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한 동료 선교사제들의 평판 = The reputation of fellow missionary priests for Bishop Bruguière
저자
이석원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55-187(33쪽)
제공처
이 글은 동료 선교사제들의 서한을 중심으로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한 평판을 정리한 것이다. 동료 지인의 약전과 송별기를 통해 브뤼기에르 주교가 신학교 시절부터 해외 전교를 갈망하면서 선교사제의 자질을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교는 소년 시기부터 고집이 셌는데 나중에 견고한 의지와 용덕을 갖춘 선교사제로 성장할 수 있게 한 바탕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입국을 반기지 않던 조선 신자들은 주교의 조선입국 의지를 확인하고 주교의 지시에 순명했다. 그들이 작성한 서한을통해 신자들이 주교의 전교 열정과 신자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감동했음을 알 수 있다.
페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교수였던 샤스탕 신부는 같이플로피낭[페낭]에 체류하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교 열정과 그 성과를직접 목격했다. 그는 주교의 권유로 순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선 선교사제의 길을 갔다고 말했다.
모방 신부는 복건 지역과 내몽골 서만자 지역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와함께 있으면서 그의 신앙과 전교 열정을 지켜보았다. 주교는 혹독한 여정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건강을 잃었지만, 매일 고행과 기도에 매진했으며 깊은 성모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모방 신부 서한을 통해 알수 있었다.
조선 입국을 앞두고 브뤼기에르 주교가 선종하자 샤스탕 신부와 모방 신부는 주교에게 부여된 역할은 마치 ‘모세’처럼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열고 그 자신을 따랐던 선교사제들을 대신 입국시키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모방 신부와 앵베르 주교는 조선 입국을 위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노력에 대한 찬송과 더불어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주교가 요청한 만주 선교지의 분리 문제와 북경교구장 서리 겸 남경교구장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에 대한 주교의 인식 문제가 그것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와 동시대에 살면서 주교의 조선 입국 여정에 참여했거나 인연을 맺은 조선 신자, 동료 선교사제들의 평판은 주교의 명성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주교의 삶과 활동, 인품과 업적을 고찰할 때 핵심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주교의 공헌이 다시 소환되었고, 만주 마가자에 있던 그의 유해를 조선땅으로 이장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교회 언론 기사나 이장기(移葬 記)를 통해 주교의 신심과 활동이 재조명되고, 그의 명성이 퍼져나갔다.
조선대목구 설정 150주년(1981년)과 180주년(2011년)에도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한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다. 2004년 마가자에서 주교의 원 묘소 자리를 발견한 것을 기점으로 개포동성당을 중심으로 주교에 대한 현양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이 현양 사업은 서울대교구차원으로 확산되었으며, 2024년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서 시복 수속 과정에 있다.
This article summarizes the reputation of Bishop Bruguière, focusing on letters from fellow missionaries. Through the biographies and farewell notes of fellow acquaintances, we can confirm that Bishop Bruguière has longed for overseas missionary work since his seminary days and worked hard to acquire the qualities of a missionary. In addition, the bishop was stubborn from a young age, which was the basis for his later growth into a missionary with strong will and courage.
The Korean believers who had not welcomed Bishop Bruguière's entry confirmed the bishop's intention to enter Joseon and obeyed the bishop's instructions. Through the letters they wrote, we can see that the believers were moved by the bishop's missionary passion and love for the believers.
A professor at the Paris Foreign Missions Seminary in Penang, Chastan witnessed first-hand the missionary passion and results of Bishop Bruguière, who was also staying in Penang. He said that at the recommendation of Bishop, he went on the path of missionary work in Joseon, where he could receive the grace of martyrdom.
Fr. Maubant stayed with Bishop Bruguière in the Fujian region and the Xiwanzi region of Inner Mongolia and observed his faith and missionary passion. Although the Bishop lost his health due to the harsh journey and poor environment, it was revealed through Fr. Maubant's letters that he devoted himself to daily penance and prayer and had a deep devotion to the Virgin Mary.
When Bishop Bruguière passed away before entering Joseon, Fr.
Chastan and Fr. Maubant decided that the role given to the bishop was to open the road to the ‘Promised Land’ like Moses and to allow the missionaries who followed him into the country.
Fr. Maubant and Bishop Imbert praised Bishop Bruguiere's efforts to enter Joseon and also pointed out some of the regrets. These are the issue of separation of the mission field in Manchuria requested by the bishop and the issue of the bishop's perception of Bishop Pires Pereira, the head of the Diocese of Beijing and the head of the Diocese of Nanjing.
The reputation of the Korean believers and fellow missionaries who lived at the same time as Bishop Bruguière and participated in the bishop's journey into Joseon or had a relationship with him came to be passed on as the bishop's reputation, and it is a key point when considering the bishop's life, activities, personality, and achievements. It can be used as useful data.
In 1931, in commemoration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Vicariate Apostolic of Korea, the contributions of the first Vicar Apostolica, Bishop Bruguière, were recalled, and a project to relocate his remains from Majiazi, Manchuria to Joseon was carried out. At the time, the bishop's faith and activities were reexamined through church press articles and funeral records, and his reputation spread.
The 150th anniversary(1981) and 180th anniversary(2011) of the establishment of the Vicariate Apostolic of Korea also brought back memories of Bishop Bruguière, the first Vicar Apostolica, Starting with the discovery of the bishop's original grave site in Majiazi in 2004, work to honor the bishop began in earnest, centered around Gaepo-dong parish church.
This exaltation project has spread to the Archdiocese of Seoul, and as of 2024, he is in the process of being beatified as a ‘Servant of God.’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