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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서울시 식량배급의 실제 = Characteristics of Food distribution in Seoul during the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저자
최영묵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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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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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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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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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3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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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rganizing the administration and organizations regarding food which had been in chao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gave temporarily the authority of food distribution to Seoul city. Based upon this, Seoul city continued to demand to power for the control regarding rice distribution to the Government. But the Military Government tried to use the power regarding food distribution not through Seoul city itself but through Donhoe, basic administrative unit of Seoul city. This reflects the mistrust of the Military Government in Seoul city. The Government also thought that Seoul city could not justly perform food administration, because Seoul city was involved in bribes. Thus, the authority to distribute food distribution remained in the Military Government.
The citizen of Seoul city was given about 2 hops(360 ml) of rice during the period of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Regarding food distribution free market policy was adopted after U.S Army had landed in South Korea. But Seoul citizens faced with the problem of soaring increase of food price owing to food crisis. Thus, Seoul citizens came to take socio-political activities including demonstration against the rapid increase of food price before Seoul city hall. However, Seoul citizens were obliged to survive with 1 hop(180 ml) of rice in the first half and imported grains in the second half of 1946 through food distribution. Of course, its quantity was not enough for a citizen to live off, and being short of food, one was impelled to get necessary food in black market or market located in countryside. In view of food distribution, the year of 1946 might be regarded as one of worst years for Seoul citizens. This serious food problem could be mitigated because the rice and summer grain produced in 1946 were collected forcedly. Nevertheless, the shortage of food did not disappear due to deficient quantity of food distribution, 1.3 or 1.4 hop, and Seoul citizens had to rely on 'black grain' sold in black market.
On the other hand, Seoul city had another great problem of ghost population with respect to food distribution. The Military Government and Seoul city together tried to respond actively to the problem, because it was too important to decide whether the success or failure of the food distribution policy in final stage. The measures to find out the ghost population had been taken into action by both since April 1946. So within one year from that date, ghost population of 200 thousands was revealed through them. But in solving the ghost population Seoul city met the obstacle of the connection between Donghoe and local youth organizations. Without reasonable reform of the basic administrative unit of Seoul city, Donghoe, it was impossible to solve fundamentally it. In other words, the feature of the food distribution of Seoul city laid in the strong control by the Military Government and its minimum supply of the food as well. The food distribution of Seoul city had the limit not to have overcame the connection between Donghoe and local youth organizations, because administrative authority of Seoul city could not penetrate into its basic unit, Donghoe, Nevertheless, Seoul city tried to seek for its own rationality regarding food distribution by investigating and getting remove of ghost population.
미군정은 해방 이후 혼란에 빠진 식량행정과 관련 기구를 정비해 나가는 한편 서울시에 일시적으로 식량배급에 관한 통제권을 넘겨주었다. 서울시는 이것을 근거로 삼아 식량배급 권한을 계속해서 요구하였으나 군정은 서울시가 아닌 조선생활품영단을 통하여 식량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서울시의 하부조직인 정회(동회)가 식량의 배급과 관련하여 그 자신이 부정 사건의 당사자인 경우가 많은 등 식량 행정을 원활히 수행해 나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 식량 배급권은 미군정이 계속해서 장악하고 있었다.
미군정기 서울시민은 해방 직전 2홉 내외의 식량을 배급받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한 뒤 실시한 미곡의 자유시장정책에 의해 자유 매입을 하기도 하였으나 곧이어 도래한 식량 위기로 인하여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가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시민들은 시청 등지에 가서 생존의 위기를 호소하는 등 정치사회적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서울 시민들은 1946년 전반에는 쌀 1홉씩, 후반에는 주로 수입 잡곡을 중심으로 한 배급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턱없이 모자라는 식량은 어쩔 수 없이 암시장에서 구입하거나, 지방에 가서 직접 식량을 소량씩 구입하거나 얻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시민에게 1946년은 배급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어려운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서울 시민에 대한 배급은 1946년산 미곡과 하곡이 강제 수집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점차 완화되어 갔다. 그러나 1947년에 들어서도 미곡의 배급이 1.3~1.4홉에 그치는 등 여전히 배급량의 부족으로 이른바 ‘야미 양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서울시 식량 배급을 제약하고 있었던 커다란 문제는 유령인구의 존재였다. 유령인구의 문제는 식량 배급의 최종 단계에서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었기 때문에 미군정과 서울시는 이에 적극 대처하여야 했다. 따라서 미군정과 서울시는 1947년 4월부터 유령인구 단속을 본격화하여 1년 사이에 약 20만 명의 유령인구를 단속, 정리하였다. 하지만 서울시 말단 행정을 담당하고 있던 동회와 청년단체의 유착으로 인하여 유령인구 정리 작업은 상당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말단 행정의 합리적 개혁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요컨대 미군정기 서울시 식량 배급은 점령 초기의 격심한 식량 위기 속에서 미군정이 식량을 강력히 통제하면서 최소한의 식량을 배급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말단에까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서울시는 동회와 청년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식량을 둘러싼 유착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유령인구를 단속, 정리하여 일정한 배급의 합리성을 추구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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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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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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