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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樂論과 한국 歷代王朝의 年號·諡號·廟號 = A Study on Yeakron(禮樂論), and Korean Dynasties' Yeonho(年號), Siho(Posthumous Epithet, 諡號), and Myoho(Posthumous Title for King, 廟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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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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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ho(Era Names, 年號) and Myoho(Posthumous Title for King, 廟號) were important symbols that contain the dignity and independence of a country in the dynasties of the Middle Ages. In the Middle Ages, countries governed by the feudal lords were not allowed to designate Yeonho by themselves, but in accordance with Jeongsak(正朔) promulgated by the Central Plain Dynasties, so called emperor's countries, to follow their Yeonho. Otherwise, tough sanctions were imposed against those who refused to follow it. Therefore, Korean Dynasties had to follow Chinese Yeonho foro a long time. During about one thousand years throughout the era of Three Kingdoms of Korea, there were only two Myoho(Posthumous Title for King, 廟號) used - Taejo Daewang(太祖大王) in Goguryeo and Taejong Muyeolwang(太宗武烈王) of Silla - and the other kings were titled just as "King".
For about one thousand years throughout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Korea haven't been almost able to use our own Gynyeon(紀年), but to follow Yeonho of the Central Plain Dynasties. After rebuilding the country under the name "Korean Empi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Yeonho "Gwangmu" was newly established as the name of the era by the Emperor Gwangmu and then, after the Emperor Yung-hui ascended the throne following the Emperor Gwangmu, it was changed into Yung-hui(隆熙’). Although it left much to be desired because foreign power had influence on it, it was still good enough as we finally realized our national independence and pride and it was anyway obvious that we finally accomplished Chingje Gunwon(稱帝建元, to designate our king as "Emperor" and establish our own Yeonho). But posterity couldn't take advantage of this golden opportuni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e used Yeonho of the Japanese King for thirty years without particular resistance, abandoning Yeonho of the Central Plain Dynasties which we had used for about one thousand years. But we were not even aware of dishonor from such treatment, nor ashamed of that. After liberation, we used Dangi, or the Dangun era, honorably, and all of a sudden, abandoned it without careful consideration about it. Then, it has been replaced with the Christian era from the West, considering it as the modern thing, and it has been widely used until today, even on the country's official documents.
Tombstones erected throughout the fields and mountains of the country used to be full of Chinese Yeonho for centuries, and now, it has been replaced with the Western Yeonho - Christian era. This tacit and toadyish practices over the old and the new which have been diachronically continued as if it is such a progressive idea should not be considered to be natural, under the mask of convenience and customs.
年號와 廟號는 중세왕조에 있어서 국가의 존엄과 주체성이 내재된 중대한 표상이었다. 연호는 중세의 경우 제후국은 이를 시행할 수 없고, 중원의 소위 황제국 들이 반포한 ‘正朔’에 기준하여 그들 나라의 紀年(연호)을 사용해야 했으며, 이를 어기면 강력한 제제가 따랐다. 그리하여 우리 역대 왕조는 장구한 기간 동안 중국의 연호를 써왔다. 廟號 역시 삼국시대 천여 년 동안, 고구려의 ‘太祖大王’과 신라의 ‘太宗武烈王’ 밖에 없고, 나머지는 제왕들 모두 ㅇㅇ왕으로 칭했다.
고려 조선조 천여 년 동안 우리는 自體紀年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중원 왕조들의 연호를 써왔다. 조선조 말엽 대한제국으로 再造된 후, 광무황제에 의해 연호 ‘光武’가 建元되고, 융희황제가 禪讓을 받아 즉위하여 ‘隆熙’로 개원했다. 명실상부한 稱帝建元이 실시되었지만, 외세가 작용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민족자존과 긍지를 실천한 千載一遇의 기회를 후인들은 살리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천여 년 간 사용해왔던 중원왕조의 연호를 버리고, 일본왕의 연호를 별 저항 없이 30여 년 간 사용하면서, 그것이 갖는 치욕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해방 후 民族年號인 ‘단기’를 의연하게 사용하다가, 졸지에 별다를 고민도 없이 파기하고, 서양 연호인 ‘西紀’를 근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사용했고, 지금도 당연한 것처럼 국가 공식문서에까지도 쓰고 있다.
산야의 편만한 墓碣銘에 수 세기동안 중국연호로 도배되었다가, 지금은 西洋年號인 서기가 범람하고 있다. 통시적으로 계속된 이 같은 암묵적 新舊 事大主義的 行態가, 便宜와 慣行에 편승하여 소위 진보라는 탈을 쓴 채, 자주성을 버린 이 같은 현상이 당연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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