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이상재와 이승만 : 개화・선교・독립을 위한 협력과 후원 관계 = Yi Sangchai and Syngman Rhee : Cooperative and patronage relations for Korean independence.
저자
오영섭 (연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5-105(61쪽)
KCI 피인용횟수
0
제공처
This paper aimed to research into cooperative and patronage relations between Yi Sangchai and Syngman Rhee who evaluated the Christian fighters for independence.
At first, Yi Sangchai and Syngman Rhee entered into a relation in the movement of Independence Club. They made an alliance in February 1898 when the Independence Club was active in anti-Russian movement. In the autumn of 1898, when Yi Sangchai was sent to prison because of introduce movement of constitutional monarchy, Syngman Rhee released him through holding an all-night demonstration to government.
Secondly, Yi and Rhee accepted the Christian democracy in Hansung Prison. Rhee embraced Christianity with a confession to save the nation. In the future, He propagated his religion and made political prisoners such as Lee Christians Thirdly, Yi and Rhee asserted the constitutional monarchy with national reality in mind. Yi maintained that we could secure the liberty of the people and national independence only if the constitution restrict the rights of emperor. Rhee also agreed that constitutional monarchy is a proper political institution in the modern world.
Fourthly, Yi and Rhee made ad effort to achieve the national independence and prosperity in Seoul YMCA. Lee prepared the ground of Seoul YMCA’s youth movement, and Rhee spread the movement all over the country. So, Yi emerged as a leader of Christian community, and Rhee grew into a nest leader.
Fifthly, Yi supported the Rhee's independent movement after the establishment of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e helped Rhee in financial, spiritual, and political ways. Yi frequently sent independent funds and absolute belief to Rhee. And Lee encouraged Rhee with letters and organized pro-Rhee independent association in Korea.
이 논문은 한국근대사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상재와 이승만이 어떠한 협력-후원 관계를 맺고 활동했는가를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첫째, 이상재와 이승만은 독립협회운동을 매개로 협력-후원 관계를 맺었다. 이상재는 중견관료로서 독립협회 창설 당시부터 관여했고, 이승만은 청년인사로서 언론활동을 벌이다가 뒤늦게 독립협회에 가담했다. 양인은 1898년 2월 독립협회가 반러자주운동을 벌일 때 독립협회의 요구 및 건의 사항들을 정부에 전달하는 총대를 자주 맡아 활동하였다. 1898년 가을 이상재가 ‘헌의6조’를 통해 입헌군주제적 정치체제를 도입하고자 민주화투쟁을 벌이다가 투옥되자 이승만은 반정부 철야농성을 전개하여 이상재를 석방시켰다.
둘째, 이상재와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기독교 민족주의를 정립했다. 박영효파의 반정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이승만은 자신과 나라를 구해달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기독교를 수용했다. 이후 그는 활발한 전도활동을 통해 정치범 동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국체개혁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이상재는 한성감옥에서 이승만의 인도로 기독교를 수용했다. 이로써 양인의 관계는 독립협회운동 당시 운동의 동지에서 사상과 신앙의 동지로 발전하였다.
셋째, 이상재와 이승만은 대한제국기에 입헌군주제적 정치개혁론을 주장했다. 이상재는 서양과 일본처럼 헌법으로 전제황제의 권한을 제약해야만 인민의 자유와 국가의 자주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영국과 일본이 입헌군주제 덕분에 종사와 황실이 복락을 누리며 신민들도 덕화를 입고 있다며 입헌군주제가 현시대에 가장 합당한 정치제도라고 하였다. 양인은 종국적으로는 한국이 미국식 민주공화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과 민도수준을 감안하여 차선의 방책으로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였다.
넷째, 이상재와 이승만은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에서 기독교 민족주의의 실현을 위해 분투했다. 두 사람은 기독교에서 한국의 독립과 번영의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상재는 서울YMCA의 교육부․종교부 위원장을 맡아 서울YMCA 청년운동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승만은 서울YMCA 청년운동을 고착화시키고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상재는 서울YMCA의 지도자에서 한국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부상했고, 이승만은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했다.
다섯째, 이상재와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매개로 다시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이상재는 재정적․정신적․정치적인 방면에서 이승만을 극진하게 도왔다. 우선 이상재는 개신교계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이 수합한 독립자금을 이승만에게 선교사들과 지인들을 통해 수시로 보냈다. 또한 이상재는 이승만의 반대파들이 이승만을 비판하고 비방할 때에도 끝까지 변치 않고 이승만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보냈다. 나아가 이상재는 수시로 서한과 문건을 보내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측면에서 후원하였고, 국내에서 친이승만 독립단체를 결성하여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요컨대 이상재와 이승만은 기독교, 친미성향의 경력과 개혁사상, 강렬한 독립사상을 삼위일체로 결합시킨 기독교 개혁운동가 내지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사상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1 | 0.81 | 0.7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5 | 0.66 | 1.616 | 0.06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