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 嶺西 지역의 種族과 文化 變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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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발행연도
2009년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廣開土大王陵碑文」에 종족명을 부기한 지역은 복수의 종족이 혼재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차출 대상 종족을 특정하기 위해 그러한 표기 방식을 취했다. 종족명을 붙이지 않은 나머지 31개 지역은 그럴 필요가 없는 단일 종족의 거주 지역이며, 여기에는 韓族 못지않게 穢族의 단일 거주지도 상당수 있었다. 韓은 백제 국가의 형성 기반이 된 馬韓의 주민 집단이다. 그런데 4세기 말 고구려가 공략한 백제 영역 중에는 한족뿐 아니라 穢라고 불린 별개의 종족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고고학계의 논의를 통해서 원삼국기 중부지역의 문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다. 영동과 영서 그리고 한강 하류역과 임진강 유역에 살았던 주민들은 주거지와 토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墓制의 경우는 중부 내륙 즉 영서지역에서 葺石式積石墓라는 특징적인 형태가 나타났다. 토기와 주거지 양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領西와 嶺東에서 무덤 형식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 것은 大河川邊과 海岸이라는 지형상의 차이와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種族의 分岐와 같은 역사적 요소의 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住居址와 土器文化를 공유하고 있었던 한반도 중부지역이 앞서 고찰한 「廣開土大王陵碑文」의 ‘新來韓濊’ 분포 지역과 일부 중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광개토대왕의 南征은 百濟를 상대로 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고구려가 새로이 획득한 영역은 漢城이 건재한 한에서는 백제의 北邊과 東邊에 해당하는 臨津江과 漢江 유역이 될 수밖에 없다.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시기가 4세기 말~5세기 초이므로 원삼국시대를 100여 년이나 지난 상황이다. 3세기까지의 종족 분포나 문화 양상은 이미 상당히 바뀌었고, 그 방향은 百濟化 그리고 韓族化의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래한예’의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아직도 濊族 집단이 백제의 北ㆍ東邊에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예족의 문화 전통도 5세기 초까지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百濟가 진출하기 전까지는 嶺西지역에 살던 주민 집단을 濊族 계통에 속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BC 3세기~AD 3세기 전반에 걸치는 시기에 濊族의 문화는 강원도 지역은 물론 함경도 동해안,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남부, 吉林省 중부 및 압록강 중류역에 걸치는 廣域의 지역에 형성되어 있었다. 예계 문화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으로 확산되고 주변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濊系 文化의 범위가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예계 문화권이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었으므로 지역 간의 문화적 격차가 발생하고 종족적 分化 혹은 融化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夫餘, 沃沮(북옥저ㆍ남옥저), 濊(동예ㆍ영서예)와 같은 정치적 구분도 이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분화 양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주변 세력과의 교류가 진전되면서 가속화되어 나갔다. 낙랑군, 고구려, 백제 세력의 길항관계 속에서 영서와 영동의 종족 분기와 문화적 차이가 나타났다. 5세기 초에 작성된 「廣開土大王陵碑文」에 고구려인들이 영서지역의 주민 집단을 분명히 ‘濊’로 인식한 것은, 영동지역보다 200년 정도 늦게 고구려에 흡수되었고 그간 영동ㆍ영서 사이에 문화적 격차도 커졌지만 여전히 濊族 분포지라는 공통의 기반이 양 지역에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The Race and Cultural Changes at Youngseo(嶺西) Area in Ancient Korea
Kim, Chang-seok (Assistant Prof. of Kangwon National University)
The cultural range of Ye(濊) origin got dynamic as time flowed. In the early days it ranged from the middle and eastern parts of Manchuria, the southern part of the Maritime Province and the Tuman river valley to the east coast of Hamkyung province, but when the early stage of Iron Age started, it was devided into political units such as Buyeo(夫餘) and Okjeo(沃沮).
In the late stage of Old-Choseon(古朝鮮), the Ye race spreaded into southwest, some at the northern part of Kangwon(江原) formed Imdun(臨屯) political unit, others advanced into Youngseo area regularly. The cultural range of Ye origin enlarged and changed with interchange between Ye and other races as well as the expansion of the Ye race. In 75 B.C. Han(漢) Dynasty made Dongbu-towie(東部都尉) of Lorang-kun(樂浪郡) have jurisdiction over Youngdong(嶺東) area and Lorang-kun control Youngseo area directly. Taking this opportunity Ye of Youngseo diverged from that of Youngdong. Tongbutowie was done away with in 30 A.D., however Lorang-kun maintained the control over Youngseo area, since then Ye of Youngdong was subjected to Goguryo(高句麗), and the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Youngdong and Youngseo got large. It should be understood in view of these historical backgrounds that two areas own the main living culture, such as 凸ㆍ呂's character shaped dwelling sites, however corridor-style stone chambers were made at Youngseo area only.
After the mid-third century Baekje(百濟) in Hansung period made Ye of Youngseo area obey it. Spread of the earthen ware of Baekje and the hexagonal dwelling site reflected this. But in the early fourth century Goguryo advanced southwards and destroyed Lorang-kun and Taebang-kun(帶方郡), so the situation changed suddenly. It is known that Ye race as well as Han(韓) race lived in new territory of Goguryo and in the early fifth century people of Goguryo regarded inhabitants at Youngseo as Ye origin to which Dong-ye(東濊) belonged by the inscription of Gwanggaeto the Great King(廣開土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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