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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陸軍特別志願兵制度와 조선인 강제동원 = The Forced Mobilization of Korean and the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저자
표영수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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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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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5-138(44쪽)
KCI 피인용횟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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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imed to explain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as the point of departure of military mobilization of Koreans, and their condition who mobilized in the army of special volunteer.
From 1931 to 1945, in the period of Asia-Pacific War, the Japanese Imperialism extorted the enormous sum of material and human resources. In this, the number of Koreans who mobilized in Japanese army in this period, is estimated to be 210,000 from 1938 to 1945, defeat of Japanese imperialism.
The problem of military service of Koreans was argued by the some of Koreans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as regards political rights and compulsory education. The Japanese Imperialism, however, postponed its decision due to prematureness in the respect of Koreans’s condition. Before and after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the problem of military service of Koreans started to discuss in earnest, and the army of volunteer system of Korean was decided in turn.
The Japanese Imperialism mobilized the Koreans under the name of ‘volunteer soldier’ through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from 1938. From this system, the Korean armies had a basic military training in the Army Training Center for Volunteer and mobilized in Japanese army.
The number of Koreans mobilized through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is estimated to be 16,830. At first the Korean armies from the system was arranged in Japanese Army in Korea and then, as the extension of battlefield, in most regions where Japanese army advanced. As the conscription was enforced in 1944, the established Army Training Center for Volunteer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was reformed to Preliminary Camp of Military Affairs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for training the draft. For this reason, the Japanese Imperialism mobilized as the army special volunteers, not through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those who were not the draft, in October 1944 and forced to military service to Koreans under the 17 as the Second Military Service.
At first, the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focused on the dissemination of sense of people of the Japanese emperor, such as the training of Army Training Center for Volunteer of the Japanese Government, under the trend of serious distrust of Japanese Imperialism against Koreans. As the extension of battlefield, before and after Pacific War in 1941, however, Japanese Imperialism concentrated on the military recruitment of Koreans, and particularly after the 1944, enforced conscription system, mobilized even the boys under the 17 to Japanese battlefield though amendment of Army Special Volunteer System.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병력동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육군특별지원병제도의 실시 과정과 육군특별지원병으로 동원된 조선인의 동원현황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일제는 1931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아시아ㆍ태평양전쟁기간 동안 조선에 대하여 막대한 물적ㆍ인적 자원을 강탈해갔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강점기 일본군대로 동원된 조선인은 1938년부터 시작하여 일제 패망까지 대략 21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인에 대한 병역문제는 한일합방 이후 일부 조선인들에 의해 참정권 및 의무교육의 실시와 연계하여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당국은 이와 같은 요구에 대해 조선의 사정상 시기상조라 하여 유보하였다. 이후 조선인 병역문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로 하여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고, 마침내 조선인에 대한 지원병제도의 실시가 결정되었다.
일제는 1938년부터 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통하여 소위 ‘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인에 대한 병력동원을 실시하였다. 이 제도에 따라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들은 조선총독부에서 설치한 조선총독부육군병지원자훈련소에서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일본군대로 동원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육군특별지원병으로 거처 동원된 조선인은 총 16,830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들은 처음에는 조선 내 일본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전장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군이 진출해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 배치되었다. 한편 일제는 1944년부터 조선에 징병제가 실시됨에 따라 징병대상자들의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위해 기존의 조선총독부육군병지원자훈련소를 조선총독부군무예비훈련소로 개편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는 1944년 10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개정하여 징병대상자가 아닌 경우에도 훈련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육군특별지원병으로 동원하였으며, 17세 미만의 조선인을 제2국민병역에 복무하도록 하였다.
육군특별지원병제도는 초기에는 조선인 군인동원에 관하여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심각한 불신 속에서 조선총독부육군병지원자훈련소의 훈련 등 조선인의 황민화에 진력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전쟁을 전후하여 전장이 확대됨에 따라 일제는 조선인에 대해 병력충원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었고, 특히 1944년 징병제 실시 이후에는 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개정하여 17세 미만의 소년까지 일본의 전장으로 동원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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