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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극선(趙克善) 일기를 통해본 17세기 전반기의 과거 실태 = Some Aspects of Civil Service Examinations by Way of Cho Keuk-sun’s Diaries in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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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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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1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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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충청도 덕산에 거주하였던 유생 조극선의 일기를 통해서 17세기 전반기의 과거 시행 실태를 살펴본 것이다. 조극선이 26년간 사족의 생활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그가 일기에 상세하게 기록했던 것 중 하나는 학업의 내용과 과거 응시 내용 등이었다.
조극선은 18세가 되던 1612년(광해군 4) 식년 생원진사시를 시작으로 42세 1636년(인조 14)까지 24년 동안 과거에 도전하여 생원진사시 초시에 2번, 문과 초시에 8번을 합격하였으나, 항상 회시에서 낙방하였다. 그의 일기를 통해서 10회생원진사시와 17회의 문과를 응시하기 위한 과업 내용, 과거 응시 절차, 과거 시험내용, 과거 시험장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극선의 과업(科業)을 정리하면, 첫째 10대에는 글쓰기에 치중하였다. 중국 문장가의 글들을 익히면서 시를 비롯한 여러 장르의 글쓰기 학업과 습작에 치중하였다. 둘째, 24세 이후로는 경학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사서를 읽고 암기하는 것을 넘어서 성리학적인 관점으로 경서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가 성리학에 입문하게 된 것은 당시 충청도에서 지내고 있던 박지계와 조익을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이다. 박지계의 조언대로 『근사록』을 기본으로 경서를 순서에 따라 독서하였다.
조극선은 1611년부터 1623년까지 13년 동안 10번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였다. 그 중 9번의 향시 응시 기록으로 충청우도 생원진사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덕산의 유생들은 시지를 구입하기 보다는 인근의 가야사 승려를 시켜서 종이를 제조하게 하였다. 닥나무를 제공하고 유생들 자신이 닥나무 껍질을 두드리는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좋은 시지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과장에 들어가서 생원진사시 답안을 작성하는 유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같이 앉은 동접(同接)의 답안 작성을 돕거나, 함께 제술하며, 다른 사람의 시지에 답안을 작성해주거나 작성된 답안을 필사해주었다. 이것은 명백히 부정행위이지만, 조극선과 그의 동접들은 심각한 부정행위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또한 충청도의 17세기 향시 시관 구성이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변화를 겪게 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극선은 총 17회의 문과와 1회의 유생과시에 응시하였는데, 총 8번 초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대 치른 3번의 시험은 제술을 위주로 한 시험이었으며, 인조 즉위 후에는 식년문과, 증광문과, 별시문과. 알성문과, 정시문과 등에 응시하였다. 그는 경학 공부를 중점적으로 하여 주로 식년문과․증광문과․별시문과 초시에서 논(論)으로 합격하였지만, 관직 생활을 하면서 과업에 전념할 수는 없어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조극선 일기의 과업과 과거 응시 기록 등으로 연대기 자료나 법전의 과거 규정이 17세기 전반기에 어떻게 적용되고 지켜졌는지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생들의 일상과 학업 과정을 통해서 17세기 전반기의 유생 문화까지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The diaries of Mr. Cho Kuk-sun (조극선) over twenty years keep valuable descriptions of Civil Service Examinations (CSEs, in short: 과거) and a variety of scholar-official families’ daily lives (사족 생활) who lived in 17th century at Duck-san (덕산), Choong-chung Province (충청도). It must be his intention that he tried to cover all of the examinations processes in detail, since the related curricula and admissions for CSEs were preserved in meticulous mode and thoroughly.
He passed a regular triennial examination at the first stage, Classics and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henceforth CLLE: 생원진사시), in 1612, when he was 16 years old. Since then, he tried ten times over 24 years to pass the second stage, the so-called Congregation Examination at Metropolitan (회시), with no success, although he was successful to pass twice in CLLE division and eight times in Higher Erudite Examination (문과 초시). His diaries allow us to trace back what the examinations were like and how they were done in order for him to prepare.
He had hard training especially on composition in his adolescent period over the various classical genres from poems to essays with reference to famous Chinese stylists. He had committed, then, to learn Confucian Classics, keeping in mind all the verses of Four Classics (사서) after he was 24 years old. At the same time, he gradually became to understand Neo-confucian anthologies such as ‘Great Compendium on Human Nature and Principle’ (성리대전). He was a student of Mr. Park Ji-kye (박지계) and Mr. Cho Ik (조익) both of whom were enjoying their hermitage lives freely in secluded environment. It was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근사록) complied by Chu Hsi(주희) and Lü Zuqian(여조겸) that he was actually guided by on what to read, step by step, further through. We can observe some contrast in the same period with the instance of Mr. Kim Young (김영), a hereditary elite, who was led by Zhen Dexiu’s (진덕수) ‘Anthology on Mind and Heart’ (심경) for his scholarly development, residing in the area of Kyeong-sang Do (cf. Cha Mi-hee 차미희 2013). The difference, however, seems not to reflect an areal tendency but to follow masters from whom they had been taught.
Although he applied for CLLE exams ten times, over thirteen years, he only passed twice. The precise descriptions of his prefectural examination applications, nine times, reveal the actual procedural and preparations especially on CLLE in the Right Sector of Choong-chung Province (충청 우도). For instance, the applicants from Ducksan area, his hometown, did not buy examination sheets (시지) but rather asked monks nearby at Kayasa Temple (가야사) to produce them in quality even with supply of good mulberry skins. They sometimes got involved to hammer the materials together in order to get fine resources for sheets. It also was very hard to reserve or rent a house for temporary stay for the period of examinations so that he was accompanied to apply for CLLEs, all the times, by his cousin Mr. Cho Chong-sun (종형 조종선).
It is very interesting to find his depictions on the very examination spot for CLLEs: applicants helped each other within the same group to answer their individual sheet, sitting seat by seat. They sometimes prepared composition tasks in group, and they also assisted each other to do a fair copy with admired calligraphy. Surprisingly, it did not seem to be banned in rigour as an improper way to help each other. His diary, moreover, tells us that a trend to consist of examiners for CLLEs (향시 시관 구성) got changed right after Injo Restoration (인조반정) in 1623.
After he applied seventeen times, in sum, for Higher Erudite Examination (문과 초시) and once for the division of Confucian Students (유생과), he passed eight time in total. In the ear of King Gwanghaegun (광해군 시대, 1608~1623), he got Composition Examinations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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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 | 0.98 | 2.253 | 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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