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기독교적 성격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1-129(39쪽)
제공처
이 글은 ‘종교정치’가 대단히 활발했던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종교적 성격과 국가-교회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이 글에서 (1) 이승만 정부 핵심 구성원들의 종교적 구성과 개신교적 색채, (2) 이승만 정부 정책의 친개신교적 성격이라는 두 가지 쟁점에 집중했다.
먼저, 이승만 정부가 정치지형의 역동적인 재편을 통해 ‘개신교 정권’의 성격을 강화해가는 과정이 이승만이 구사한 종교적 동맹 혹은 배제 전략을 통해 분석되었다. 필자는 (1) 거국내각과 여당의 형성(1948.8∼1950.6), (2) 전시체제를 위한 야당과의 일시적 제휴 및 배제(1950.7∼1951.5), (3) 야당과의 대립, 장면과의 갈등 심화와 배제(1951.6∼1952.4), (4) 족청계와의 제휴와 배제, 이승만 일인지배체제의 확립(1952.5∼1953.12)라는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정치지형 재편의 종교적 측면’을 추적했다. 이 시기에 이승만 정부를 중심으로 대종교-개신교-천주교의 관계, 개신교 내 흥사단계와 동지회계의 관계가 빠르게 변화되어갔다. 요컨대, 이승만 정부 전반기에 걸쳐 정권 핵심부로부터 대종교, 천주교, 불교계 인사들 그리고 흥사단계 개신교 인사들이 차례로 축출됨으로써, ‘개신교(특히 동지회계) 중심의 권력구조’가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결국 이승만의 독자적 권력기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승만 정부의 ‘개신교적’ 성격은 정부 출범 직후보다는 집권 전반기의 끝 무렵인 1953∼1954년경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다양한 정책들의 친개신교적 성격이 분석되었다. 무엇보다,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일민주의’가 기독교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과 이후에 기독교를 나라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확신을 거듭 표명해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정기에 도입된 형목제도, 성탄절 공휴일제도, 국영방송을 통한 선교 활동을 유지함으로써 개신교에 큰 혜택을 제공했다. 국회의원 취임선서, 국회개원식, 대통령 취임식, 국가적인 장례식 등의 주요한 국가의례들이 기독교식으로 제정되거나 거행되었다. 이밖에도, 개신교 교회의 요청에 의해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주목례로 바꾼 점, 군종제도를 도입한 점, 교회가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국을 설립하고 이후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점, 이른바 ‘주일성수’를 가능하게 해준 점, 첩을 둔 자가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한 조치, 미신타파운동이나 사이비종교 추방운동 등도 이승만 정부가 교회에 제공한 특권들에 포함된다. 교회 인사에게 훈장이나 감사장 등을 수여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도움, 그리고 재정지원이나 면세 혜택 혹은 적산불하와 같은 물질적인 도움도 물론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민특위 피의자 중 개신교계 인사들이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다는 점에서, 이승만에 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 조치는 교회가 공신력에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하도록 도와주었다.
급격한 정치지형 변동을 거치면서 정치영역 내에서 ‘개신교의 독주체제’가 형성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지형 변동의 종교적 결과는 “기독교 중심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으로 나타났다. 정치지형 변동과 맞물린 종교지형의 변동은 평면적으로도, 또한 입체적으로도 진행되었다. 종교지형의 ‘평면적’ 변화는 “개신교의 급팽창” 내지 “종교시장 내 개신교의 점유율 확대”로, 종교지형의 ‘입체적’ 변화는 “개신교를 정점으로 한 종교지형의 위계적 재편”으로 나타났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church-state relationships in the period of 1948∼1954, the first half of Syngman Rhee’s presidency. Religious politics was highly activated in this period. More concretely, in this paper I concentrated on two issues: (1) religious composition of key members in the Rhee government and ruling party, (2) pro-Protestantism of the Rhee government policies.
During the period of 1948∼1954, president Rhee skillfully used the strategies of religious alliance and opposition. His first cabinet was composed of members from various religions, but non-Protestant politicians belonging to Daejonggyo(대종교), Catholicism, Buddhism were gradually excluded from the cabinet and ruling party. Among the Protestant politicians,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Young Korean Academy(Heungsadan) were also the target to be excluded. The Young Korean Academy was founded and led by Ahn Chang-Ho, who has long been the Syngman Rhee’s chief antagonist among the Korean Protestant activist groups. Instead, those who participated in Dongjihwe(동지회) founded and led by Syngman Rhee had became the key members in Rhee’s government and ruling party. By the year of 1953 or 1954,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Rhee’s government as a Protestant regime were even more apparent than the beginning of the his government.
Pro-Protestantism of Rhee’s government was also displayed and strengthened by the various government policies which unfairly favored the Protestant Churches. Surely, these policies were the benefits in return for the strong support for president Rhee and his government in the part of Korean Protestant Churches. Above all, dominant ideology initiated by Syngman Rhee during the first half of his presidency, Ilminjui(일민주의), was colored by Christian ethics. Moreover Syngman Rhee himself has often said the need and hope to found new nation on the Christian ground. Besides, pro-Protestant policies of Rhee’s government includes the introduction of prison and military chaplainship, of Christmas as a national holiday, changing the way of salute to the national flag, evangelization through the national broadcasting system, etc. President Rhee’s unwillingness to punish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would have been a great relief for the Protestant Churches, for there were much more pro-Japanese suspects in the Protestant Churches than in any other religions.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