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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대 경기지역 군사체제의 정비 = Restructuring of Military System in Gyeonggi(京畿) Province during the Sukjong’s Reign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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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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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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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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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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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litary system of early Joseon Dynasty operated in two different structures during peacetime and wartime. The national army in time of peace was divided into the central army and the provincial army, and two were combined and deployed as the integrated field army in wartime. The field army was commanded by officials such as ‘Chechalsa(體察使)’, a temporary garrison commander commissioned by the King. Thus, temporary officials including Chechalsa, Sunchalsa(巡察使) and Bangeosa(防禦使) were appointed by the central government in time of emergency in early Joseon Dynasty period to command the field army. These officials were dismissed upon resolution of issues and were reinstated back to the central government. However, this military system of the early Joseon Dynasty period was pointed out as one of the cause for the early-stage defeat of the Imjin(壬辰) War. Soldiers were not properly trained in peacetime prior to the occurrence of war, and both commanders and soldiers were completely unaware of the development of the situation; resulting in a complete failure in commanding and controlling.
As a corrective measure, the management of the national army was restructured to be consistent in peacetime and in wartime by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The temporary officials such as Chechalsa, Sunchalsa and Bangeosa obtained permanent position status along with the establishment of military camps designed to take immediate action in time of crisis. As such, the military systems both in time of peace and in wartime were aligned to take an uniform approach in late Joseon Dynasty period to be better prepared against external invasion. The kings and the ruling class continued to add military forces and strengthened the defense system in areas they found vulnerable. In addition, the government established three major camp gates, including Hullyeondogam(訓鍊都監), Eoyeoungcheong(御營廳), and Geumuiyoung (禁衛營) in the capital city of Hanyang(漢陽), and also established Sueocheong(守禦廳) and Chongyungcheong(摠戎廳) in Gyeonggi(京畿) Province to defend the outskirts of the capital city. In addition, the government went on to establish three defense bases in Suwon(水原), Jangdan(長湍) and Gwangju(廣州), as well as Jinmuyeoung(鎭撫營) in Ganghwa(江華) Island and Gwanlicheong (管理廳) in Gaeseong(開城), doubling and tripling the national defense system.
In the 18th century, a rising suspicion and distrust of the utility of the existing defense bases and fortresses, including Ganghwa Island, Namhansanseong(南漢山城), and Daeheungsanseong(大興山城) led to the emergence of the defense theory based on the capital city as an alternative solution, and additional capital fortress, Bukhansanseong(北漢山城) and Tangchundaeseong(蕩春臺城), were constructed.
With the alignment of the military system in time of peace and war in the centralized dynasty, the kings and the ruling class expanded the redundant defense system in an attempt to secure their own safety, and sought yet another defense system if any doubt arose about the utility and effectiveness of their safe havens. The military system in modern democracies should be organized with the safety of the people as the primary consideration but the military system in the medieval dynasty placed the highest priority on the safety of the kings and the ruling class instead.
조선전기의 군사체제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분리되어 있었다. 평시체제 하에서 군대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었고, 전시체제에서는 중앙군과 지방군이 통합되어 출정군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출정군의 지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인 체찰사 등이 담당하였다. 즉 조선전기에는 유사시에 중앙에서 체찰사, 순찰사, 방어사 등을 임명하여 출정군을 지휘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안이 해결되면 이들은 해임되어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전기의 군사체제는 임진왜란 초기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평상시 군인들의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또 지휘관과 군인이 전혀 모르는 상태라 지휘·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패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조선후기에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군제를 개편하였다. 조선전기에 유사시에만 파견되는 체찰사, 순찰사, 방어사 등이 상설직으로 바뀌었고, 또 유사시 즉시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군영이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에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일치되어 항상적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 군사체제를 취하였다. 이에 왕과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방어에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이 있으면 계속 군영을 증설하고, 방어체제를 강화하였다. 한양 도성 안에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도성 3군문을 설치하고, 경기도에는 수도외곽 방어를 위하여 수어청과 총융청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수원, 장단, 광주에 3개의 방어영을 설치하는가 하면, 강화도에 진무영, 개성에 관리청까지 설치하였다. 2중, 3중의 방어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 조정에서는 강화도, 남한산성, 대흥산성 등 기존 보장처의 효용성에 의혹과 불신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성중심 방어론이 등장하고, 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이 축조되었다. 중앙집권적 왕조국가에서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일치되자, 국왕과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방어체제를 중복적으로 설치하고, 또 자신들의 보장처의 효용성에 의혹이 생기면 또 다른 방어체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체제는 국민 전체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조직되어야 했지만, 중세 왕조국가에서는 국왕과 지배층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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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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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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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6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육군본부 -> 육군군사연구소영문명 : Army Headqarters -> ROK Army of Military History Institute | KCI등재 |
2015-03-2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ROK Army of Military History Institute -> ROK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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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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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18 | 0.18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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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 0.23 | 0.503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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