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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안동지역 사회의 재편과 서애학단의 활동 = Seoae School Ties(西厓學團) and Situation of Andong Local Community in the early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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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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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85(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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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과 그 문인들이 활동하였던 시기는 조선사회에서 `士族支配體制`가 강고해지던 시기였다. 안동지역의 경우 사족지배체제가 일찍부터 형성된 지역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이들 사족지배체제는 전쟁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달성함으로 인하여 그들의 주도권은 확고해졌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고제로 안동지역의 퇴계문인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남북분당 이후 남인세력을 이끌었던 남인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안동권과 상주권을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류성룡과 그의 문인들은 안동지역에서 절대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인근의 예안지역에서 같은 퇴계문하의 장로로 조목이 강력한 지도력을 장악하고 있었음에 비해 류성룡은 오랜 관직생활로 인하여 향촌에서 영향력은 그다지 강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각종 문제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재편을 요구하고 있었다. 류성룡은 자신의 학문적 권위를 이용하여 안동지역의 각종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류성룡은 현실과 실무를 중시하는 학문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관념적인 논의보다는 체험과 실천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안동지역의 서애문인들은 주로 향촌에 기반을 둔 재지세력으로 대표적인 문인으로는 김봉조, 김윤안, 장흥효, 권기 등 지역에서 활동을 전개한 인물들이었으며, 상주지역의 문인들이 주로 중앙 정계에서 활동한 인물이었음에 반해 안동지역의 문인들을 재지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류성룡은 이러한 재지 제자들과 협력하여 각종의 전후 복구사업을 추진하였다. 류성룡은 임란 이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던 향규의 정비를 시도하였다. 류성룡은 향약을 제정하여 사족이 주체가 되는 예교 중심의 사회를 구상하였다. 류성룡은 여강서원의 재건문제에도 깊이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김봉조를 비롯한 안동지역 류성룡 문인들은 류성룡의 학문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와 같은 류성룡과 류성룡의 문인들의 활동은 퇴계학맥 내에서 그들의 학문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미증유의 전란을 겪고 난 후 그들이 제시한 향촌 재건책이기도 했다. 이들은 서원과 향약이라는 두 가지 축을 활용하여 지역사회를 재건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더보기Ryu Seongyong(柳成龍) and his scholars had worked actively during the period of ruling system of Sajok(士族) in the Joseon Dynasty. The ruling system of Sajok was established early in Andong ares. Moreover, the ruling system set up firmly their initiative as accomplishing a political task of overcome of war. This study focused on examining how `the ruling system of Sajok` was consolidated in the 16th century through overcoming the aftereffects of war. Ryu Seongyong, an eminent disciple of Lee Hwang, was a figurehead of Toegye school in Andong areas. He also activated as a leader of Nam Party after Nam and Buk party had been divided. His political influence was established strongly in Andong and Sangju areas. However, Ryu Seongyong and his scholars could not exert their absolute power in Andong areas. Jo Mog(趙穆) who took hold leadership in Yean areas as an elder under Togye school, while Ryu Seongyong did not exert a strong power because of holing official position for a long time. However, various problems which had caused from the war required a new reorganization of local community. Ryu Seongyong was involved actively in every pending issue of Andong community with using his academic authority. Ryu had academic orientation focused on reality and practice, which aimed for empirical experience and practice rather than ideological debates. Scholars of Seoae literary circle in Andong areas were local gentries who had been based on local community, and leading scholars of the circle were Kim Bongjo(金奉祖), Kim Yunan(金允安), Jang Heunghyo(張興孝), and Gueon Ki(權紀). Scholars in Sangju areas worked in central political circles, while scholars in Andong areas had local propensity. Ryu Seongyong pushed ahead with the restoration project of postwar with local gentries. Ryu attempted the reorganization of Hyanggyu(鄕規) which had been enforced before Japanese invasion of Korea. Ryu conceived of Enlightment for civility(禮敎) and local gentries centered society through establishing Hyangyak(鄕約). Additionally, Ryu had a keen interest in reconstruction of Yeogang Seowon(廬江書院). Since then, scholars of Seoae School Ties(西厓學團) including Kim Bongjo devoted themselves entirely to set up academic authority in Andong areas. These activities of Ryu and his circle was not only the efforts to establish their academic position but also the process to reorganize local community after an unexampled war in the history of this dynasty,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conclusion, Seoae School Ties had attempted to reestablish the Andong local community as using two central axises, Seowon and Hyangy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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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3 | 통합 | KCI등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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