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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경주손씨(慶州孫氏) 가문(家門)의 가풍(家風)과 계승 = The Family Tadition(家風) and Succession of Gyeongju Son Family of Yangdong Village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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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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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1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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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風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문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말한다. 조선시대 가문은 가풍의 확고히 정립을 통해서 세대가 교체되어도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유지 발전시켰다. 특히 家風은 家學을 통해 전승되었다. 家學은 학문의 전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가풍은 학문전수와 함께 취미와 경세론, 행동거지 등 생활 양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구별된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는 淸德과 忠節을 가풍으로 계승 발전시켜왔다. 淸德은 德으로 淸白을 실천하는 것이다. 양동마을 경주손씨 가문의 德에 바탕을 둔 淸白의 가풍은 손사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여러 淸要職을 역임하면서 청백을 몸소 실천하여 관료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맑고 덕스러운 삶의 자세는 ‘淸名’으로서 당대의 호평을 받았으며, 가풍으로서 확립되어 후손들에게 계승되었다.
淸德의 家風은 아들 손소가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가문의 전통인 청덕을 계승하여 실천하였다. 손중돈은 지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청렴한 자세로 참된 牧民의 道를 실천하였다. 특히 상주목사에 임명되었을 때는 상주 고을의 백성들은 선정비를 건립하고, 丹密縣에 生祠堂을 건립하였으며, 마침내 청백리의 명부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손덕승이 지방관으로 녹봉과 창고의 곡식을 풀어 빈민을 구휼하고 민생의 고통을 덜어주니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찬양하여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
忠節은 나라에 충성하고 국왕에게 절개를 지키는 것이다. 충절이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家風이 된 것은 孫昭가 공신으로 책봉되면서부터이다. 손소의 공신책봉으로 양동마을의 이름이 楊左洞에서 良佐洞으로 바뀌면서 손소 이후 국가에 대한 忠節은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家風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忠節 家風은 국가의 위기에 발휘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이 일어나자 경주손씨 가문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손소의 玄孫인 孫曄, 孫時, 孫魯, 孫宗賀, 孫魯香 등이 떨쳐 일어나 대대적인 의병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손중돈의 현손 孫宗老가 의병으로 참여하여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양동마을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旌忠閣이 건립되어 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흔들리게 되자 양동마을 경주손씨의 가풍은 독립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성리학적인 학문을 계승하면서 국가가 일제에 의해 위기에 봉착하자 국난극복을 위해 孫晉衡, 孫厚翼 등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忠節의 家風을 계승하였다.
A family tradition(家風) refers to a specific lifestyle that has been hand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within a family. During the Joseon Dynasty, family clans maintained their specific lifestyles across generations through establishing their strong family tradition. Family traditions are similar to family learning, whose chief purpose was to hand down knowledge but transcend it by including other elements such as hobbies, administration theory, proper manners, and behaviors.
The Gyeongju Son Family of Yangdong Village in Gyeongju is a fine example of family tradition transfer. The core value of the family tradition has been on cheongduck(淸德; family virtues through a life of integrity and righteousness). This virtue of that family started with Son Sa-Seong, who set an example of incorruptible government employees while he served as high-ranking officers in several important government posts. His dignified and virtuous attitude and lifestyle, which others highly praised and revered, were set as the family tradition and handed down to posterity.
The family tradition of cheongduck was carried out by Son Sa-Seong's son, Son So, who served as an official in a local government. Son Jung-don, Son So’s son, also practiced cheongduck virtue while serving as a local government official. When he served as the regional governor of Sangju, the town’s people erected a monument and a pantheon commemoration of his virtue. His name was finally registered in the list of the incorruptible government employee. Son Duk-Seung from the Gyeongju Son family, who also served as an official of a local government, spent his salary and distributed reserved grain for the starved poor people of the town he resided. In return, the townspeople erected a monument in his honor.
Another core virtue of the Gyeongju Son family is loyalty, which means keeping fidelity to the King. This family virtue began with Son So's installation as the King's meritorious subject. With his installation, Yangdong Village's name was changed from 楊左洞 to 良佐洞.
The virtue of loyalty in the Gyeongju Son family was well exercised when the nation was in jeopardy. The Gyeongju Son family actively participated in civilian army activities in both wars of Imjinwaeran and Byeongjahoran. Dur ing Imjinwaeran, Son So’s great-great-grandchildren Son Hyeop, Son Si, Son Noh, Son Jong-Ha, and Son No-Hyang joined the civilian army to fight against the invading Japanese army. Upon Byeongjahoran Son Jung-don’s great-greatgrandchildren died a glorious death on the battlefield against Cheong Dynasty army. A monument was established in his honor in Yangdong Village.
The loyalty in the Gyeongju Son family continued as liberation and independence efforts when our country was invaded and colonized by Japan. Son Jin-Hyeong and Son Hu-Ik from the Gyeongju Son family, who used to devote themselves to the study of Neo-Confucianism, succeeded to the Gyeongju Son family’s virtue of loyalty, instantly committing themselves to the causes of the nation’s independence movement when the war brok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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