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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재 김안국의 생애와 사상 = The Life and Thought of Mojae Kim Ahn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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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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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400(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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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재 김안국은 조광조와 함께 16세기 중반 조선의 도학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그의 가계와 혼맥은 조부 때부터 본가와 처가, 사돈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족친으로 이어지고, 정국공신과도 연결되었다. 별시 문과를 파방할 때 대비의 족친이라는 이유로 구제되고, 기묘사화 때 아우 김정국과 함께 큰 화를 면하며, 19년 만에 복직하여 고위직을 역임한 점 등은 개인의 역량은 물론 왕실 및 공신과의 인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모재는 훈구계 학자를 대표하는 성현의 뒤를 잇는가 하면 사림파를 상징하는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러한 사승 관계는 16세기 초반 훈구계와 사림계의 연결고리로서 그의 정치적⋅사상적 위치를 뚜렷이 보여준다. 특히 조광조 사후 조야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중종, 명종 대까지만 해도 ‘유림의 종장’이라고 불렸다. 선조 대 초반에 그는 동국의 ‘十大儒’로 뽑혔다. 우탁, 정몽주, 길재,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서경덕 등과 함께 조선의 이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은 것이다.
그러나 선조 즉위 후 본격화된 문묘 종사 논의에서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이 4현으로 들어가고 모재가 빠지면서, 그의 존재는 점차 잊혀져 갔다. 그가 4현에서 제외된 까닭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사림정치의 개막과 함께 종래 ‘도학의 수호와 실천’에서 ‘조선 도학의 정립’으로 문묘 종사의 기준이 전환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재의 문묘 종사 논의에서 ‘선생이 평소에 재산을 불린 것이 흠이 된다’는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결국 16세기 후반 4현 문묘 종사의 관건은 정주이학 또는 정주심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 도학의 수호와 이론 정립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달려 있었다. 이 기준은 동방의 주자 불리는 퇴계를 5현의 문묘에 종사하는 근거로 작용하였다. 그 점에서 이학 또는 심학 분야에 별다른 저술을 남기지 않은 모재는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Kim An-guk was a leading figure in Joseon's mid-16th-century academia alongside Cao Gwangjo. His family and bloodline were connected to the royal family, from his grandfather to his father-in-law, sister-in-law, and in-laws, and he was also connected to the government. It is understood that the fact that he was spared because he was a relative of Daebyeon when he was expelled from the department, saved from great anger along with his brother Kim Jeongguk when he was graven, and reinstated after 19 years to serve in a high position, is understood to be a result of his personal competence as well as his royal and official background.
Mojae succeeded Sung Hyun, who represented the Hungu school of scholars, and studied under Kim Gungpil, who symbolized the Sarim school. This relationship clearly shows his political and ideological position as a link between the Hungu and Sarim schools in the early 16th century. He was especially trusted by Cao Ya after Cao Gwangjo's death, and was called 'the bellman of the Yurim' until the Zhongjong and Myeongjong dynasties. At the beginning of the Seonjo Dynasty, he was chosen as one of the “Ten Great Confucians” of the Eastern Kingdom. Along with Wu Tak, Jeong Mongju, Gil Jae, Jong Jong Jik, Kim Gung Pil, Jeong Yeo Chang, Cho Gwang Jo, Lee Eon-il, and Seo Kyung Deok, he was considered a representative scholar of Joseon's science.
However, as Kim Gung-pil, Jeong Yeo-chang, Cho Gwang-jo, and Lee Eon-li entered the four prefectures and Mo-jae was excluded, his presence was gradually forgotten in the discussions on the history of the Moon Myojongsa that began in earnest after Seonjo's enthronement. The reasons for his exclusion from the four prefectures are summarized in two ways. One is that with the dawn of private politics, the standard of the munmyo masters shifted from 'defending and practicing the art' to 'establishing Joseon art'. The other is that in the discussions of the bunmyo masters in Mogae, a charge was raised that 'the teacher's usual wealth was a blemish'.
In the end,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key to becoming a four-string bunmyojongsa was the extent to which one contributed to the defense and theoretical establishment of Joseon architecture, centered on Jeongju-i or Jeongju-simhak. This criterion also served as the basis for the deunggye to join the five-prefecture bunmyo. In that respect, those who had not written much in the field of science or psychology were considered w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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