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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差 小弄耳를 통해서 본 조선․여진 관계의 변화 = Change in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urchen seen through Hocha Sor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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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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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90(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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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y tried to show how the position of Chaho(差胡)․Hocha(胡差) Jurchen envoy occurred and its concept seen through Soroni(小弄耳) who lived in the Tumen River basin. As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urchen had changed and then, status and role of Soroni had changed, the author intended to figure out activities of Soroni as a diplomat between Joseon and Jurchen.
Names such as Chaho․Hocha first appeared in the early 17th century. In Joseon, an example shows both Chaho and Hocha. Chaho․Hocha can be defined as ‘temporary envoy to Joseon for carrying out special mission who Jurchen chief or leader dispatched’.
In the other hand, position of Sorongi who lived in Tumen River basin from end of 16th century to early 17th century changed several times over time - from Boundary Jurchens of Joseon to ‘Holcha(忽差)’ of Holraon Bujantai, lastly to ‘Chaho’ and ‘Hocha’ of Geonjoowi(Later Jin) (Boundary Jurchens → Holcha(忽差) → Chaho and Hocha). They were all dispatched to resolve diplomatic issues with Joseon. Jurchen Sorongi carried out a role as a forefront diplomat in issues with Joseon from 1605(the 38th year of Seonjo reign) to 1621(the 13th year of Gwanghaegun). At first, he was Boundary Jurchens of Joseon, next Holcha dispatched by Holraon Bujantai, finally became Chaho and Hocha dispatched by Nurhaci of Later Jin(後金). Such changes of role for Sorongi had been made in the midst of changes in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urchen.
Sorongi who had ever been Boundary Jurchens of Joseon was dispatched to Joseon after Holraon Bujantai invaded boundary Jurchens on the basin of Tumen River and Joseon. Sorongi was first dispatched in 1605(the 38th year of Seonjo reign). Sorongi called as Holho(忽胡), Hocha, Holcha etc. discussed diplomatic issues between Bujantai and Joseon. Sorongi delivered information related to political situation of Holradon but mainly carried out a role of forefront diplomat in the process of Bujantai’s request for official announcement of appointment from Joseon.
Since then, Sorongi appeared again in 1619(the 11th year of Gwanghaegun) when allied forces of Joseon and Ming dynasty conquered Later Jin of Nurhaci. Joseon explained to Sorongi who came to Hoeryeong(會寧) about inevitable sending of troops by Joseon. On the other hand, after Simha(深河) combat, Sorongi was in charge of diplomatic negotiations between Joseon and Later Jin. Joseon called Sorongi Chaho, Hocha, Nocha(奴差), Rosa(虜使), Soho(小胡) etc. After Simha combat, Later Jin actively sent Chaho․Hocha. Joseon recognized them as diplomatic delegation sent by Later Jin and treated them accordingly.
Sorongi sent by Nurhaci was dispatched several times for the repatriation of war prisoners with letter sent by Later Jin. Especially, Nurhaci asked Joseon not to help Ming any longer while he wanted friendly relations with Joseon. In the process, he wanted Joseon to send Chagwan(差官). Sorongi proceeded with related negotiation with Joseon. At last, Joseon dispatched Jeong Choong-shin(鄭忠信), Manpo army second deputy commander to Nurhaci in 1621(the 13th year of Gwanghaegun). Then, Sorongi accompanied Jeong Choong-shin for his round trip.
본고는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던 변경인 小弄耳를 통해 여진 使臣이라 할 수 있는 差胡․胡差의 발생과 개념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 변화에 따라 소롱이의 신분과 역할이 변화하면서 조선과 여진과의 사이에서 최일선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17세기 초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에서 차호․호차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에서는 차호와 호차의 용례를 병행해서 사용하였다. 차호․호차는 ‘조선에서 오랑캐라 부르던 북방의 여진족 酋長 또는 首長이 특별한 임무의 수행을 위해 조선에 파견한 임시 사절’로 규정할 수 있다.
한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였던 邊境人 소롱이는 조선의 ‘藩胡’에서 홀라온 부잔타이의 ‘忽差’로, 다시 건주위(후금) 누르하치의 ‘차호’ 및 ‘호차’로 그 위치가 변화(번호 → 홀차 → 호차 및 차호)하였고 각각 조선과의 외교적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진인 소롱이는 1605년(선조 38)부터 1621년(광해군 13)까지 조선과 여진과의 현안 문제에서 최일선의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처음에는 조선의 번호였다가 홀라온 부잔타이가 파견한 홀차가 되었고, 다시 後金의 누르하치가 파견한 차호․호차가 되었다. 소롱이의 이러한 역할 변화는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조선의 번호였던 소롱이는 홀라온 부잔타이가 두만강 유역의 번호와 조선을 침략한 이후 조선에 파견되었다. 소롱이가 처음 조선에 파견되어 나온 것은 1605년(선조 38)이었다. 소롱이는 忽胡, 胡差, 忽差 등으로 불리면서 부잔타이와 조선과의 외교적 현안 문제를 논의했다. 소롱이는 홀라온의 정세와 관련 정보를 조선에 전달해 주기도 했지만, 주로 부잔타이의 조선 직첩 요구 과정에서 조선과의 교섭을 담당하였다.
이후 소롱이가 재등장하는 것은 조․명연합군이 누르하치의 후금을 정벌하던 1619년(광해군 11)이었다. 조선은 會寧에 온 소롱이에게 조선의 원병 파병이 부득이 한 것임을 설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深河 전투 이후부터 소롱이는 조선과 후금과의 외교적 교섭을 담당하였다. 조선에서는 파견된 소롱이를 差胡, 胡差, 奴差, 虜使, 小胡 등으로 불렀다. 심하 전투 이후는 후금의 조선에 대한 차호․호차 파견이 본격화된 시기였으며, 조선에서도 차호․호차를 후금이 보낸 외교 사절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접대를 하였다.
소롱이는 누르하치가 파견한 차호로서 조선에 대한 포로 송환과 胡書[國書]를 가지고 조선에 여러 차례 파견되었다. 특히 누르하치는 조선이 더 이상 明을 원조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한편 조선과의 화친을 원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 差官 파견을 원하고 있었다. 소롱이는 이와 관련한 교섭을 조선과 진행하였으며, 마침내 조선은 1621년(광해군 13) 만포첨사 鄭忠信을 누르하치에게 파견하였다. 이때 소롱이는 정충신의 왕복 노정을 동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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