왜란기 수령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 글이다. 조선은 전쟁 발발 20 여 일 만에 일본군에게 수도 한성을 함락을 당했다. 이 사실은 조선 군대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지역 방어를 책임진 관찰사와 절도사 그리고 수령의 대처가 미숙했던 것이 큰 요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찰사․절도사나 수령들의 도망이나 피신이 발생했고, 그 결과 수령들에 대한 평가는 도망과 무능으로 집약되었다. 이 논문의 문제의식은 단순해보일 수도 있지만, 과연 전쟁 초기 경상도 수령들이 대부분 도망갔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임진왜란기 수령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대민 행정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수령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군사 모집이나 군사 활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수령 67인의 행적을 추적해 存否 여부를 조사한 결과, 재직 33인(49.3%), 전사 3인(4.5%), 효시 2인(3%), 파직 1인(1.5%), 포로 1인(1.5%)이어서 총 40인(59.7%)이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에 비해 도망한 수령은 25인(37.3%)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도망이나 피신한 수령의 절반 정도가 다시 복귀하거나, 피신 중인 상태에서 공무나 군사 활동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1592년 7월 이후로 도망 수령들은 초창기 혼란에서 벗어나 차차 전열을 정비하였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사항은 수령들이 전쟁 초기 의병 결성에 크고 작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의병 부대에 군량과 무기를 지원하고 함께 연합작전을 펼쳐 전쟁에 대처해 나간 점이다. 이 점은 그동안 임진왜란기 경상도 수령에 대한 평가나 인식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서, 향후 임진왜란기 수령들의 역할과 평가에서 반드시 숙고해야 할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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