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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後期東宮侍衛公子制度의 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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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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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1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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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8년에 처음 시행된 고려의 동궁시위공자 제도는 무인집권기에 들어와 운영상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선발 방식이 기존의 천거제에서 시험제로 바뀌었다.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후보자를 대상으로 詩作과 같은 文才를 직접 시험하여 뽑는 試選制가 그 하나였고, 監試나 禮部試등의 공인된 科擧에 합격하여 이미 文才가 검증된 인물을 뽑는 방식이 다른 하나였다. 무인집정자에 의한 잦은 왕위 교체와 그에 따른 성년 태자의 거듭된 등장이 이러한 변화를 재촉한 요인이었다.
또한 성분 구성에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文武官의 자제로써 선발한다’는 기존 원칙을 따르고자 했으나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못했고, 鄕吏를 포함한 한미한 가문 출신이 주류를 이루었다. 왕실과 유력 가문의 결합을 우려한 집정 무인의 견제로 인해 문무관 자제가 이를 기피하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寒門출신이 대신한 것이다.
운영상의 변화는 원 간섭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우선 그 어느 때보다 이의 선발을 서둘렀다. 세자가 출생하기도 전에 뽑는 경우까지 있었다. 선발이 빠를수록 더 많은 시학 출신을 배출할 수 있으며, 그만큼 세자의 정치 기반이 탄탄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종전의 동궁시위공자가 세자의 학문을 보좌하는 시학과 신변 숙위를 맡은 忽赤로 분화되는 변화도 있었고, 충목왕 이후에는 無官의 公子가 아닌 朝官에게 시학을 겸직케하는 관례도 생겨났다.
또한 이 시기에도 시학의 주류는 世家보다 寒門출신이었다. 世家子弟의 경우 重祚에 뒤따르는 정치적 몰락의 위험성으로 인해 이를 기피한 반면, 입신 기반이 미약한 寒門출신은 그런 위험성보다 출세의 기회를 얻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시학 선발에 적극 나선 결과였다. 결국 동궁시위공자는 무인집권기와 원 간섭기의 변화를 거치면서 점차 한문 출신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로 기능하였다.
Donggungsiwigongja system held first at the 8th year of King Munjong(文宗) in Kory? began to change in its management from the period of Military rule. Most of all, in the way of selecting Donggungsiwigongja, the recommendation system that had carried into effect before changed into examination one. It had two ways. One was to engage able persons by testing the ability of writing poems, and the other was to select them among the people who had already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his change was because the throne was changed frequently by military rulers, and that made older Crown Prince appear repeatedly.
As well, there was an important change in its constituent. The principle was originally to select sons of civil officials, but it didn"t worked well. In reality, common people"s sons like Hyangri(鄕吏) were picked mostly. That was because civil officials" sons avoided to be picked as Donggungsiwigongja, whereas common people"s sons wanted it; Military rulers were afraid of connection between the royal family and the powerful civil officials.
The change in management of Donggungsiwigongja system continued during the Won"s(元) interfering period. First of all, the time of selecting them was very early, even before the Crown Prince was born. The faster the time of selecting is, the more ones who had worked as Sihak(侍學, Donggungsiwigongja) the Crown Prince can have, and they thought that could make the Crown Prince"s political power stronger. There was another change that the former Donggungsiwigongja was devided into two; One called Sihak was to help the Crown Prince study and the other called Holchi(忽赤) was to guard him. In addition, there was a change that the government could let the civil officials held Sihak at the same time after King Chungmok(忠穆王).
At this period, most Sihak were also from descendants of common families, not noble families. The reason was as follows. In case of noble families, they didn"t want to be selected as Sihak to avoid political ruin which came from Jungjo(重祚); Jungjo was the phenomenon of alternating enthronement between the king and his son. On the other hand, common families" sons who didn"t have good background were ready as candidates of Sihak in spite of their political danger. Because they thought it was worth trying to succeed in life for them. In short, Donggungsiwigongja system had a function of channel that common families" sons could grow politically through the period of military rule and the Won"s interf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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