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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독립운동의 인적 네트워크 = Kim Seong-sook’s Human Network of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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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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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44(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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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examines the journey of Kim Seong-sook’s national movement and his ideological orientation through character relationships. Influenced by Kim Sa-guk, Kim Seong-sook sympathized with socialist ideology. The Buddhist Yushin movement in which he participated also advocated socialist ideology such as ‘equality’. His socialist ideology deepened and systematized as he worked with those who accepted or propagated the communist ideology in Beijing. In the process of reorganizing the Heroic Corps into a “political party” in Gwangju, he became close to Kim Won-bong and became distant from Yu Ja-myung.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Kim Won-bong and Yu Ja-myung each increased their power, but when he tried to start the national movement again, there was no one around to join him. So, he formed the Liberation Alliance by forming solidarity with the former comrades of the Heroic Corps such as Park Geon-woong, first centered on the communists, and embracing those who broke away from the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However, in the situation of confrontation with the forces who insisted on going to Yanan over the issue of the movement of members of Korean Volunteers Army to North China Region, the Liberation Alliance declared reconstruction and pioneered its own path. At this time, it is presumed that Kim Jae-ho and Shin Jeong-wan joined the Liberation Alliance.
The Liberation Alliance’s participation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was a strategic shift in the national movement line in response to changes in the situation, not an ideological shift. He seems to have consulted in advance about participating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through Jo So-ang,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So he was able to smoothly enter the Provisional Assembly and government agencies through the Propaganda Committee, and he was able to rise to the position of a member of the State Council.
Regarding relations with the Chinese, he had a particularly strong relationship with Zhou En-lai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He also worked with left-wing writers in China through his wife Du Jun-hui. Regarding personnel from the Chinese Kuomintang, they distanced themselves from the coercive situation of “white terror”, but their attitude changed after the second collaboration between the Kuomintang and the Communist Party took place. He tried to get support by contacting Zhu Jia-hua, a key figure in the Chinese Kuomintang’s policy toward Korea.
이글은 인물관계를 통해 김성숙의 민족운동의 여정 및 그의 사상적 지향점을 살펴본 것이다. 김성숙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불교 공부 경험이 있는 김사국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사상에 공감해 갔다. 한편 김성숙이 참여한 불교계의 유신 운동도 ‘평등’ 등 사회주의 사상을 주창하였으므로, 유신 불교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접근하였다.
베이징에서 장건상, 양명, 김용찬 등 공산주의사상을 수용하거나 선전하고 있는 인물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그의 사회주의 사상도 더 심화되고 체계회되었다. 그의 사상은 민족의 해방과 독립에 기초를 둔 반자본주의적인 평등사회를 지향한 것으로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는 조공과 관련 있는 양명과 김용찬 등과 차이가 있었다. 그는 중국의 국공합작에 의한 혁명성공을 통한 민족의 해방과 독립에 희망을 걸고 광저우를 향했다. 광저우에서 의열단을 ‘정치정당’으로 개편시키는 과정에서 김원봉과 가깝게 지내면서 유자명과 거리가 멀어졌다. 광저우에서 의열단을 통해 드러난 그의 혁명이론과 사상은 국민당 좌파와 유사했고,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에 중국 1차 국공합작의 방식처럼 ‘개인주의’를 주장했다.
광저우봉기 실패 후 저술, 이론 연구 및 번역 등 일에 종사하는 동안 김원봉과 유자명은 각각 세력을 키워 갔지만 김성숙은 다시 민족운동에 나서려고 했을 때 주변에 같이 할 사람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김성숙은 박건웅, 김산 등 옛 의열단 동지들과 우선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속하고 민혁당에서 이탈해 나온 이들을 포섭하려는 전략을 폈으며 해방동맹을 결성했다. 그러나 뤄양에서 조선의용대 대원의 북상 및 임정 참여의 문제를 둘러싸고 옌안행을 주장하는 세력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해방동맹은 재건을 선언해 자기들만의 노선을 개척해나갔다. 이때 김재호, 신정완을 비롯한 옌안행 반대 인사들이 해방동맹에 가담한 것으로 짐작된다.
해방동맹의 임정 참여는 정세의 변화에 따른 민족운동 노선의 전략적인 전환이지 사상적인 전환까지는 아니었다. 광복군 총사령부 창립 이후부터 김성숙은 ‘단체주의’적 연합전선 조직론을 고수한 채 임정의 외무부장인 조소앙과 만나 임정참여에 대한 사전협의를 한 것 같다. 그래서 그와 그의 맹원들은 선전위원회를 통해 임시의정원과 정부 기관에 완만하게 진출할 수 있었고 김성숙은 해방동맹을 배경으로 국무위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들은 임정 속에서 약헌개정 및 정부개조를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민족해방과 ‘평등’, ‘민중’, ‘민주’ 등 반자본주의의 사회주의적인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중국인과의 관계에 있어 특히 중국공산당의 저우언라이와의 관계가 돈독했다. 그리고 부인 두쥔훼이를 통해 중국의 좌익작가들과도 같이 활동했다. 국민당측 인사에 대해서는 광저우봉기 직후 ‘백색테러’의 강압적인 상황에서 거리를 두었지만 중일전쟁 발발 이후 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중국국민당의 대한정책의 핵심인물 주자화와 접촉해 지원을 받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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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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