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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장준하의 생애와 자유 · 민권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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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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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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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78(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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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장준하(1918-1975)의 생애를 고찰함과 함께 그의 자유민권 사상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장준하의 생애 연구를 통해 장준하에 영향을 주었던 당대 기독교적 풍토와 한국 신학사조의 변화 등을 조명할 수 있다. 또한 장준하의 자유민권 사상의 고찰을 통해 시대에 따라 변화한 장준하의 자유민권 사상에 반영된 그의 가치와 정신, 그리고 기독교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다.
장준하의 기독교 신앙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전수받은 모태신앙적 성격을 가졌다. 장준하는 생애 초년기부터 기독교 문화에 노출되었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독교적 풍토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았는데, 청소년기 민족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일본 도쿄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해방 후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이후 장준하는 도쿄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의 동문들과 더불어 기독교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언론 및 정계활동을 하면서 한국 진보 기독교계인 에큐메니칼 운동진영과 함께 정권에 대항하여 반독재 운동을 하였다.
한편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자유와 민권의 확보의 중요성을 논했다.「사상계」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진영의 기독교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논한 글들도 실렸고, 장준하는 1950년대부터 「사상계」를 통해 각 개인이 자유와 민권의 의식 갖기를 종용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으며, 집권자의 부정과 불의에 투쟁할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 있고 이러한 권리가 특권 및 관권과 대조되는 개념인 민권(民權)이라는 맥락이었다. 1960-70년대 장준하는 반독재 정치활동을 함과 동시에 자유와 민권을 찾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대항하여야 하고, 희생으로써 자유민권을 되찾을 수 있다며 그의 자유민권론에 전투적인 성격을 부가시켰다. 또한 애국과 민족애와 자유민권 투쟁의 결속관계를 부각시킴으로써, 1950년대 그가 개인의 존엄성을 언급한 것과는 모순적으로 자유민권 투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했다.
장준하는 자유민권을 사상을 드러낸 글들에 기독교적 서사와 구문, 또한 신학자 등 기독교인들이 남긴 어구를 메타포(metaphor)로서 다수인용하였다. 또한 기독교적 구문과 성경에서 반영되는 민주주의, 자유민권, 또한 투쟁의 정신을 수용하여 자유민권운동에 전력을 다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이를 독자들에게도 독려했다.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생 시절과 광복군 활동시 주일학교를 가르치는 목회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교회에 주기적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보유한 채 기독교적 모임에 참석하며 신학교 동문들과 교류했다가 사망 직전 천주교인이었던 부인을 따라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의 자유민권 사상이 시기에 따라 변화했듯,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신앙도 변화를 거쳤다.
This paper examines the life of a 20th century Korean Christian Jang Jun-Ha (장준하) and aims to analyze the peculiarities and development of his thoughts on “liberty” and “civil rights” .Through the research of life of Jang, who was greatly influenced by Christian ideas, it is possible to shed light on the situation of Contemporary Christianity in Korea and the changes in Korean theological thought. Furthermore, the study of Jang"s thoughts on freedom/liberty and civil rights reveals changes in Jang"s value system, spirit and his relations with Christianity.
Jang was born into a family of a pastor. Following in his father"s footstep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ang attended Christian high schools run by missionaries. Therefore, he was accustomed to Christian faith since childhood and there he had become acquainted with the notion of ‘nation" and ‘democracy" as well. Jang graduated from Tokyo Union Theological Seminary and successfully continued his studies in Hanshin University.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he and other alumni attended Christian gatherings. Afterwards, he worked in media and politics and joined hands with Korean ecumenical camps of the progressive Korean Christians to oppose President Park Chung-Hee"s dictatorship regime in 1960-70s.
Meanwhile, since 1950s in his political magazine 「Sasangge」Chang promoted his thoughts on the importance of securing individual’s liberty and people’s rights in Korea. Sasangge also contained articles in which Christians from the ecumenical camp discussed the value of democracy from the Christian perspective. Jang strongly believed that individual’s liberty is inviolable and urged every citizen in Korea to protest against the government"s corruption and injustice. He referred to “peoples" rights(民權)” as contradistinguished from “governments" privileges”.
During 1960-70s, Jang wrote a number of articles persuading readers that in order to obtain liberty and civil rights they need to oppose President Park and his government. He also highlighted the unity of patriotism, nationalism and the struggle for both liberty and people’s rights and emphasized that, in some cases, sacrifice of citizens, including himself, can be a necessary step to obtain liberal democracy values. As it appears, his understanding of ‘liberty’ and ‘civil rights" has changed since 1950s. After 1960s, he put less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individualism.
In his arguments about the necessity of proper securing of liberty and civil rights in Korea, Chang quoted passages from the Bible and Christian theologians. Accepting the Christian values of democracy, he resolved to devote himself to pursuing liberty and civil rights and also encouraged the readers to do the sam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egime in Korea Jang carried out some pastoral duties, but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his direct involvement in the church activity has weakened. Nevertheless, he attended Christian gatherings and maintained contact with alumni from his seminaries and with Korean Christians from ecumenical camps. All his life he remained a Christian, while shortly before his death he converted to Catholicism to satisfy his wife who was a Catholic Christian. That shows us that just as his idea of liberal civil rights changed over time, so did his Christian faith.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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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4-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Society For Korean Church History -> The Society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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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3 | 0.43 | 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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