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세기 왕권의 해체와 지방 권력의 성장 -프랑스 아키텐의 사례- = The decline of royals and growth of locals in the 9th~10th centuries: Aquitaine of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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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The Historical Society of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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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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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50(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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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 프랑스 남부의 아키텐은 프랑크 왕국과 매우 상이한 사회ㆍ경제ㆍ문화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정복당한 이후에도 쉽게 동화되지 않았다. 781년 카롤루스 마그누스는 중앙집권주의를 포기하고 아키텐 왕국을 창건하여 주민들의 분리주의 성향을 달래는 동시에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이 지역을 프랑크 왕국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한편 아키텐을 통치하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루도비쿠스 1세가 수차례에 걸쳐 상속령을 개정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이 831년부터 본격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카롤루스 왕가의 내부 갈등은 아키텐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났으며 수십 년에 걸친 내전 끝에 카롤루스 대머리왕이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서프랑크 왕이 된 그는 자신의 아들을 아키텐 국왕으로 임명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아키텐 왕국의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통치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아키텐 귀족들이 이 같은 지배 방식에 반기를 들면서 카롤루스 왕권은 9세기 말부터 급격하게 해체되었다.
아키텐의 강력한 귀족들은 왕권이 약화된 틈을 이용하여 다수의 백령들로 이루어진 ‘제후령’을 만들었다. 원래 카롤루스 왕가로부터 관직과 토지를 받고 왕을 대신했던 이들은 9세기 후반부터 왕권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했으며,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기존의 백령을 여러 개로 분할하고 ‘부백’을 대리인으로 임명했다. 9세기 말 경건공 기욤은 광대한 아키텐 공국을 수립했으며 카롤루스 대머리왕의 충신이었던 일드베르를 최초의 리모주 부백으로 임명하고 해당 지역을 관리토록 했다. 한편 10세기 초부터 푸아티에 백들이 오베르뉴 세력을 리무쟁에서 몰아내고 리모주 부백들을 지배했지만 지리적ㆍ정치적으로 제한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원활한 통치를 위해 오히려 부백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베르뉴 및 푸아티에 백들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와 토지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던 리모주 부백들은 결혼을 통해 리무쟁의 강력한 귀족들과 관계를 맺고 가산을 증대시키면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장해나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리무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In the early middle ages, Aquitaine, located in Southern France, had a very distinct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structure compared to the Frankish Kingdom, not easily assimilated even after being conquered. In the year 781, Karolus Magnus gave up centralism and constructed the Aquitaine kingdom in order to appease the local separatist inclinations as well as have his son rule as king, absorbing the area into the Frankish kingdom. Meanwhile, Louis I the Pious, who succeeded his father as emperor, amended the inheritance order Ordinatio imperii over a number of times, at which point his dissatisfied sons started to rebel from the year 831. Internal conflict within the royal family was most acute in Aquitaine and after decades of civil war, Charles the Bald reigned as the new king. After becoming king of the West Frankish Kingdom, Charles the Bald ordained his son as king of Aquitaine. However, by establishing a centralized authoritarian rule, he seized all authority of the Aquitaine kingdom as his own. Nevertheless, failing to secure a means to actually govern the area as well as due to the Aquitainians revolts against such control, the carolingian kingdom quickly dissolved by the end of the 9th century.
As royal authority weakened, the powerful aristocrats of Aquitaine seized the opportunity to gain support of numerous counties and established ‘principalities’. The aristocrats, who used to receive office and land from the royal family to rule in their place, expanded their land from the late 9th century, using royal authority as they please. However, unable to efficiently rule over such vast territory, they divided their counties into several ‘viscounties’ and placed in each a deputy in charge. William I, duke of Aquitaine, appointed Hildebert, a loyal subject of Charles the Bald, as the first viscount of Limoges. In early 10th century, the counts of Poitiers drove away the Auvergne forces from Limousin and started ruling the viscounts of Limoges. Yet, due to their limited geographical and political influence, they had to rely on the viscounts. The viscounts of Limoges, who received authority and land from the counts of Auvergne and Poitiers, expanded their influence by building relationships with the powerful aristocrats of Limousin through marriage and increase of patrimony and quickly became the most powerful influence within Limou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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