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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서울의 학문 계보와 회현동 = The Academic Lineage in the Seoul Area During the Joseon Dynasty’s Early Half, and the Hwehyeon-dong Area
저자
이동인 (서울여자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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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07-247(41쪽)
제공처
Examined in this article is the tradition of teaching and learning that prevailed in Hwehyeon-dong(會賢洞) county of the Southern district(Nambu, 南部) of the Han’yang capital of Joseon, over a century from the second half of the 15th century through the first half of the 16th. At the crux of this tradition, there was the academic lineage that originated with the teachings of Kim Gweng-pil, then continued with studies of Yu Uh, and finally culminated in the actions of Yi Jung-ho.
Currently there are so many studies that have examined Kim Gweng-pil(金 宏弼, 1454~1504, Penname Hanhweondang/寒暄堂), so this author chose not to delve into general examination of his life and achievements. However, one point is highlighted here, and that is the relationship he had with the Seoul area, which is testified in others’ remarks: “His ancestors lived in Seoul for generations, and the local foundation of his house was also located in the Seoul/Gyeonggi region. Kim was born in Seoul, grew up in Seoul, and lived in the Jeong’reung-dong county for 19 years up until his own marriage. He was named as the Chambong(參奉) figure for the Seoul area’s Southern district, and began teaching in the Hwehyeon-dong area. Most of his students also lived in Seoul.” For Kim Gweng-pil’s disciples, Jo Gwang-jo was of course the most famous one, but the one who inherited Kim’s studies and teaching through educative activities in the Seoul area was Yu Uh(柳藕, 1473∼1537, Penname Seobong/西峯). Yu Uh as well taught students in Hwehyeon-dong at the outskirts of the Namsan(南山) mountain. People sought for his guidance as he was known as the figure who have succeeded Kim Gweng-pil’s studies, and they respected Yu Uh not only as a ‘skilled master(塾師)’ but also as an ‘elderly wise(先正).’ These students also all lived in Hwehyeon-dong.
Among Yu Uh’s students there was Yi Jung-ho(李仲虎, 1512∼1554, Penname Yisojae/履素齋), who taught students from a private study he opened in Hwehyeon-dong as well. Actually in this period there was another individual with the same name, who is even today confusingly considered as the same figure with the one examined here in this article, so this author had to first identify them both, and clarify that they were indeed different people.
Yi Jung-ho’s study in the 16th century can be labelled as Sohak(小學) studies and studies of ritual protocols(Yehak, 禮學). Sohak had earlier become a banned book after the political purges in the Gimyo and Eulsa years, but Yi Jung-ho used it in his teaching of students for the very first time (ever since the ban), and he himself tried to live by the principles instructed in the classic. Among his many students there were many figures who could be considered as the origins for the Soron(少論) and Capital area-based Southerners(Geun’gi Namin, 近畿南人) factions, so the collective disciples of Yi Jung-ho should be considered important for our understanding of the academic and political party divergences in the Joseon dynasty’s later periods.
이 글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까지 100년 동안 서울 남부(南部) 회현동(會賢洞)에서 전개된 강학 전통을 고찰한 것이다. 바로 ‘김굉필-유우-이중호’로 이어지는 학문 계보를 규명한 것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다만 김굉필과 서울의 관계성은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조상은 대대로 서울에 거주했고 지역기반도 서울경기에 있었다. 그 역시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결혼 전까지 19년을 정릉동에서 살았다. 서울 남부참봉에 제수되어 회현동 일대에서 강학을 시작했을 때 그의 문인도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김굉필의 문인으로 조광조가 가장 유명하지만, 서울의 강학활동을 통해 그의 학문을 계승한 문인은 서봉(西峯) 유우(柳藕, 1473∼1537)이다. 유우 역시 남산(南山) 자락의 회현동에서 문인 교육에 종사했다. 문인들은 그가 김굉필의 학문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배움을 청했고 단순히 숙사(塾師)가 아닌 선정(先正)으로 존경했다. 그들의 거주지 또한 회현동이었다.
유우의 문인 가운데 이소재(履素齋) 이중호(李仲虎, 1512∼1554)도 회현동에서 사숙을 열고 강학했다. 동시대에 동명이인 이중호가 존재했고 현대까지 양자가 혼동되고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우선 양자가 서로 다른 인물임을 변증하고 그 이유를 고찰했다.
16세기 이중호의 학문은 <소학>과 예학(禮學)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로 금서가 되었던 <소학>을 제일 먼저 가르쳤고, 본인도 일상생활에서 <소학>을 철저히 실천했다. 많은 문인 중에는 소론(少論)과 근기남인(近畿南人)의 원류에 해당하는 인물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이중호 문인은 조선후기 학파 및 정파의 분기를 계기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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